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전쟁을 통해 미국은 국가로서 '완성형'이 됐다. 남북전쟁을 다룬 영화의 한 장면. |
[비즈니스포스트]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남자 주인공인 레트 버틀러는 "남자가 돈을 벌 때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가를 세울 때, 다른 하나는 국가가 망할 때"라고 말한다. 믿기 어렵곘지만, 이외로 나라가 망할 때가 돈이 된다.
레트 버틀러는 남북전쟁 때 남군 편에 섰다. 그리고 밀수로 떼돈을 벌었다. 그것은 '대의'가 있는 밀수였다. 그는 남군을 위해 면화를 밀수출하고 무기를 밀수입했던 것이다.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영국은 북부와 동맹이 되어 남부에 대한 해상 봉쇄를 실시한다. 해군 전력이 변변치 않았던 남부는 주요 수입원이었던 면화 수출길이 막힌데다 무기를 들여올 수 없어, 결국 초반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패배한다.
남부의 계산이 틀린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남부는 세계 최대의 방직 산업국가인 영국이 남부의 면화를 수입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계산치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국에게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 주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 전의 '계산'으로는 영국이 오히려 남부편을 들거나, 최소한 '중립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국은 북부편을 들어 남부산 면화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남부의 면화가 노예들에 의해 생산된, 비인도주의적인 상품이라는 것이었다(영국은 1800년대 초에 노예 무역을 금지하고 1830년대에는 노예제를 금지한다). 그리고 면화 금수로 영국은 막대한 손실을 입기는 했다.
그러나 이 손실은 북부의 승리 후 미국 전역이 '산업화'되면서 영국이 얻게될 막대한 금융적, 산업적 이득에 비하면 미미한 것에 불과했다. 게다가 영국은 남부의 면화를 대체할 새로운 생산지를 개발하기도 했다. 오늘날 이집트와 인도가 면화 주요 생산지가 된 것은 남북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남북전쟁을 기점으로 미국은 세계의 새로운 산업기지로 떠오르며 영국의 산업은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금융'으로 점차 옮겨가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19세기 후반의 '제 1차 세계화'(1980년 이후의 세계화는 역사적 관점에서 제 2차 세계화에 해당한다)의 시작이었다.
남부의 농업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이해의 관점에서 정세를 판단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글로벌' 차원에서 세계 전략을 짜는 (당시의 헤게모니 국가인) 영국의 자본가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북부는 왜 남부와 싸웠을까? 노예제니 인권이니 따위는 전쟁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만일 인간들이 그런 도덕적 대의를 위해 전쟁을 벌일 정도였다면, 지금쯤 우리는 지상 낙원에 살고 있을 것이다.
링컨의 발언에서 북부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 "우리는 유니온(union)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유니온이 유지될 수만 있다면, 노예제는 없어지면 더 좋겠지만, 존속하더라도 상관없다".
북부의 자본가들은 '국가의 통일(또는 통합)'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필자가 초중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지리부도에서 미국의 명칭은 "미합중국"이었다. 합중국은 여러 국가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이 원래 미국 건국의 이념이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founding fathers(건국 헌법 기초 위원들)은 지금과 같은 중앙집권화된 연방 국가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오히려 명시적으로 반대했다). 남북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그저 여러 자치 공화국들의 연합에 불과했다.
산업화가 급진전되던 북부로서는 자원생산지인 남부가 '외부'에 남도록 남겨둘 수는 없었다. 남부의 인구와 자원을 내부화지 않는다면, 미래에는 남부는 주요한 경쟁자이자 대립자가 될 것이었다. 그래서 북부는 '통합'(union)을 원했고, 연방으로부터 탈퇴하려던 남부와의 전쟁은 불가피했다.
전쟁을 통해서 남부는 내부식민지화되었다. 그러니 남부의 백인들이 북부에 대해 갖는 유감을 단순히 감정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10여 년이 지난 뒤, 북부는 남부 자본가들의 협조를 얻기로 하는 대신에 남부에 주둔하고 있던 북군을 철수시켰다. 이 때부터 남부의 흑인들에 대한 '분노'가 구체화되었다. KKK는 이 때 탄생했으며, 짐 크로우(인종차별 제도)도 이같은 북부의 묵인을 바탕으로 나타난 것이다.
