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최근 ‘위기’를 말하는 대기업 그룹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롯데그룹은 ‘잃어버린 5년’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좋지 못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7년 사드 보복으로 중국 사업을 철수했으며 2018년에는 국정농단 사태로 신동빈 회장이 구속됐다. 

이후 일본제품 불매운동, 경영권 분쟁, 코로나19에 따른 유통업계의 위기까지 온갖 악재를 겪었다. 

하지만 최근 롯데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그룹의 색깔이 유통, 제과 등 기존 사업에서 배터리,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있다.

신동빈 회장은 최근 조 단위의 인수 합병, 투자를 단행하면서 롯데의 부활을 이끌고 있으며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함께 하고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뛰는 등 외부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신 회장은 과연 잃어버린 5년을 딛고 다시 깨어나고있는 롯데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 증권맨으로 시작한 대기업 총수, 롯데의 전성기를 이끌다

신동빈 회장은 1955년 한국인 아버지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학업을 마친 후에는 일본 노무라증권 런던지점에서 7년간 근무를 했다. “남의 밑에서 일해봐야 사회를 배우고 돈의 가치도 깨달을 수 있다”는 신격호 창업주의 철학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롯데에 입사한 신동빈 회장은 2004년 정책본부 본부장에 오르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그리고 이때부터 신 회장의 공격적 인수합병 본능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신동빈 회장은 2004년 KP캐미칼을 시작으로 우리홈쇼핑, 두산주류, 말레이시아 유화기업 타이탄 등의 기업을 공격적으로 사들였다. 화학, 유통, 식품 등 롯데의 주축사업을 키우려면 인수합병만이 답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신 회장이 인수한 회사들은 롯데의 주력사업을 키우는 효자 기업 노릇을 톡톡히 했고 10년 만에 그룹 매출은 4배 이상 뛰어올랐다.

당시 신동빈 회장의 이런 공격적인 행보는 그룹 내에서도 ‘예상 밖이다’는 반응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의 신사답고 조용한 모습과는 반대되는 공격적 행보였기 때문이다. 

신동빈표 M&A는 2015년 삼성그룹의 화학 계열사 인수로 정점을 찍었다. 인수 금액만 3조 원에 이르는 국내 화학업계 사상 최대의 빅딜이었다.

당시 신동빈 회장은 이재용 부회장을 직접 찾아가 인수를 제안하고 속전속결로 계약을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롯데캐미컬은 롯데그룹을 먹여살리는 가장 큰 캐시카우 사업이 됐으며 롯데는 신동빈 회장이 주도했던 수많은 인수합병 덕분에 재계 5위까지 뛰어올랐다.

신동빈 회장의 인수합병 철학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소위 ‘낄끼빠빠’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는 뜻의 신조어다. 

그룹의 사업과 시너지가 날만한 매물에는 누구보다 과감하게 투자하지만, 적정 금액을 넘어선 과도한 배팅은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신동빈 표 인수합병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 뉴 롯데를 향한 신동빈 회장의 두 가지 승부수, 체질 개선과 조직문화 혁신

잘 나가던 롯데의 발목을 잡은 '잃어버린 5년'을 만회하기 위해 신 회장은 ‘뉴롯데’를 기치로 내걸고 나아가고 있다. 

신 회장의 뉴 롯데를 향한 승부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승부수는 바로 사업구조 재편이다.

지난 50년 동안 롯데를 키운건 유통 사업이었다. 하지만 롯데의 유통 사업은 결국 내수 중심이라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신 회장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빠르게 체질 개선을 진행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2022년 배터리 핵심 소재인 동박 생산기업을 2조 7천억원에 인수했으며 바이오 분야에서는 미국 제약회사 BMS의 미국 생산공장을 사들였다.

롯데는 앞으로 신사업에만 37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경쟁사에 비해 진출이 늦은 만큼 더 과감한 투자로 격차를 줄이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다.

바이오, 배터리, 수소 등 사업은 단기간 안에 성과를 내기 쉽지 않은 사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의 인내심, 뚝심 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 회장은 최근 “단순히 실적 개선에 집중하기보다 10년, 20년 후를 바라보며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발언은 신 회장의 변화를 향한 의지를 보여준다. 기존의 신 회장은 투자 대비 수익성, 영업이익률 같은 수치를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뉴 롯데를 향한 신동빈 회장의 두번째 승부수는 조직문화의 혁신이다. 

롯데는 10대 기업 중에서도 순혈주의, 폐쇄적인 문화가 유독 강한 회사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런 조직문화가 롯데의 성장에 독이 됐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유통 사업이다. 

지난해 롯데 유통 사업의 합산 매출은 쿠팡과 비교해 무려 10조 원이나 적었다. 전통의 유통강자라는 별명이 무색할만큼 초라한 성적표다.

경직된 조직문화로 인해, 변화에 늦고 트렌드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 부진의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그런 롯데가 변화하고 있다.

삼성 바이오로직스 출신의 40대 임원 이원직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 신세계백화점 출신의 정준호 롯데쇼핑 백화점부문 대표이사 부사장, 또 글로벌 유통전문가 김상현 김상현 롯데그룹 유통군HQ(헤드쿼터) 총괄대표 겸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 등 외부에서 수혈한 전문가, 경쟁사 출신 인사들이 그룹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최근 신동빈 회장은 ‘스타팀’이라는 인재 영입팀을 직접 꾸리기도 했다. 외부 인재를 스카웃해서 키우는 신동빈 회장의 직할부대다.

최근 신동빈 회장은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은 실패를 숨기는 것,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실패조차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않고 더 과감하게 도전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수소 등 미래 사업은 롯데가 아직 걸어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만큼 위험요소도 많다. 

하지만 롯데의 고속성장을 이끌었던 신동빈 회장의 민첩함, 과감한 추진력이 뒷받침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과연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고 돌아온 신동빈 회장의 리더십이 ‘뉴 롯데’의 길을 보여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기획제작 : 성현모, 서지영, 강윤이 / 촬영 : 김원유, 김여진 / 진행 : 윤연아 / 출연 : 남희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