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스튜어드십이 온다⑥] 국민연금 전문위원 원종현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 지배구조 개선 전제돼야”

▲ 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전문위원회 투자정책전문위원회 위원장(사진)이 국민연금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원종현 위원장 제공>

[비즈니스포스트]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온실가스 배출에 가장 비중이 큰 기업들을 향한 변화의 요구가 거세다.

기업의 변화를 이끌기 위한 움직임이 점점 본격화되면서 국내에서는 자연스레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곳이 있다.

바로 국민연금이다.

2022년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국내 상장기업 260여 곳에 이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포스코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의 대주주가 국민연금이다.

국내 기업들의 의사결정에 국민연금의 주주 활동이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큰 만큼 국민연금이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움직여 주기를 바라는 기대감도 그만큼 크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활동에서 의사결정에 참가하는 전문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비즈니스포스트는 2일 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전문위원회 투자정책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원 위원장은 기후변화 대응은 물론 ESG 현안 전반에서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활동이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흔히들 ESG라고 말을 하다 보니 E(환경)와 S(사회), G(지배구조)를 병렬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환경과 사회 현안에서 기업의 제대로 된 변화를 이끌기 위한 수단으로 지배구조가 함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부터 환경과 사회 등 ESG 현안을 고려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놔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지닌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주주가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원 위원장은 “기업이 주주를 존중하는 상황이 돼야 사회적 요구에도 적극적으로 호응할 수 있다”며 “하지만 한국의 기업환경에서는 주주보다 기업 총수의 의사가 더욱 영향력이 큰 상황”이라고 짚었다.

그는 “어찌 보면 한국은 아직 주주자본주의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인데 몇 단계를 뛰어 넘어 도약을 하려는 상황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주주자본주의는 기업의 경영에서 주주를 중심에 두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의미한다. 주주가치의 극대화가 기업 경영의 목표로 경영 투명성, 가치중시 경영 등이 중시된다.

주주가 기업의 경영에 중심이 되지 못하는 상황은 그대로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활동에서 한계로 작용한다.

원 위원장은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가장 덩치가 크기는 하지만 각 국내 기업에서 보유한 지분은 대체로 6~7% 정도, 많아야 10% 안팎”이라며 “국내 주요 기업의 총수 일가 등이 상당한 우호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 지분으로는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대응 등 ESG 관련 현안에서 기업의 변화를 불러오려면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국내 자본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자산운용사 등 다른 주체들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 위원장은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행사하는 것을 보면 국민연금의 위탁자산에서는 국민연금의 결정에 따르지만 그 밖의 자산에서는 국민연금과 반대로 의결권 행사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대응에서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활동이 중요하게 다뤄야 할 과제로는 ‘전환금융’을 꼽았다. 전환금융이란 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흡수 혹은 제거해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도록 즉 넷제로를 달성하도록 사업구조를 전환하기 위해 자금을 조달하거나 집행하는 것을 뜻한다. 

원 위원장은 “유럽연합에서 마련한 ‘핏 포 55(Fit for 55)’ 등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보면 탄소국경조정제도와 같은 규제도 있으나 ‘전환금융’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며 “영국에서도 자국 산업의 탄소중립 달성 과정에서 영향받을 산업과 근로자 지원 등과 관련해 전환금융 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활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가입자의 이익 보호”라며 “국민연금은 모든 국민을 가입자로 두고 있는 만큼 전환금융 지원은 더욱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 국민연금 기금운용전문위원회는 무엇? 원종현 위원장은 누구?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 관련해 중요한 사안을 심의 및 의결하기 위해 기금운용위원회를 두고 있다.

또한 기금운용위원회의 심의 및 의결 사항을 사전에 전문적으로 검토하고 심의하기 위해 기금운용전문위원회를 별도로 두고 있다.

기금운용전문위원회에는 분야별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투자정책전문위원회, 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원회 등 3개의 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기금운용전문위원회의 상근전문위원 3인은 3개의 위원회에 공동으로 참여하며 임기 3년 동안 1년 단위로 각 위원회의 위원장을 돌아가며 맡는다. 각 위원회는 상근전문위원 외에 비상근전문의원, 관계 전문가 등 9인으로 구성된다.

원 위원장은 2020년 3월부터 국민연금 기금운용전문위원회 상근전문위원으로 위촉됐다.

올해 3월에 연임이 결정됐고 현재 투자정책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원 의원장은 이전에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연구관, 국민연금연구원 부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기금운용전문위원회 상근전문위원 외에 KAIST 겸임교수, 은행법학회 기획이사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상호 기자
 
[편집자주] 68조 달러, 우리 돈 9경 원의 자산 보유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후행동 100+’란 이름으로. 캘퍼스, GIC 등 대형 연기금과 국부펀드 등 기관투자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국적도, 규모도 다른 투자자들이 연합해 ‘기후행동’에 나선 이유는 하나다. 기후재앙이 더 커지면 혹은 탄소중립 압박으로 산업 지형이 달라지면 투자 자산의 가치가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수탁자 활동 즉 기후 스튜어드십 활동이 국내외 대형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강해지고 있다. 올 9월부터는 국민연금도 ‘기후변화 관련 위험 관리’ 차원에서 수탁자 책임 활동 즉 스튜어드십 활동을 시작한다.

비즈니스포스트는 기후 스튜어드십을 선도하는 국내외 리더들을 인터뷰하고 국내 기업 대응 전략을 전한다. 아울러 국회ESG포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공동으로 6월13일 2023기후경쟁력포럼을 개최한다. 관련 기사와 포럼 안내는 홈페이지(ccforum.net)에서 볼 수 있다.

④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민창욱 “한국기업 주주들, 기후행동 제한 받아”
⑤ KOSIF 양춘승 “국민연금은 기후변화 대응에 더 적극적 행동 보여야”
⑥ 국민연금 원종현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 지배구조 개선이 전제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