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이같은 미국의 국내적 '정세'는 국제적 정세와 미묘하게 얽히면서 한 번 더 뒤틀린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지나자, 이미 유니온(union)은 더 이상 의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 고정적인 조건이 되었고, 다만 이제는 이 union은 어떤 union이어야 하는가가 문제일 뿐이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독일이 승리한다면 독일의 자본가들이 미국 내의 흑인들와 합세하여 미국을 정복하려 한다는 공포감을 고취시키는 대중적 선전물이 등장한다. 영화사에서 첫 번째 상업영화이자 첫 흥행작인 '국가의 탄생'이 바로 그것이었다.
국가의 탄생은 외부로부터 미국을 지키기 위해 내부를 '정화'해야 한다는(즉 흑인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아주 노골적인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유니온의 탄생,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을 준별하면서 국민통합(백인 총단결)을 이루자는 새로운 이념을 제시했고, 대중들은 이를 반겼다.
이렇게해서 미국은 국가로서 '완성형'이 되었다. 즉, 오늘날 우리가 아는, 다인종 이민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민족국가가 된 것이다. 미국은 세번의 전쟁(독립전쟁, 남북전쟁, 1차 대전)을 통해 비로소 국가가 된 것이다.
▲ EU가 미국처럼 완성형 국가로 나아갈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6뤌2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금의 유럽은 미국의 길을 걷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은 비록 EU(european union)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는 '국가'의 형태를 띄고 있지는 못했다.
지난 2007년 금융 위기 이전까지는 기껏해야 관세동맹에 기초한 통행조약(자유로운 이동)에 불과했다. 그리고 유럽을 '하나의 국가'로 만드는 것은 신성로마제국이 붕괴한 이래 유럽 통합론자들의 꿈이었다.
문제는 유럽인들의 대다수가 유럽 통합에는 찬성하지만, 그 형태가 '하나의 국가'라는 데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EU는 국가로서의 행정적 구속력을 갖지 못했으며, 이같은 EU의 취약점은 그리스 부채 위기나 영국의 탈퇴(브렉시트)를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게다가 국가로서 유럽 통합을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관철시킬 수가 없다. 지금도 별 문제없이 돌아간다면, 굳이 자신들이 수백년 동안 지속해온 기존 국가를 버리고 통합 국가로 옮겨갈 이유가 없다.
미국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이같은 질적인 통합은 위기 상황(전쟁)을 통해서만 이뤄진다.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가 그같은 시도를 한 사람들이었나 실패했으며 오히려 분열을 촉진시켰다.
그러나 자신들이 직접 개입하지 않는 외부의 적을 통한 위기가 형성된다면 이는 국가 형성에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 지난 26일 EU는 29개 회원국이 모두 공통적으로 15%의 천연가스 소비를 감축키로 결정했다.
이는 사소한 이슈조차도 공통적으로 결정하는데 온갖 소동을 다 겪는 EU의 관행으로 보아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다(오죽하면 EU의 유일한 업적은 USB 포트 통일화라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다).
왜냐하면, 러시아산 가스 공급 중단에도 불구하고 EU 회원국마다 에너지 수급 사정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스페인이나 스칸디나비아 3국은 천연가스 공급에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에 굳이 감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천연가스 소비 감축은 국민들에게 큰 부담을 줄뿐만 아니라, 산업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 결정을 이끌어냈다는 것은 EU가 '국가'로 한걸음 나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지난 주에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EU 의사 결정 구조를 바꾸어 전원 합의제가 아닌, 다수결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EU 차원의 의사 결정에서 일부 회원국의 반대가 있더라도 다수가 찬성한다면 관철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일반적 의미에서의 국가의 의회 형태를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앞서도 말했듯이, 이는 EU로서는 정말 특이한 사건이다. EU가 이럴리가 없다. 이런 동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이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진지하게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이를 기화로 더 큰 이득이 존재한다는 보장이 있어야만 한다.
필자는 후자의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본다. 지난 7월 1일자 독일 '슈피겔'을 보자.
슈피겔은 EU의 대 러시아 제재가 어떻게 결정되었는지를 매우 자세하게 보도했다.
