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한때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 나오는 순양그룹 오너 가문은 드라마 초·중반부에 계속해서 ‘장자 승계 원칙’을 이야기한다. 

현실 세계에서 ‘장자 승계 원칙’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LG그룹을 떠올린다. 무려 75년 동안 LG그룹은 장자가 없으면 양자를 들여서라도 장자에게 승계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런 LG그룹의 적장자 상속이 도전에 직면했다. 현재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두 딸들과 부인이 상속 관련 소송을 제기해놓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소송이 현실적으로 LG그룹의 경영권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그마한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태풍의 크기가 아니라,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던 반발이 이번에 처음으로 나타나고야 말았다는 점이다.

사실 장자 한 명에게 모든 지분을 몰아주고 형제들은 상황을 봐서 계열분리 한다는 LG그룹의 상속 시스템은 그리 특이한 것은 아니다. 기업의 지분이란 결국 경영권과 관련이 있고, 경영권을 공고히하기 위해선 그 소유를 한 명에게 몰아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도, SK그룹도, 현대차그룹도 큰 틀에서 보면 모두 같은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형제들끼리 다툼을 벌이는 일도 꽤나 자주 발생한다. 하지만 상속 시스템 자체를 두고 말이 나오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LG그룹은 반대다. LG그룹은 75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무분규 상속’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상속 시스템 자체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LG그룹의 과거 승계들을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LG그룹의 장자 승계 원칙은 첫 상속인 구자경 전 LG그룹 회장의 취임부터 시작됐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에게는 5명의 남동생이 있었는데, LG그룹은 이 모두가 일정 역할을 담당해 세워진 그룹이다.

구인회 창업주가 타계한 이후,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 둘째 구철회 전 LG그룹 창업고문은 ‘장자승계’라는 원칙을 내세우고 구인회 창업주의 아들이자 조카인 구자경 전 LG그룹 회장이 그룹을 승계하도록 도왔다. 

그렇다면 구철회 전 고문이 유독 그룹 승계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좀 더 현실적 이유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부터 LG그룹에서 나타난 또다른 전통, 선대 회장의 형제들이 그룹을 분리해 따로 독립하는 전통이 확립됐기 때문이다.

구철회 전 고문의 자식들은 LIG그룹으로, 그리고 셋째인 구정회 전 금성사 사장의 자식들은 범한판토스로, 그리고 4~6남인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세 사람은 LS그룹으로 독립했다.

이런 일은 구자경 회장에서 구본무 회장으로 이어질 때도 똑같이 일어났는데, 장남인 구본무 회장이 LG그룹을 물려받으면서 구자경 회장의 형제들은 각각 LF그룹, 아워홈 등으로 분리됐다.

장자승계 원칙을 문제없이 이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장자가 상속한다는 사실을 두고 다른 형제들이 불만이 없어야 한다. 형제들에게 계열분리를 시켜주는 일은 장자승계 원칙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LG그룹 오너일가의 역사 속에는 ‘여성’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LG그룹 오너일가의 여성들을 살펴보면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딸들인 구양세, 구자혜, 구자영, 구순자씨부터 시작해 구자경 회장의 딸들인 구훤미, 구미정씨, 그리고 구본무 회장의 딸들인 구연경, 구연수씨 모두 경영자로서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가 복지재단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룹 경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범LG가를 전부 포함하더라도 여성이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사례는 구지은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 정도밖에 찾아볼 수 없다. 

LG그룹이 자랑하는 ‘갈등없는 상속’이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지금까지는 딸들이 이와 관련해서 불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이번에 제기된 소송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 딸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몫을 받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대가 아니다. 

물론 LG그룹은 “여성의 경영참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애초에 이번 소송의 원고측 대리인 역시 소송과 관련해 “경영권 다툼을 위한 것이 아니다”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이번 소송은 승계와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또한 구광모 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공고하고 다음 승계는 아직 고려할 타이밍조차 아니다.

이번 소송에도 불구하고 LG그룹의 승계 시스템에는 어떠한 균열도 없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경영권을 노린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아주 미약한 반발이라고 할지라도 '75년 무분쟁 상속'의 역사에 누군가가 반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생각해 볼만한 지점이다. 

LG그룹의 남성 위주 장자 승계 시스템이 앞으로 시대의 변화를 맞아 어떠한 형태로 변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