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쇼핑은 왜 '아마존 킬러'와 손잡았나, 김상현 '판 흔들기'로 반전 노려

▲ 롯데쇼핑이 영국 온라인 식료품 유통기업 오카도와 손을 맞잡았다. 온라인 식료품 시장에서 반전을 노리겠다는 롯데쇼핑의 의지가 드러난다. 사진은 1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롯데쇼핑-오카도 파트너십 계약 체결식에서 롯데그룹과 오카도 관계자들이 참석한 모습. <롯데쇼핑>

[비즈니스포스트] 롯데쇼핑이 이커머스 시장에서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것은 유통업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부랴부랴 온라인 전환에 사활을 걸었지만 이미 대세가 어느 정도 기울어진 탓에 롯데의 부활을 점치기는 힘들지 않겠냐는 목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김상현 롯데그룹 유통군HQ(헤드쿼터) 총괄대표 겸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은 다시 한번 승부수를 띄우며 판 흔들기에 나섰다.

내부 역량으로는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외부 업체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아마존 킬러’라고 불리는 영국의 온라인 식료품 유통기업 오카도가 그 주인공이다.

◆ 절대 강자 없는 온라인 식료품 시장, 롯데쇼핑 김상현 ‘해볼 만 하다’ 판단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쇼핑이 오카도와 손을 잡고 온라인 그로서리 사업에 중장기적으로 1조 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은 아직 이렇다 할 절대 강자가 없는 온라인 식료품 시장에서 반전을 노리는 차원으로 이해된다.

현재 공산품 위주의 온라인 커머스 시장은 사실상 쿠팡과 네이버의 양강 구도로 사실상 굳어졌다.

SSG닷컴이 오픈마켓 플랫폼 G마켓을 인수해 두 기업을 추격하고 있지만 쿠팡과 네이버로 쏠리는 흐름을 막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식료품 시장의 상황은 다르다.

장보기 앱(애플리케이션) 마켓컬리로 온라인 장보기 시장의 문을 연 컬리뿐 아니라 쿠팡의 쿠팡프레시, SSG닷컴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들보다 거래액은 작지만 유일한 새벽배송 흑자기업인 오아시스의 성장세도 무시하기 힘들다.

배달 플랫폼 업체들도 이 시장의 주요 선수로 뛰고 있다.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쿠팡이츠 등은 모두 자신들의 경쟁력인 ‘빠름’을 앞세워 퀵커머스를 바탕으로 한 장보기 사업으로 경쟁하고 있다.

이렇게 선수들이 많다는 것은 사실상 온라인 식료품 시장에 최상위 포식자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곧 시장의 후발주자라도 제대로만 한다면 해볼 만한 여지가 있다는 해석과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롯데쇼핑이 처한 상황이 녹록한 편은 아니다.

롯데그룹의 통합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롯데온이 이커머스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1~2%대인 것으로 추정된다. 수 년 동안 투자한 성과라고 내세우기 힘든 수치다. 이를 가지고 경쟁자들을 하나둘씩 제쳐나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 그동안 유통업계의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상현 부회장은 판을 흔들겠다고 선언했다.

롯데쇼핑은 1일 영국의 온라인 전문 식료품 유통기업인 오카도와 ‘국내 온라인 그로서리 비즈니스 관련 협력을 위한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김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롯데그룹 유통군이 그로서리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대한민국 ‘그로서리 1번지’로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롯데쇼핑이 오카도의 대표 상품인 ‘오카도 스마트 플랫폼(OSP)’을 도입하는데 모두 1조 원 가까이 투자하고 10년 뒤에는 온라인 식료품 시장에서 매출 5조 원을 내겠다는 것이 이번 파트너십의 핵심 내용이다.

◆ 롯데쇼핑은 왜 오카도와 손 잡았나, 선두 치고 나가기 위한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

김 부회장이 오카도와 손을 잡은 것은 단순히 ‘외부 업체와 협력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삼성증권은 과거 ‘유통업 엔드게임’이라는 보고서에서 오카도와 관련해 “아마존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기존 유통업체들이 대응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오카도의 OSP를 활용하는 것이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는 미국의 온오프라인 유통시장의 상황을 놓고 분석한 자료였는데 롯데그룹과 한국 시장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롯데그룹이 롯데온을 앞세워 이커머스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버티컬커머스 확충, 대규모 프로모션 등 온갖 방안을 짜내고 있지만 선두로 치고 올라가는 경쟁자들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결국 판을 뒤집기 위해서 ‘한 방’이 필요한데 오카도가 바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오카도는 일반인에게 생소할 수 있지만 유통업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업체다.

2000년 4월 설립된 기업으로 이제 역사가 20년을 갓 넘었다. ‘아마존 킬러’ ‘모든 길은 오카도로 통한다’라는 말이 유통업계에 돌 정도로 존재감이 크다.

오카도의 특징은 스스로를 유통업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빅데이터 등 최첨단 IT시스템을 갖춘 리테일테크 기업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오카도가 구축한 자동화 물류센터(CFC)는 오카도가 왜 스스로를 ‘테크기업’이라고 보는지 보여준다.
 
