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한전채 발행 늘려 유동성 숨통? 요금인상 없이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새해 업무보고 관련 브리핑은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한국전력공사가 대규모 영업손실로 유동성 위기를 겪는 가운데 한전채 발행한도 상향으로 다소 숨통이 트이게 됐다.

다만 한전의 유동성 위기를 불러온 근본 원인인 전기요금의 결정 구조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별다른 개선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29일 산업부에 따르면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전기요금 인상과 관련해 “가계, 기업에 큰 충격이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당 수준 올릴 것이고 인상 요율은 막판 조율 중”이라며 “앞으로 글로벌 에너지 상황이 많이 변할 수 있어 내년에 모두 얼마를 올리겠다고 확정 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인상 논의는 올해 내내 에너지 분야를 넘어 사회적 화두였다.

국내 유일의 전력 공급자인 한전이 올해 1분기에만 7조8천억 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보며 한전 적자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간 영업손실인 5조8601억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한 분기만에 본 데다 비슷한 상황이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올해 한전의 영업손실은 30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이 대규모 영업손실로 유동성 위기를 겪자 전력공급 시장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가 다방면으로 추진됐다.

6월부터는 한전이 전력거래소에 지불하는 전력구매대금의 결제를 한 차수 미루는 외상 거래가 허용되도록 전력시장 운영규칙이 개정됐다.

기존 규정에 따르면 차수에 맞춰 전력구매대금이 결제되지 않을 때 바로 전력공급이 중단된다. 한전은 전력거래소로부터 9일 단위로 전력구매대금을 결제하고 있고 외상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전은 2001년 발전공기업 분리 이후 단 한 차례도 전력구매대금 결제를 미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시장 운영규칙이 개정된 것은 올해 한전의 유동성 상황을 고려하면 제때 결제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또한 12월부터는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한전이 전력을 사오는 가격인 전력도매가격이 정해진 수준을 넘어가지 않도록 상한을 설정한 것이다.

27일에는 한전채 발행 한도를 기존 자본금과 적립금 합의 2배에서 최대 6배로 높이는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한전은 올해 한전채 발행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해 왔으나 이마저도 한계에 가까워지자 정치권이 움직인 것이다.

한전의 대규모 영업손실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된 다양한 방안들은 모두 한계가 명확하다.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인 한전의 상황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력거래소에 외상거래 허용은 일시적 시간 벌기에 불과한 데다 전력도매가격 상한제 역시 한전의 적자폭을 다소 줄이는 효과 정도 기대된다. 

게다가 한전채의 한도 상향은 위급할 때 비상탈출구를 마련했다는 의미 정도에 불과해 보인다. 한전이 올해에만 30조 원이 넘는 한전채를 발행해 국내 채권시장을 교란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어 추가적 한전채 발행은 부담이 크다. 2021년 한전채 발행규모는 1조700억 원이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2023년은 한전채 발행규모를 올해보다 대폭 줄이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비싼 가격에 전기를 사서 싼 가격 전기를 파는’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한전의 유동성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력의 원가 상승은 정부도 어쩔 수 없는 외부적 요인인 만큼 국내에서의 대응은 전기요금 조정이라는 통제 가능한 영역에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전기요금은 전력 원가의 상승에 맞춰 제대로 조정되지 못하고 있다.

전기요금은 산업부 산하의 전기위원회가 분기별로 결정한다. 전기위원회 의사결정과정에서 주무부처인 산업부를 비롯해 물가 정책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가 사실상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있는 데다 이 과정에서 원가보다는 여론, 물가 등 정책적 고려가 크게 영향을 준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 역시 올해 5월에 장관후보자로서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과정에서 “전기위원회가 전기 요금 등 규제 업무에 있어서 최종 결정권자가 되도록 하는 독립성, 이를 뒷받침하는 전문성이 상당히 강화돼야 한다는 데 동감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다만 현대 사회에서 전력이라는 재화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해 보면 전기요금 결정 과정에서 완전히 정책적 고려가 배제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장관은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전기요금 인상 시기와 관련해 “한전의 적자 해소를 고려하면 전기요금을 내년 초부터 올리는 것이 좋다”면서도 “하지만 전기를 많이 쓰는 동절기에 전기요금을 너무 많이 올리면 취약, 저소득 계층이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