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플레이션 완화법의 전기차 지원 불투명, 수혜기업 찾기 어려워

▲ 미국 정부에서 추진하는 인플레이션 완화 법안의 수혜 대상이 제한된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 미국 미시건주 배터리공장 참고용 이미지.

[비즈니스포스트] 최근 미국 상원을 통과해 법제화 단계에 들어선 인플레이션 완화 법안이 전기차 및 배터리산업에 미칠 영향을 두고 비관적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해당 법안에 포함된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담고 있어 실제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이 매우 제한된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9일 뉴욕타임스 등 외국언론 보도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완화법에 포함된 전기차 등 친환경산업 지원 계획에 관련해 회의적 시각이 나오고 있다.

바이든 정부와 여당인 민주당이 추진해 온 해당 법안은 전기차를 생산하는 기업에 1대당 7500달러(약 979만 원), 중고 전기차 구매자에 4천 달러(약 522만 원)의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상원에서 법안이 과반수 찬성을 얻어 통과되면서 내년 1월부터 시행될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그러나 현재 전기차 시장과 공급망 상황을 고려할 때 수혜 대상이 매우 제한적이고 일부 기업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대부분의 전기차기업이 고가의 차량을 주력으로 앞세워 판매하며 수익성을 높이고 있는 만큼 전기차 보조금은 결국 기업들과 부유한 소비자들에만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고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 포함되는 차량 가격은 2만5천 달러 이하인데 현재 중고차시장에서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차량은 20%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도 실효성에 의문을 남기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에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태부족한 상황과 전기차 구매 지원이 실제로 탄소 감축에 기여할 수 있는 효과를 고려할 때 이는 "불편한 진실을 무시하고 있는 법안"에 그친다고 비판했다.

전기차에 정부 보조금을 받으려면 배터리 생산 공정이 대부분 북미에서 진행되어야 하고 40% 이상의 배터리 소재가 미국 및 자유무역 협정 국가에서 수입되어야 한다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IT전문지 아스테크니카는 현재 북미에 전기차 배터리공장을 짓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 한국 배터리업체들의 제품이 보조금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배터리 소재의 40% 이상을 정해진 지역에서 수급해야 하는 조건을 만족하기는 현재로서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흑연과 코발트, 리튬 등 주요 소재가 거의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소재 수급처를 다른 국가로 변경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사도 자연히 소재 수급처를 단기간에 빠르게 다변화하지 않는다면 대규모 지원 법안에 따른 수혜를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인플레이션 완화법의 전기차 지원 불투명, 수혜기업 찾기 어려워

▲ 테슬라 전기차 주력차종 '모델Y' 이미지.

바이든 정부와 미국 민주당은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에 의존을 낮추겠다는 중장기 목표를 두고 해당 법안에 까다로운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스테크니카는 "인플레이션 완화법에 따른 전기차 지원 보조금 대상에 해당되는 차량이 아예 없을 수도 있다"며 미국의 전기차 생산 확대 속도가 오히려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고 바라봤다.

세계 주요 전기차 및 배터리기업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고 북미에 본격적으로 대규모 생산 투자를 추진하는 단계에 와 있다. 한국 배터리 3사와 현대자동차그룹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들의 공장 가동이 앞으로 수 년 뒤에 시작되는 반면 정부의 배터리 지원법은 당장 내년부터 시행되는 만큼 보조금이 단기간에 소진돼 한국 기업들이 수혜를 보기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

현재 미국에서 대규모 전기차 및 배터리 생산공장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테슬라 등 일부 기업만 소재 수급처를 서둘러 다변화해 수혜를 독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최근 전 세계에서 자체적으로 리튬 등 배터리 소재 공급 계약을 잇따라 체결한 일도 결국 미국 정부의 지원 법안을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CNBC는 바이든 정부가 여러 단점을 고려해 전기차 및 배터리 지원법을 일부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배터리 소재 수급처를 제한하는 일이 이미 급격하게 오른 여러 핵심 소재의 가격 상승세를 더 자극하고 품귀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CNBC는 "정부의 전기차 지원 정책에 승리자와 패배자가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로서는 수혜 기업이 존재할지 여부가 불확실해 보인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