(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지난 2021년 11월 확정되었다. 당시 미국의 윌리엄 번즈 CIA 국장이 러시아를 방문한 뒤 브뤼셀(EU 본부 소재지)에 들러 이같은 사실을 통보하고 대책을 마련해 왔다. 즉, 전쟁 발발 전에 모든 시나리오는 준비되어 있었다. 이것이 전쟁이 개시되자마자 수천건의 제재 발표가 일제히 나올 수 있었던 이유다.
(2)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덴 EU 대통령 비서실장의 발언에 따르면, 경제 제재가 유럽을 해치는데도 불구하고 독일이 이에 동의한 것은 독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차피 독일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광범위한 제재를 내릴 것이기 때문에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독일 기업들이 제재에 저촉된다는 것이다. 그럴 바에야 아예 독일이 선제적으로 동의해주는 것이 나았다는 주장이다.
(1)은 약간 의심스러운 주장이다. EU의 업무 처리 능력으로 보았을 때, 고작 3개월 여 만에 대규모 제재 조치를 준비하지 못한다. 아마도 미국이 건네준 제재 내용을 그대로 수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부분적인 변용만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같은 논의가 공식 외교 채널, 즉 미 국무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CIA 국장을 통해 전달되고 개시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외교'는 확실히 실종된 것 같다. 즉 미국의 기본 입장은 외교가 아니라, 전쟁이었다. 미국이 대러시아 외교 채널을 처음 가동한 것은 전쟁 발발 3개월이 다 된 5월 중순 무렵이었다. 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결정된 것은 슈피겔이 보도한 2021년 11월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앞선 2021년 3월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2)번 주장은 상당히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독일이 동의하지 않는 제재는 미국도 함부로 부과하지 못한다. 만약 메르켈 총리였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럽이 스스로 발목을 잡는 천연가스 수입 중단 결정을 내린 것은 계산 착오라기보다는 (독일처럼 논리적인 국가가 이를 계산하지 못했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상상이다), 의도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다만 러시아의 역공으로 그 고통의 폭이 독일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당황한 것으로 보인다.
천연가스 문제는 군사적 정치적 지원은 하지만 구경꾼으로 남을 수 있는 외부의 전쟁이 내부의 '위기'로 느껴질 수 있는 고리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도 대체 에너지를 미래 정책 방향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어필하기도 훨씬 쉽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여전히 설명이 안된다. 유럽 통합은 근사한 꿈이기는 하지만, 굳이 이 난리를 쳐가면서까지는 안 해도 된다. 유럽 통합은 그 과정에서 뭔가 이득이 있어야, 또는 잠복된 내부의 어떤 위기를 호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
그 전에 먼저 '계산착오론'부터 보자.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도반 총리가 22일자 연설에서 아주 잘 요약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만으로도 충분히 러시아를 격퇴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었다. 오판이었다.
(2)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로 러시아 사회가 동요/붕괴할 것으로 예측했었다. 역시 오판이었다.
(3) 대규모 선전전으로 국제적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실 전쟁에서 패하고 있으면 선전전의 효과는 반감한다. 게다가 국제 정세는 훨씬 냉혹해서 서구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대부분 나토의 주장에 대해 중립적이거나 혹은 동의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러시아 국제 공조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판이었다.
오르도반은 이 때문에 기존 정책을 포기하고 평화를 위한 협상을 촉구한다. 그러나 그는 EU 내에서는 소수파이기 때문에 그의 진단은 유용하지만, 대책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다만, (3)은 더 이상 숨길 수 없이 EU 내에서도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U의 부통령인 죠셉 보렐은 G20 재무/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한 뒤 지난 11일 블로그에 "Global South'(개발도상국)은 우리와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
그는 "국가적 이해 관계는 종종 더 높은 이상에 대한 헌신보다 우선한다는 것이 냉혹한 진실"이라고 G20 장관 회담에서 유럽과 미국이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
아마도 유럽의 '더 높은 이상'에 대해서는 인도 대외담담 장관인 쟈이샹카가 아주 잘 평가한 것을 보인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문제는 세계 전체의 문제인 줄 알고, 세계의 문제는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럽의 각 국가들이 서로 다른 이해 관계에도 불구하고 동의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한 힌트는 '더 높은 이상' 같은 고매한 교양이 아닌, 오히려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다. ECB(유로존 중앙은행)이다.
