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롯데케미칼이 배터리소재, 수소사업을 중심으로 공격적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상황에서 계열사 롯데건설 재무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됐다.

롯데케미칼은 2조7천억 원 규모의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로 대규모 자금투입이 예정된 가운데 롯데건설에 최근 일주일 새 6천억 원가량의 자금도 지원했다.
 
롯데케미칼 나갈 돈 많은데, 계열사 롯데건설 재무 부담 커져 ‘긴장’

▲ 롯데건설에 자금지원을 실시한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 하향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롯데케미칼 대전연구소. 


석유화학 업황 반등도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신용도 하락 우려도 제기되고 있어 미래사업을 위한 롯데케미칼의 지속적 투자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24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를 포함한 단기 자금시장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유동성 지원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자금시장 상황이 빠르게 안정화하기 어렵다는 시선이 많다.

전날 정부는 채권시장안정펀드 20조 원, 회사채·기업어음 매입 프로그램 16조 원, 유동성 부족 증권사 지원 3조 원, 주택도시보증공사·주택금융공사 사업자 보증 지원 10조 원 등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50조 원 이상 규모로 확대해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김상수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당분간은 회사채 등 시장의 정상화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프로젝트파이낸싱 우발채무가 큰 A급 건설사를 중심으로 대체자금 조달 방안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고 말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은 은행 등 금융기관이 사회간접자본 등 특정사업의 사업성과 장래의 현금흐름을 보고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기법을, 우발채무는 일정한 조건이 발생하면 부채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최근 레고랜드의 자산유동화증권(ABCP) 부도 사태로 투자심리가 악화해 프로젝트파이낸싱 시작이 급격히 냉각되며 프로젝트파이낸싱 우발채무가 많은 건설사를 중심으로 재무부담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최근 롯데케미칼을 포함한 계열사로부터 잇따라 자금수혈을 받은 롯데건설을 향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신용평가 집계에 따른 올해 상반기 기준 주요 건설사의 프로젝트파이낸싱 우발채무 규모를 보면 롯데건설이 4조5천억 원을 웃돌며 가장 많다.

이는 롯데건설뿐 아니라 롯데건설의 최대주주인 롯데케미칼(지분율 43.79%)의 자금 문제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롯데케미칼은 20일 이사회를 통해 롯데건설에 5천억 원을 단기(3개월) 대여하기로 의결했고 이에 앞서 18일에는 롯데건설의 2천억 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로 했다. 롯데케미칼이 롯데건설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규모는 875억 원으로 일주일 사이 6천억 원가량의 지출이 결정된 것이다.

이에 한국신용평가는 롯데케미칼의 신용도 하향 압력이 커졌다는 분석을 내놨다.

오윤재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롯데케미칼은 석유화학사업의 실적 부진과 일진머티리얼즈 관련 대규모 인수자금 지출이 겹치면서 재무안정성이 저하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며 “여기에 계열사 지원 성격의 자금 지출은 신용도 하향 압력을 가중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신용평가는 롯데케미칼의 신용도(회사채: AA+/안정적, 기업어음 A1)의 하향 가능성 기준을 ‘EBITDA/매출이 8% 미만, 총차입금/EBITDA가 3배 초과 상태가 지속할 때’로 잡았다.

EBITDA는 법인세·이자·감각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 세금, 감가상각비용 등을 빼기 전 순이익을 말하는 것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말 기준 EBITDA/매출이 13.3%, 총차입금/EBITDA가 1.5배를 나타냈다. 다만 2분기 연결기준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전환하는 등 실적 부진 탓에 올해 상반기 기준 EBITDA/매출이 4.5%, 총차입금/EBITDA이 4.3배로 모두 한국신용평가의 신용도 하향 가능성 기준에 포함됐다.

한국신용평가는 신용등급에 이 두 기준 외에도 다양한 정량 및 정성 변수들이 고려되기 때문에 이 기준 만에 따라 신용등급이 반드시 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다만 하향 가능성 기준에 포함되는 수치가 지속하면 신용도가 낮아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롯데케미칼은 향후 공격적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데 계열사 지원에 자금부담이 가중되거나 신용도가 실제로 낮아진다면 원활한 차입에 제동이 걸려 적기에 투자를 실시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롯데케미칼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자금 외에도 일진머티리얼즈 동박 생산능력 증설에 1조5천억 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박 생산능력 증설은 일진머티리얼즈 자체 현금으로 해결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파악되지만 추가 자금이 필요할 가능성도 있다.

또 한국신용평가는 롯데건설과 관련해 “계열 지원 등에 기반한 대체자금 조달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최대주주 롯데케미칼이 롯데건설에 추가적 지원을 나설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롯데케미칼은 장기적으로도 2030년까지 배터리 소재사업에 4조 원, 수소 생태계 구축에 6조 원, 친환경 플라스틱사업에 1조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한 ‘2022년 3분기 공모회사채 수요예측 실시 현황’의 신용등급별 현황을 보면 AA등급 이상 우량채에는 4조2천억 원 모집에 9조7천억 원(233%)가 참여해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하지만 A등급은 모집규모가 1조1천억 원에 불과했고 경쟁률도 0.6대 1가량으로 필요자금을 다 조달하지 못했다.

글로벌 고강도 긴축기조 지속에 관한 우려로 상대적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우량채(AA등급 이상)에 시장수요가 집중된 것이다. 레고랜드 사태로 투자심리가 더욱 악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우수한 신용도를 갖추는 것이 기업에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롯데케미칼이 재무부담을 덜고 신용도 하향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업에서 우수한 실적을 거두는 것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석유화학 시황이 단기간에 반등하기 어려울 것이란 시선이 우세하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2023년 일반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석유화학산업은 올해 수요둔화, 공급과잉, 원가상승의 삼중고에 직면했다”며 “전방산업 회복 지연으로 2023년에도 주요 기업의 실적 개선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오 연구원은 “롯데건설의 사업경쟁력, 보유 사업장 입지, 롯데그룹의 재무적 대응력을 고려할 때 롯데케미칼의 이번 롯데건설에 관한 단기대여금 실행이 채권의 미회수로 이어져 재무안정성을 악화하는 요인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며 “그러나 주력 석유화학 사업 실적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에는 신용도 하향 압력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좋지 않지만 롯데케미칼을 비롯한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현금 보유량 등이 많은 점은 롯데건설 추가 계열 지원 가능성 측면에서 긍정적 요인”이라며 “현재로서는 롯데케미칼의 여러 투자가 계획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