롯데쇼핑은 왜 '아마존 킬러'와 손잡았나, 김상현 '판 흔들기'로 반전 노려

▲ 오카도 자동화 물류센터(CFC) 안에는 수천 대의 로봇들이 자동화돼 소비자들이 주문한 상품을 직접 들고 포장까지 완료한다. 사람보다 매우 빠른 속도와 정확도를 자랑하는 오카도의 이 시스템은 '오카도 스마트 플랫폼(OSP)'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유명 유통기업들이 앞다퉈 도입하기도 했다.

이 자동화 물류센터들은 기본적으로 축구장 크기의 수 배에 달하는 면적으로 조성된다. 내부창고는 거대한 3차원 격자구조로 이뤄져 있는데 이 위에는 1천 대가 넘는 자동화 로봇들이 배치돼 있다.

이 로봇들은 초당 4m씩 움직일 수 있는 빠르기로 3차원 격자구조로 구성된 창고에서 물품을 꺼내고 이를 상자에 담는 작업을 반복 수행한다. 오카도 설명에 따르면 5분 안에 50건의 주문을 처리할 수 있는데 이는 한 사람이 2시간을 일해야 가능한 작업량이다.

오카도가 이를 앞세워 오프라인 유통기업을 따라잡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영국 최대 유통업체인 테스코가 취급하는 물품은 1만4천여 가지였지만 오카도는 오프라인 매장 하나 없이도 5만여 개의 상품을 취급할 수 있었다. 더 많은 상품을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배송한다는 강점을 앞세운 오카도 앞에서 테스코는 힘을 못 썼다.

이런 혁신에 힘입어 오카도는 2010년 7월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에 성공적으로 상장했으며 현재는 FTSE100 지수(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시가총액 기준 상위 100개 기업)에 편입돼 있기도 하다. 

오카도는 이렇게 고도화한 기술 플랫폼을 ‘오카도 스마트 플랫폼(OSP)’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2017년 프랑스 대중 소매업체 카지노그룹에 이 플랫폼을 판매한데 이어 캐나다에서 두 번째로 큰 슈퍼마켓 체인업체 소베이가 2018년 OSP를 도입했다.

현재는 미국 대형마트 크로거를 비롯해 호주 콜스, 일본 이온, 스페인 봉프레, 스웨덴 ICA 등 해외 유명 유통업체들 모두 오카도의 OSP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영국에서 120년 넘게 유통업을 하고 있는 모리슨도 OSP의 주요 파트너사 가운데 한 곳이다.

◆ 협력의 길 열렸지만 과제 만만찮다, 투자여력 유지에 조직문화 개선까지 어깨 무거워

롯데쇼핑과 오카도의 협력은 결국 한국에서 롯데쇼핑이 판을 뒤흔들어 보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김 부회장은 비록 외부의 힘을 빌릴지언정 이 방법이 시장의 선두주자로 치고 나가는데 더 빠르고 정확하다면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실제로 김 부회장은 6월경 강성현 롯데쇼핑 할인점사업부장(롯데마트 대표)과 함께 영국으로 출장을 가 오카도를 둘러본 뒤 협력을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장의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롯데쇼핑이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롯데쇼핑이 밝힌 대로라면 전국 6개 곳에 OSP 물류창고를 구축하는데만 모두 9500억 원이 든다. 앞으로 OSP를 운영하면서 매출의 일부를 수수료로도 줘야 한다.

김명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물류와 재고 관리의 효율성을 높여 온오프라인 플랫폼의 시너지를 높일 것으로 전망되지만 오프라인이 반등하는 시점에 투자로 온라인사업의 적자를 줄이지 못하는 점은 단기적 관점에서 부정적이다”고 바라봤다.

다른 문제점도 거론된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받아들여도 실행하는 조직에 문제가 있다면 기대했던 효과를 얻기 힘들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롯데그룹의 조직문화가 오카도와의 협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롯데그룹이 유통시장에서 위기에 빠지게 된 근본적 원인을 변화에 둔감한 보수적 조직문화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이 조직문화가 깨지지 않는다면 비록 세계 최고 수준의 플랫폼을 도입하더라도 시너지를 기대하긴 힘들다.

이와 관련해 롯데그룹 유통군HQ 관계자는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새 대표들이 오신 뒤부터 롯데쇼핑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며 “수직적, 보수적 분위기에서 수평적, 개방적 분위기로 바뀌어가고 있는 만큼 변화를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롯데쇼핑과 오카도의 협력을 바라보는 시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오카도 주가는 1일 런던증권거래소에서 전날보다 32.19% 급등했다. 반면 롯데쇼핑 주가는 2일 오전 약세를 보이다가 1%대로 상승 전환했다.

롯데쇼핑과 오카도의 협력이 오카도에게는 분명한 기회지만 롯데쇼핑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장담하기 힘들다는 투자자들의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