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시행되며 국내 전기차용 배터리 관련 밸류체인 전반에 온기가 돌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선두주자인 K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를 뒤쫓는 후발주자들의 추격이 더 맹렬해질 수 있다.

K배터리 3사는 경쟁사들보다 앞선 기술적 우위를 기반으로 완성차 업체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응력을 앞세워 북미시장을 선점하며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따돌리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북미 배터리 시장 경쟁 격화, K배터리 3사 제품 다변화로 추격 따돌린다

▲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시행되며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업체를 뒤쫓는 후발주자들의 맹렬한 추격에 K배터리 3사의 대응이 주목된다. 


17일 배터리업계 안팎의 의견을 종합하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으로 일본과 유럽 배터리 관련 업체들의 북미 진출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교도통신 등 현지 언론은 이날 일본 배터리 셀 제조사 파나소닉이 미국 오클라호마주에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클라호마주 공장 건설이 현실화하면 이는 파나소닉의 미국 내 3번째 공장이 된다. 파나소닉은 현재 미국 네바다주 공장에서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고 지난해 40억 달러를 투자해 캔자스주에 배터리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파나소닉의 3번째 미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배터리는 완성차기업인 BMW와 스텔란티스에 공급할 공산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은 소식통을 인용해 두 완성차기업이 파나소닉과 북미 배터리 공장 신설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파나소닉의 북미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50%에 육박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생산 능력에 기반한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K배터리3사에 크게 앞서 있다.

다만 파나소닉의 북미 시장 점유율이 대부분 테슬라 공급 분량에서 나오는 것인 만큼 앞으로 시장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테슬라를 뒤쫓는 기존 완성차 기업들의 전기차 진출이 확대될수록 K배터리 3사가 시장 점유율을 늘리며 북미 시장을 상당 부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K배터리3사는 고객사 다변화 측면에서 파나소닉보다 우위에 있는 데다 2025년경까지 북미 생산능력을 290GWh 수준까지 늘린다는 LG에너지솔루션을 필두로 북미에서 생산거점을 확충하는데도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나소닉 역시 고객사를 다변화하고 있는 데다 북미 생산능력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파나소닉은 2028년 말(회계연도상으로 2029년 3월)까지 북미에서 배터리 생산능력을 현재 39GWh 수준에서 3~4배 늘린다는 계획도 세워 놓았는데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에 따른 세제혜택을 고려해 증설의 속도와 규모를 재조정할 가능성도 있다.

보조금 제공을 뼈대로 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K배터리3사뿐 아니라 일본 파나소닉에게도 북미에서 생산능력과 고객저변을 확대하는데 기회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기회는 유럽의 셀 제조사인 노스볼트와 FREYR 등에도 적용된다. 이들 역시 북미 공장 건설 계획을 마련하며 북미 시장 진출을 엿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K배터리3사보다 일본과 유럽 후발주자들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2차전지 셀은 가동률과 수율이 정상화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영업이익을 안정적으로 내기까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당분간 적자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보조금(세제혜택)은 후발주자에게 큰 보탬이 되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신용평가업체 나이스신용평가는 “IRA가 중장기적으로 한국과 중국 이외 기업들에 대한 혜택으로 작용하며 경쟁 강도가 오히려 높아질 가능성을 유념해야 한다”며 “미국 시장이 후발기업들에게 경쟁력 축적을 위한 기회의 장으로 부상하며 장기적으로 국내기업들에게 경쟁 강도가 심화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정부로서도 배터리 밸류체인에서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현재 2차전지 셀과 핵심소재인 양극재에서 가장 경쟁력 높은 기업 대부분이 한국 업체다. 셀과 양극재 분야의 한국 기업들은 제품 공급이 빠듯한 시장에서 기술력을 기반으로 완성차업체와 관계에서 높은 협상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 등 전통 완성차업체뿐 아니라 테슬라와 같은 여러 전기차업체를 품고 있는 미국정부로서는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 의존도가 심화되는 것을 잠재적 불안요인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 

K배터리3사도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영향을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분석해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는 셈이다. 

다만 K배터리3사가 기술력을 토대로 사업구조의 유연성을 확보해 놓았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북미 시장 경쟁이 심화하더라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현재 K배터리3사는 폼팩터 다변화에서 경쟁사들에 앞서는 것으로 평가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파우치형과 원통형, SK온은 파우치형과 각형, 삼성SDI는 각형과 원통형을 만들 수 있다. 

각 폼팩터별 특성을 살펴보면 파우치형은 공간 효율이 좋고 에너지 밀도가 높다는 장점을 지닌다. 

다만 케이스가 단단하지 않아 안전성을 확보하려면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해 가장 만들기 어려운 폼팩터로 꼽힌다. 현재까지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만 파우치형 배터리를를 만들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원통형은 제조 비용이 저렴하고 대량생산이 쉬운 데다 부피당 에너지 밀도가 높다. 다만 다른 폼팩터에 비해 용량이 상대적으로 작은 만큼 전기차용으로 활용하려면 여러 개의 배터리를 하나로 묶어야 하는 만큼 개별 가격은 저렴해도 배터리 시스템 구축에는 비용이 많이 드는 편이다. 

각형은 외부 충격에 강해 내구성이 뛰어나고 안전한 반면 에너지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폼팩터별로 각기 장·단점이 뚜렷한 만큼 완성차기업들은 이런 특성을 고려해 폼팩터를 선택한다. GM처럼 파우치형(LG에너지솔루션)을 쓰다가 원통형(삼성SDI)으로 공급선 다변화를 추진하는 사례도 있다. 

폼팩터 다변화 역량은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하고 각 고객사의 요구에 맞춰 제품 공급을 늘리는 데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

K배터리3사는 고품질 제품에서 저가형 배터리로도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애초 K배터리3사는 지금껏 NCM(니켈, 코발트, 망간) 등 삼원계 배터리를 중심으로 확실한 품질 경쟁력 우위를 유지해왔다. 

다만 니켈, 코발트 등 삼원계 배터리의 주요 원재료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완성차기업들도 전기차 가격을 낮춰 수요층을 넓히는 차원에서 삼원계 배터리보다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등의 채용을 늘리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K배터리3사도 리튬인산철 배터리 등 저가형 배터리 개발에 적극 나서며 제품군을 다변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SK온은 지난해 리튬인산철 배터리 개발을 공식화하며 K배터리 3사 가운데 가장 먼저 리튬인산철 배터리 양산에 나설 것으로 보이며 LG에너지솔루션은 에너지저장장치에 먼저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적용한 뒤 전기차용으로 발을 넓히겠다는 구상을 마련한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SDI도 지난달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리튬인산철 배터리 개발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K배터리3사는 기술적 우위를 기반으로 여러 완성차 기업의 요구를 충족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며 “배터리 공급 부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성능과 안전성을 충족할 능력을 갖춘 셀 제조사는 여전히 소수인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K배터리3사의 위상이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