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 확대, TSMC·삼성전자엔 마냥 반길 수 없는 기회

▲ 인텔의 데이터서버용 '제온' 프로세서 이미지. <인텔>

[비즈니스포스트] 인텔이 파운드리사업에서 단기간에 기술 경쟁력과 생산 능력을 모두 확보하기 위해 외부 업체에 반도체 위탁생산을 맡기는 사례를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TSMC가 인텔의 파운드리 주문을 대규모로 수주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릴 수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만만찮은 경쟁사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27일 대만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 재편 계획에 TSMC와 같은 기업이 반사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인텔은 최근 투자자행사를 통해 자체 반도체 설계사업과 파운드리사업을 담당하는 사업부의 독립성을 높이는 방안을 실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전체 실적에 합산되던 파운드리 사업부의 매출과 이익을 내년부터 별도로 공개하면서 두 사업부가 사실상 별도의 회사로 운영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인텔은 시스템반도체 미세공정 기술력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외부 파운드리 업체 활용을 늘리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CPU 등 자체 제품 생산과 외부 고객사의 반도체 위탁생산에 역량을 분산하는 대신 인텔의 시스템반도체는 외부 기업을 통해 생산하고 파운드리 분야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인텔이나 삼성전자와 같이 자체 기술로 설계하는 반도체와 외부 고객사 제품을 동시에 생산하는 구조는 기술 유출 등 가능성으로 고객사들에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인텔이 이번에 발표한 내용처럼 CPU 생산을 다른 업체에 맡기고 고객사의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데만 집중한다면 이러한 우려를 어느 정도 덜 수 있다.

파운드리 사업 특성상 고객사에 안정적인 물량 공급이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도 대부분의 생산라인을 외부 위탁생산에 할당하는 것은 대규모 수주에 장점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디지타임스는 이러한 과정에서 TSMC가 수혜를 볼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봤다.

인텔은 이미 차세대 GPU(그래픽처리장치) 등 제품의 위탁생산을 TSMC의 3나노 또는 5나노 미세공정으로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두고 있다.

인텔에서 외부 파운드리 업체를 통해 생산하는 제품 종류와 물량이 늘어난다면 TSMC뿐 아니라 삼성전자도 인텔의 반도체 위탁생산을 담당할 기회를 노릴 수 있다.

TSMC의 3나노 등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라인이 이미 대부분 애플과 엔비디아, AMD 등 대형 고객사에 할당된 만큼 인텔의 주문을 감당하기 어려울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텔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신형 GPU에 TSMC 3나노 공정을 선제적으로 도입하려던 계획을 미룰 수밖에 없던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아직 3나노와 같은 최신 공정으로 대형 고객사를 확보한 사례가 알려지지 않은 만큼 인텔을 주요 고객사로 맞이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노릴 수 있다.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지난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나 반도체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도 파운드리 협력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물론 TSMC 입장에서도 인텔은 중요한 잠재 고객사에 해당하는 만큼 삼성전자와 수주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인텔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 확대, TSMC·삼성전자엔 마냥 반길 수 없는 기회

▲ 인텔의 반도체 파운드리 미세공정 로드맵. <인텔>

다만 삼성전자나 TSMC가 인텔을 주요 파운드리 고객으로 확보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반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인텔이 외부 위탁생산업체를 활용하는 목적은 결국 자체 파운드리사업 역량을 키워 삼성전자와 TSMC의 기술력을 뛰어넘겠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최근 투자자 설명회에서 인텔은 2024년까지 자체 반도체 생산 및 외부 고객사 위탁생산을 포함해 연간 파운드리 매출 200억 달러(약 26조 원)를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삼성전자를 제치고 TSMC에 이어 세계 파운드리 2위 업체로 단기간에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인텔은 2025년에 세계 최초로 1.8나노(18A) 미세공정을 도입하며 삼성전자와 TSMC의 2나노 공정보다 앞선 기술을 상용화하겠다는 목표까지 앞세우고 있다.

결국 TSMC나 삼성전자가 인텔의 주문을 받아들여 사업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은 경쟁사의 성장을 돕는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다.

인텔은 현재 독일에 300억 유로, 미국 오하이오와 애리조나에 각각 200억 달러 등 100조 원에 육박하는 반도체공장 시설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상위 경쟁사를 추격하겠다는 목표에 그만큼 공격적 태도를 보이는 셈이다.

다만 증권전문지 마켓워치에 따르면 투자기관 김미크레딧은 “인텔의 파운드리 진출을 위한 투자 규모는 지나치게 큰 재무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사업 전망에 부정적 관측을 내놓았다.

해당 투자기관은 인텔의 미세공정 기술 개발 목표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을 바탕에 두고 있다며 파운드리 진출 과정에서 큰 시행착오와 걸림돌을 만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