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 ARM 기업공개 더욱 험난, 미국정부 규제로 성장 제동

▲ 일본 소프트뱅크의 반도체 설계 자회사 ARM 상장 계획이 중국을 겨냥한 미국 정부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쉽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됐다. ARM의 인공지능 반도체 안내 이미지.

[비즈니스포스트] 손정의(마사요시 손)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반도체 설계 자회사 ARM을 상장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악재를 맞이하게 됐다.

미국 정부가 ARM의 첨단 설계기술을 중국에 제공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를 도입하면서 핵심 성장동력으로 앞세우고 있던 서버용 반도체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15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ARM은 미국과 영국 정부의 압박을 받아 중국 알리바바 등 주요 고객사를 놓칠 수 있는 위기에 처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중국 반도체산업을 견제하기 위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자국 기업의 기술과 장비 등을 사실상 중국에 수출할 수 없도록 했다.

영국과 같은 미국의 주요 동맹 국가도 중국을 향한 제재에 동참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ARM은 이런 상황에서 첨단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설계기술을 중국 고객사에 수출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알리바바에 제공하려 했던 최신 서버용 반도체 설계기반인 '네오버스V' 공급 계획을 사실상 철회하고 중국 내 다른 고객사와 거래를 축소하는 수순을 밟게 됐다.

ARM 네오버스 시리즈는 데이터서버와 고성능 엣지컴퓨팅 등에 주로 활용되는 반도체 설계기반이다. 알리바바와 같이 자체 서버용 반도체를 개발하는 대형 IT기업이 주요 고객에 해당한다.

특히 중국은 소수의 IT기업이 전체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차지하면서 인공지능 등 고성능 연산이 필요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어 고사양 서버용 반도체 개발과 활용이 필수적이다.

ARM 역시 최근 중요한 신사업으로 앞세우고 있는 서버용 반도체 설계기반의 성장성을 강조하면서 중국 내 대형 IT기업들에 의존을 더욱 키우고 있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IT기기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둔화하면서 ARM의 기존 주요 사업에 해당하던 모바일용 프로세서 설계기반의 실적도 부진한 흐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ARM은 내년 상반기 상장을 앞두고 투자자들에 미래 성장 전망을 설득하기 위해 서버용 반도체사업의 가파른 성장세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미국 정부의 규제에 따른 중국 수출 제한이 ARM에게 가장 민감한 시기에 악재로 작용하면서 전망이 더욱 불투명해진 셈이다.

손 회장은 지난해 ARM을 엔비디아에 매각하려던 방안을 철회한 뒤 미국증시에 상장 계획을 발표하면서 성공적으로 기업공개를 이뤄낼 것이라는 데 낙관적 전망을 보여 왔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 미국 증시가 장기간 약세장에 접어들도 특히 반도체주를 포함한 기술주의 주가 하락폭이 두드러지면서 ARM이 상장을 추진하기 쉽지 않은 환경에 놓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증시가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부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해지는 만큼 ARM 기업공개에 매우 불리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소프트뱅크 ARM 기업공개 더욱 험난, 미국정부 규제로 성장 제동

▲ 손정의(마사요시 손) 소프트뱅크 회장.

손 회장은 최근 소프트뱅크 콘퍼런스콜 등 공식 행사에서 ARM 서버용 반도체사업의 성과를 중요하게 강조하면서 투자자들에 성장성을 설득하기 위해 힘써 왔다.

소프트뱅크가 연이은 투자 실패로 심각한 수준의 순이익 적자와 재무구조 악화를 겪고 있는 만큼 ARM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을 늦추기 쉽지 않은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중국에 ARM의 서버용 반도체 설계기술 수출이 어려워지는 점은 이런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소프트뱅크 본사에도 적잖은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충분하다.

미국 정부가 중국을 겨냥해 내놓은 반도체 수출 규제가 ARM에 불똥을 튀기며 치명적 수준의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ARM의 핵심 기술자들이 회사의 미래에 불안감을 느끼고 이직하는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ARM의 중국 수출 차질은 이런 추세에 더욱 불을 당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ARM의 중장기 기술 경쟁력마저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으로 분석된다.

고성능 서버용 반도체 개발에 활용되는 첨단 설계기술뿐 아니라 ARM이 과거에 개발한 반도체 설계기반 일부도 중국 수출 제한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ARM의 반도체 설계기반에는 미국 기업의 기술도 포함되어 있어 미국 정부의 규제에 반대하거나 이를 따르지 않는 것도 불가능하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ARM은 알리바바 등 중국 고객사와 미국의 규제에도 협력을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을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뚜렷한 해결책은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손 회장이 결국 ARM의 성장성을 증명하지 못 한다면 상장 계획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취소하고 다시 매각을 추진하는 등 대안을 찾아야만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인텔과 퀄컴, SK하이닉스 등 반도체기업은 올해 ARM 인수 가능성을 검토했지만 현실성이 낮다고 판단해 이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ARM 지분을 일부 사들일 가능성도 한때 거론됐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