ECB는 지난 25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 인상과 더불어 매우 새로운, 그러나 옛 것의 확대판인, TPI(Transmission Protection Instrument) 정책을 발표했다. 공식 발표문 만으로는 구체적인 세부 사항이 누락되어 있어 현재로서는 정확한 성격을 알기 힘들지만, 문맥상 무제한 QE(양적완화)다.
QE는 ZLB(zero lower bound-제로 금리 혹은 마이너스 금리) 아래에서 금리로 할 수 없는 통화정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수단이라는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의 주장과는 달리, 0% 금리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심지어는 상당히 고금리 하에서도 QE가 가능하다.
왜냐하면, 어차피 QE는 실물 경제 대책도 아니며, 인플레이션과는 무관하고(주택 채권을 매입하지 않는 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있다), 그 핵심은 국채 가격 안정화에 있기 때문이다(이것이 일본 중앙은행이 엔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죽어라소 일본 국채를 매입하는 이유다).
만일 ECB가 무제한 QE를 하면, 유럽의 국가들은 재정 걱정이나 통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아마도 EU 차원에서 유로존 통합 채권(euro bond pool)을 발행하고 ECB가 이를 매입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유럽의 국가적 통합에 결정적 고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단서 조항이 붙는다. ECB는 유로화 사용 국가(19개국)의 중앙은행인데도 불구하고, EU(29개 회원국)의 재정 규칙(GDP의 3% 이내 재정 적자 준수)과 정책 방향(기후 변화 대응 경제 체제 전환,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준수할 것을 전제 조건으로 요구한 것이다.
즉 이같은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ECB가 해당 국가에 대해 QE를 해준다. 여기서는 중앙은행이 개별 국가의 상전이다. 그리고 이는 중앙은행이 '정치로부터'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에 개입'하는 것으로 성격이 전환되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물론 이는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지난 2010년에는 당시 미셀 트리세 ECB 총재가 공개적으로 아일랜드에 대해 규제 완화 및 노동시장 개편을 요구했었고(이 때문에 당시 아일랜드 정권이 붕괴했다), 2011년에는 이탈리아가 규제 완화 정책에 반대하자 당시 총리였던 베를루스코니가 실각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그러나 적어도 명문화된 공식적 정치 개입은 아니었던데 반해, 이번 조치는 대놓고 ECB가 각국을 규제하는 강제력을 가진 주체로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탈리아 정치권은 전 ECB 총재였던 마리오 드라기 총리를 실각시킴으로서 이에 응수했다(드라기는 사실상 ECB가 꽂아놓은 총독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이탈리아는 ECB에게 굴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제안한 "미국이 우호적인 국가에게는 달러를 제공하는 경제 블록"은 주권이나 인민의 생활 수준 하락을 문제로 삼기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든, 혹은 사태의 전개에 따라 '위기를 기회로' 삼아 대응을 한 것이든, 현재 유럽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완성된 국가'라는 틀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위기가 좀 더 오래 지속되어야 한다. 외부의 적이 없는 국가는 강력한 중앙집권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의 국가화가 성공할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19세기 중반 미국이 유니온을 형성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제 막 새로운 세계화가 시작되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세계화 시기에는 글로벌 성장률이 높아지며 자본주의의 발전 앞에서 내부의 차이 따위는 쉽게 극복된다.
그러나 지금은 향후 수십년간에 걸쳐 발생할 de-globalization 시대의 출발점이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이 시기에는 기존의 국가들 사이의 장벽은 높아지며 내부의 대립은 격화되고 경제는 소모적인 것이 된다. 즉 각개약진이 우리 미래의 모습이다. 이 세계사적 추세에서 유럽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운명은 어떻게 끝이 날 것인가? |
국가는 혹은 코미디에 의해서도 탄생한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인 젤렌스키는 TV 시리즈에서 대통령 역을 맡아 선풍적인 인기를 끈 코미디언 출신이다. 코미디언이라고 해서 국가 원수를 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으며, 제대로 못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한국의 예를 들자면, 진지하게 말해서, 불심으로 대동단결 스님이나 공중부양 허 선생이 MB보다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진용이 다음과 같으면 좀 곤란하다.
