[비즈니스포스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다가오는 인사를 통해 롯데그룹 화학 계열사들에 변화를 꾀할지 주목된다.

신 회장이 김교현 롯데그룹 화학군HQ(헤드쿼터) 총괄대표 겸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을 신뢰해왔다는 점에서 올해 역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변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주된 시각이다.
 
롯데케미칼 쇄신보다 안정에 방점 찍었던 신동빈, 올해는 화학군 '판' 흔들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사진)이 올해 화학 계열사를 놓고 어떤 인사를 진행할지 관심이 쏠린다.


다만 실적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다는 점, 김교현 체제에서 롯데케미칼의 체질 개선 속도가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화학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자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을 비롯해 롯데그룹 화학군 소속 계열사들이 올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실적을 거두면서 이와 관련한 쇄신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롯데그룹 화학 계열사들은 지난해 쇄신이라는 인사 흐름 속에서 비껴나 있었다. 유통과 식품, 호텔 등 주력 사업군 대표들이 대거 교체됐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화학 계열사 수장들만 자리를 지켰다.

지난해 말에도 이미 이런 인사를 두고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석유화학 업황의 불황, 롯데건설 지원에 따른 재무부담 우려, 롯데케미칼의 실적 악화 등 안팎의 상황을 따졌을 때 롯데케미칼에서 분위기 쇄신 인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꽤 많았지만 이를 완전히 벗어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이 롯데케미칼 실적 부진의 책임을 그가 신뢰하는 김교현 부회장에게 묻지 않고 업황 불황 탓으로 돌렸다는 얘기가 돌았을 정도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할 때 신 회장이 올해도 김 부회장 체제를 계속 유지할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시각이 많다.

우선 신 회장이 지난해 말 인사에서 올해 3월 임기 만료를 앞뒀던 김 부회장의 임기를 2년 더 연장했기 때문에 교체 명분이 약하다는 것이 이런 시각의 대표적 근거다. 사업보고서상 김 부회장은 2025년 3월까지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임기를 보장받고 있다.

김 부회장이 롯데케미칼에서 벌여놓은 일이 많다는 점도 교체 인사를 진행하기에 부담스러운 요인으로 거론된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말 롯데케미칼의 새 성장동력 마련을 위해 2조7천억 원 규모에 배터리 핵심 소재 가운데 하나인 동박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인수했다.

지난해 2분기부터 적자를 지속한 탓에 재무적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통 큰 베팅을 진행한 만큼 이를 주도한 김 부회장의 역할이 아직 남아있을 수 있다.

김 부회장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이외에도 전자소재사업에 힘을 싣기 위해 알루미늄박과 전해액 유기용매, 분리막 사업 등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스페셜티(고부가제품) 중심으로 체질 전환도 추진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9월 말 중국 내 범용 석유화학 제품 생산공장을 모두 현지 협력사에 매각했다. 이를 시작으로 앞으로 기술력 우위에 있는 상품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것이 롯데케미칼의 목표다.

김 부회장은 실제로 롯데그룹 안에서 신 회장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롯데그룹의 주요 4개 사업군인 유통군과 화학군, 식품군, 호텔군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사업군 총괄대표를 맡고 있는 인물이 바로 김 부회장이라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다.

김 부회장은 2017년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된 뒤 2019년 화학BU장에 올랐고 2021년 말에는 화학군HQ 총괄대표 역할을 맡았다. 김 부회장이 화학BU장과 화학군HQ 총괄대표를 맡을 때 유통군과 식품군, 호텔군 수장들은 모두 1~2차례씩 바뀌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의 상황을 마냥 낙관하기만은 힘들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김 부회장에게 신임을 보냈지만 롯데케미칼의 부진이 예상보다 장기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위기를 쇄신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이런 목소리를 뒷받침한다.

롯데케미칼은 2분기에 영업손실 770억 원을 냈다. 애초 증권업계는 영업이익 275억 원을 내며 흑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지만 이를 엇나간 것이다. 오히려 지난해 2분기보다 적자 폭이 커진 것을 두고 증권가들은 하반기 실적 전망 눈높이를 낮추기도 했다.

현재 증권가 전망을 종합해보면 롯데케미칼이 3분기에는 영업이익 270억 원가량을 내 적자 고리를 끊어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롯데케미칼이 영업손실을 볼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데 무게를 두는 증권사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롯데케미칼 쇄신보다 안정에 방점 찍었던 신동빈, 올해는 화학군 '판' 흔들까

김교현 롯데그룹 화학군HQ(헤드쿼터) 총괄대표 겸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


신 회장이 이런 흐름 속에서 분위기를 반전하기 위해 김 부회장의 교체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의 실적이 부진하다는 것을 김교현 부회장 탓으로 돌리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며 “하지만 김 부회장 체제에서 롯데케미칼의 체질 개선 움직임이 빠른 편은 아니었고 경쟁사와 비교할 때 의사결정 속도도 비교적 늦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말 인사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이 만약 물러난다면 이와 관련해 롯데케미칼 각 사업부 대표와 자회사 대표들의 거취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 부회장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세대교체 차원의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김 부회장은 1957년생으로 롯데그룹 부회장단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다.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과 김상현 롯데그룹 유통군HQ 총괄대표 겸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은 각각 1960년생, 1963년생이다. 기존 부회장단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던 송용덕 전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해 말 인사를 앞두고 용퇴한 바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연말 인사와 관련해 알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