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탈선에 원희룡 철도 개편 속도 내나, 코레일 긴장감 고조

▲ 1일 대전 조차장역 인근에서 발생한 SRT 탈선사고 현장의 모습. <대전소방본부>

[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공공기관 혁신에 고삐를 쥐는 시점에 열차 탈선 사고가 발생하면서 한국철도공사 내부에 긴장감이 높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 전부터 차량 정비, 철도 관제 등을 손 보겠다는 생각을 밝혀 온 만큼 이번 사고를 계기로 철도 관련 제도 정비에도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

4일 국토교통부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지난 1일 대전 조차장역 인근에서 발생한 경부선 SRT 탈선사고를 놓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탈선 사고는 1일 부산역을 출발해 서울 수서역으로 가던 SRT 338호차가 대전 조차장역을 통과하던 중에 발생했다. 사고 열차에는 370명 정도 승객이 타고 있었으며 1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번 탈선 사고의 원인을 놓고는 철로 결함이나 차량 결함 등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갑작스런 기온 상승에 철로가 휘는 장출(Buckling) 현상에 따른 철로 결함 가능성이 있지만 정비 불량에 따른 차량 결함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1차 조사과정에서 선행 열차가 차량 운행 중 진동을 감지해 대전 조차장역에 신고했음에도 사고 열차에 감속 등 지시가 없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관제 책임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열차 탈선 사고는 그 자체로 변수가 많은 데다 한국철도공사는 물론 국가철도공단, SR 등 다양한 주체가 얽혀 있는 만큼 원인 규명은 신속하게 이뤄지기 어렵다. 가령 철로 장출이 사고 원인이라고 하더라도 설계 및 건설의 문제인지, 유지 및 보수의 문제인지에 따라 책임 주체는 달라진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철도 사고에는 워낙 다양한 가능성이 있어 정확한 원인을 밝히는 데는 1년 넘게도 걸린다”며 “이제 막 조사가 시작된 만큼 현재 시점에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속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철도공사로서는 이번 탈선 사고의 책임 판정 결과와 별개로 당장 진행될 정부의 후속 조치에 어느 때보다 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 혁신'을 내세우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한국철도공사는 기획재정부가 6월30일 발표한 재무위험기관 14곳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원 장관이 지난 6월23일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에 일주일 내로 혁신안을 제출하라는 요구를 하는 등 산하 공공기관을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점도 코레일의 부담을 높이는 요인이다.

원 장관은 지난 6월29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개선이 필요한 산하기관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 한국철도공사 등 공기업 세 곳을 콕 찝어 지목하기도 했다.

이른바 한국철도공사 혁신은 단순히 재무분야의 관리에 그치지 않고 열차 정비, 관제 등을 둘러싼 한국철도공사의 역할과 관련된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원 장관은 지난 3일 열린 탈선 사고 관련 대책회의에서 “고속열차가 일반 선로를 지나가거나 열차가 분기되는 구간 등 취약한 부분과 관련해 특별점검뿐 아니라 현재 유지보수 체계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철도 안전, 국민 편의, 공공 효율 차원에서 현장 관리부터 열차 운영에 이르기까지 철도 안전 체계 전반을 철저히 분석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말했다.

사실 원 장관은 취임 전부터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철도 제도 개편의 의지를 내보여 왔다.

원 장관이 추구하는 철도 정책은 주로 한국철도공사의 역할을 축소하는 방향이다. 구체적으로는 열차 정비에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방안, 철도시설 관리 및 철도교통관제를 국가철도공단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거론됐다. 

원 장관은 지난 4월30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철도시설 건설과 유지보수, 개량업무를 국가철도공단으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놓고 안전성,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할 것”이라며 “철도 관제와 관련해서도 제2관제센터 구축과 연계해 국가철도공단에서 관제를 수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철도공사로서는 원 장관의 방침대로 열차 정비를 제조사 등 민간기업이 주도하고 철도관제를 국가철도공단에 넘기게 되면 사실상 열차 운영사의 역할만 남게 되는 만큼 위기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철도 노조는 원 장관의 철도 정책 등을 놓고 철도 민영화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가 열차 운영사로 전락한다면 현재 일부 구간이 SR로 분리된 것처럼 한국철도공사를 쪼개는 일이 매우 용이해 지기 때문이다.

철도 노조는 6월28일 ‘철도의 날’에 원 장관의 철도 정책과 관련해 “정부가 추진하는 관제권 이관 등은 사실상 철도 민영화”라며 대규모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