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가 올해 상반기 ASML 지분 매각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대형 인수합병(M&A)을 진행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2년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사내 현금 차곡차곡, '복권 1년' 이재용 대형 인수합병 위해 움직이나

▲ 삼성전자가 2023년 상반기 ASML 지분을 매각하고 해외법인의 유보금을 국내로 들여오는 등 적극적으로 현금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다만 최근 인텔, 엔비디아 등 글로벌 반도체기업들이 추진하던 인수합병이 각국 정부 경쟁당국의 반대로 무산된 만큼 삼성전자의 대형 인수합병 추진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3년 상반기 6685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 2022년 상반기보다 영업이익이 95%나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형 인수합병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상반기 가용할 수 있는 현금 확보에 주력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보유하던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기업 ASML 지분 0.9%를 약 7년 만에 매각하며 3조 원에 가까운 현금을 확보했다. 게다가 중국 전기차기업 BYD 지분 0.1%와 국내 종합 장비회사 에스에프에이 지분 4.4%를 매각해 약 2천억 원의 현금을 만들었다.

게다가 해외 법인에서 쌓아두고 있던 유보금도 국내로 들여왔다.

삼성전자의 2023년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 해외법인이 본사로 보낸 수익금은 21조8457억 원에 이른다. 이는 2022년 상반기 1378억 원과 비교해 158배나 늘어난 수치다.

삼성전자가 이렇게 현금을 확보하는 것은 기존에 계획을 세워두웠던 반도체 설비투자와 함께 대형 인수합병을 위한 실탄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 겸 대표이사 부회장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인수합병(M&A)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잘 진행되고 있다”며 “조만간 좋은 소식을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반도체 경기 악화에 따른 실적 악화,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 등 여러 복잡한 환경으로 인해 인수합병 추진에 적극적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회장 체제가 아직 채 1년도 되지 않았던 만큼 대형 인수합병을 추진하기에 부담이 컸을 수도 있다.

이재용 회장은 2022년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돼 같은 해 10월27일 회장에 취임해 적극적인 글로벌 행보를 보여줬지만 인수합병과 같은 미래먹거리 확보 측면에서는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글로벌 전장기업 하만 인수를 마지막으로 6년째 대형 인수합병 소식이 없다.
 
삼성전자 사내 현금 차곡차곡, '복권 1년' 이재용 대형 인수합병 위해 움직이나

▲ 삼성전자의 대형 인수합병에 각국 정부당국을 반독점규제가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이재용 회장의 ‘뉴삼성’ 구축을 위해서는 인수합병이 필수적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아직 약점이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패키징(반도체와 기기를 연결하기 위해 포장하는 후공정) 등에서 인수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 로봇, 인공지능(AI) 등 최근 떠오르는 신사업 분야에서도 인수합병을 통한 외부기술 확보가 절실하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가 챗GPT를 만든 오픈AI에 투자해 단숨에 인공지능 분야의 강자에 떠오른 것과 같은 모습이 삼성전자에도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국내 로봇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 14.99%를 확보하는 데 868억 원을 투자하며 로봇 분야에서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대형 인수합병을 진행하기에 쉽지만은 않은 환경에 놓여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의 흑자전환이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반도체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각국 정부도 주요 반도체기업의 몸집 불리기를 견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설계기업 ARM을 인수하려던 엔비디아는 결국 정부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해 실패했고 인텔도 중국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파운드리 기업 '타워 세미컨덕터' 인수를 포기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인수합병을 진행하더라도 기대보다는 작은 규모에 그치거나 반도체 이외의 분야에 국한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각 정부당국이 자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반독점규제 여부를 평가하는 경향이 특히 반도체분야에서 강해졌다”며 “삼성전자의 빅딜 의지가 있다고 해도 최종 성사까지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