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각국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 변화로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EV)로 전환하는 과도기가 길어질 수 있어 보이는데 이 시기에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하이브리드차(HEV) 경쟁력이 완성차업체의 버팀목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주요 시장에 하이브리드차 현지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높은 하이브리드차 판매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어 전기차 전환 과정의 과도기에도 사업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전기차 보조금 축소 움직임, 현대차그룹 하이브리드 전략 빛 본다

▲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국가별 전기차 정책 변경으로 인해 글로벌 전기차 전환 속도가 늦춰질 수 있어 현대차그룹의 하이브리드 전략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도 있다. 사진은 현대차 투싼 하이브리드. 


1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국가별 전기차 보조금 정책 변경으로 인해 글로벌 전기차 전환 속도가 다소 늦춰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2016년 처음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도입한 독일은 최근 2023년부터 보조금 지원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보조금 삭감안을 발표했다. 6만5천 유로 미만 전기차에 최대 6천 유로를 지급해온 독일 연방정부는 내년 보조금 한도를 4500유로로 축소하고 2024년 4만5천 유로 미만 전기차에만 최대 3천 유로를 지원하기로 했다.

영국은 최근 2011년부터 시행한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했다. 가장 앞선 전기차 시장으로 평가받는 노르웨이도 올해 5월 통행료와 주차요금 할인, 부가가치세 면제 등 전기차에 제공하던 혜택을 크게 축소하기로 했다.

전기차 선진시장인 유럽에서는 어느 정도 전기차 보급율을 올렸다는 판단에 따라 전기차 보조금을 줄이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적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는 가운데 전기차 보조금의 축소는 소비자들의 전기차 구매에 비용부담으로 직결돼 하이브리드차 등 다른 친환경차로 시선을 돌리게 할 공산이 큰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도 보조금 정책이 변화하며 전기차 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발효된 인플레이션 완화법(감축법)은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포함)에 대규모 보조금(세액공제)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북미 현지 생산 등을 지급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대다수 글로벌 완성차업체는 당분간 미국에서 전기차 판매에 난항을 겪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인플레이션 완화법 시행과 동시에 기존 보조금 지원 대상이었던 72개 차종 가운데 70%가 혜택 대상에서 제외됐다.

더욱이 기존 완성차업체들은 유럽에서 차를 판매하려면 약 2년 안에 연비를 10% 이상 크게 늘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EU(유럽연합)의 탄소규제 로드맵에 따르면 승용차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을 현재 킬로미터당 95gCO₂에서 2025년에는 15% 낮춘 81gCO₂로, 2030년에는 55% 감축한 43gCO₂로 강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기차 판매를 단기간 늘리기 힘든 상황에서 기존 완성차업체들로서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증권업계에서는 전기차와 비교해 기존 내연기관 시스템을 상당부분 공유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차가 당분간 경제성에 있어 크게 앞설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유지웅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2023~2024년 자동차 업체들의 밸류에이션(적정 주가수준) 반등의 핵심 변수는 결국 파워트레인 다변화 정도와 그 가운데 가장 큰 시장(매스-마켓)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하이브리드(HEV) 경쟁력이 가장 크게 작용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대부분의 내연기관 차량들은 하이브리드로 전환이 예상되고 있어 당분간 많은 업체들이 개발을 서두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차그룹은 유럽에서 많이 판매되는 인기차종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갖추고 현지 생산 기지를 구축하고 있어 전기차로 전환하는 과도기에 하이브리드 경쟁력이 부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 라인업 가운데 올해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는 기아의 유럽전략차종인 준중형 해치백 씨드로 1~7월 모두 9만120대가 판매됐다. 

2위와 3위는 준중형SUV인 투싼과 스포티지로 올 상반기 각각 7만7459대, 6만7490대가 유럽에서 팔렸다. 스포티지와 투싼은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차급인 준준형SUV(C-SUV) 판매에서 각각 1위와 2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들 세 차종은 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가솔린, 디젤 등 전기차를 제외한 모든 엔진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기아 씨드와 스포티지는 기아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투싼은 현대차 체코 노쇼비체 공장에서 생산해 유럽 각지로 배송된다.

현대차는 미국에서도 하이브리드차 현지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차 미국 생산법인은 3억 달러를 투입해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 증설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10월부터 싼타페 하이브리드 생산을 시작한다.

현대차는 2020년부터 투싼 하이브리드 모델의 유럽 현지화를 통해 친환경차 흥행을 이끌어왔다. 올해 싼타페 하이브리드 미국 생산을 시작으로 시장 수요에 맞춘 하이브리드차 판매 전략을 더욱 유연하게 펼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의 2022년 상반기 기준 하이브리드차 판매 비중은 4.2%로 글로벌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기아는 토요타와 혼다에 이어 세계 3위의 하이브리드 판매 비중(7.2%)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기아의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13만5천 대로 1년 전보다 99% 급증했다. 

업계에 따르면 내년에 기아가 국내에 카니발 하이브리드 모델을 새로 내놓을 것으로 전망돼 하이브리드 판매 볼륨을 더욱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전기차 보조금 축소 움직임, 현대차그룹 하이브리드 전략 빛 본다

▲ 기아 스포티지. <기아>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관련 대규모 설비투자를 앞두고 있어 이 기간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사이 징검다리로써 하이브리드차 경쟁력이 투자체력 확보를 위한 수익성에도 큰 영향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와 기아는 2030년까지 전기차 생산 능력 확충과 전용 전기차 라인업 다양화 및 부품·선행기술 개발 등 국내에서만 21조 원 규모를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전용 공장, 배터리셀 공장을 포함한 미국 내 전기차 생산체계 구축에도 모두 6조3천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폴크스바겐, GM, 포드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합작회사(JV) 또는 내재화를 목표로 전기차용 배터리셀 투자를 포함해 해마다 10조 원 이상씩을 5년 이상 투자할 계획을 세웠다. 

김용민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내연기관차 생산라인이 전기차 생산라인으로 전환되는 본격적 전동화 시기에 진입하면 원재료 인상이 아니더라도 완성차 업체들의 수익성은 악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이를 타계하고 전기차 생산을 늘리는 동시에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연기관차 사업이 현재의 마진에서 추가적으로 확대될 여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지웅 연구원도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투자가 본격화 하면서 2023~24년 대부분 완성차 업체들의 미래현금흐름(FCF)이 악화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며 "이 기간 하이브리드차 판매를 확대하는 일이 수익성 유지에 핵심이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