안드레 예마르크 : 대통령 비서실장. 코미디 PD.
안드레 보딘 : 대통령 행정실장. 연예계 전문 변호사.
세르게이 세피 : 대통령 수석 보좌관. 코미디 극작가.
이반 바카노프 : 비밀정보국장(며칠 전에 해임되었다). 코미디 제작자.
세르게이 시보코 : 국방위원회 수석 보좌관. 코미디언. 젤렌스키 동료.
한국식으로 치자면, 유재석을 필두로 나영석 김태호 PD와 코미디언 동료들이 국가 원수와 정권 주요직을 맡고 있는 셈인데, 이건 아마추어라서 문제가 아니라, 웃기지도 않아서 문제라고 해야 한다.
여기서 곤란하다는 것은 이들이 유재석과 그 사단이라서 곤란하다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아무런 정치적 기반이 없는, 그야말로 참신한 인물들이었다. 기존의 부패한 정치인들을 등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들의 숭고한 철학이었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정치적 기반이 없으면 휘둘리기 십상이며 그래서 곤란해진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됐다. 젤렌스키는, 아마도, 진정으로 평화를 갈망한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의 후견인이자 '물주'인 우크라이나 올리가키(재벌) 코이몰로스키의 사업 기반이 남부 돈바스주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이몰로스키로서는 내전을 종식시키고 정치적 안정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젤렌스키는 당선 직후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Azov Battalion의 해산을 시도하고 평화를 구축하려고 했다. 그러나 임기 1년을 넘기자 군부와 Azov Battalion의 협박에 굴복했다.
그래도 소소하게나마 젤렌스키 정권의 저항은 간헐적으로 있기는 했는데, 결국 지난 21년 9월 미국은 코이몰로스키를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모든 것이 끝났다. 진짜 '주권자'가 권력을 행사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2005년 이후로는 주권 국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냥 주권 국가인 척했던, 과거에 존재했던 어떤 이름의 그림자, 혹은 꼭두각시였다. 주권국가가 아닌데,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의미가 있을 리가 없다. 이 때의 민주주의는 현실을 은폐하는 그저 달콤한 자기위안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러니 젤렌스키가 코미디언이어서 문제였던 것도 아니며, 아마추어라서 문제였던 것도 아니고, 그가 웃기지 못해서 문제였던 것도 아니다. 그가 무엇이었든 이 경로는 피해갈 수가 없었다. 만일 그가 진정으로 대중의 의지를 반영해 '주권'을 행사하려고 했다면, 그는 이미 진작에 Azov 무리에 의해서 토막이 나있었을 것이다.
나쁜 사람은 아니며, 좋은 사람도 아니고, 파시스트도 아니며, 민주투사도 아니다. 그냥 아무 것도 아니다. 그저 운 나쁘게도 웃길 수 없는 곳에 떨어진 가련한 코미디언에 불과했다.
그의 여정은 이제 끝났다. 미국은 이미 손을 놓았고, 러시아도 그를 제거하기를 원한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이 "우크라이나의 현재 체제를 전복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힌 것을 두고, 외신들은 러시아가 젤렌스키를 제거하려 한다고 이제와서 호들갑이지만, 그의 여정은 벌써 한참 전에 이미 끝나 있었다.
지난 6월 초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평화 협정은) 우크라이나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을 때 이미 미국은 젤렌스키 정권으로는 안된다는, 즉 이 전쟁을 계속 수행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나머지는 그저 누가 그 악역을 맡느냐 혹은 그 크레딧을 가져가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지난 주에 해임된 바카노프 정보국장은 젤렌스키의 심복 중의 심복, 차라리 분신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동향친구이며 죽마고우다. 젤렌스키가 바카노프를 자의적으로 해임할 리는 없다. 바카노프에 이어 정보국장 대행이 된 인물은 젤렌스키의 정적인 전임 포로센코 대통령 계열로 알려져 있다.
젤렌스키의 최후의 코미디가 어떤 식으로 끝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미 끝났으며, 결코 희극은, 심지어는 촌극조차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공순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