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Who] 롯데그룹이 달라졌다, 신동빈은 어떻게 변화를 채찍질하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비즈니스포스트] 롯데그룹이 달라졌다. 보수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 탓에 변화에 둔감하다는 평가는 이제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신동빈 회장이 수 년 동안 위기를 강조했음에도 좀처럼 변하지 않던 롯데그룹에 수혈된 외부 인재들이 기존 모습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DNA를 만들어내고 있다.

신 회장 스스로 롯데그룹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점도 변화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원동력이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롯데그룹의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롯데그룹이 20일 현대자동차그룹, KB자산운용과 ‘전기차 초고속 충전 인프라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을 추진하기 위한 협약을 체결한 것은 달라진 롯데그룹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협약식에는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과 공영운 현대차 사장, 이현승 KB자산운용 대표이사 등이 참석했다. 해당업무를 맡는 임원급 실무자가 아니라 각 기업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직접 참석했다는 것은 그만큼 상징성이 큰 협력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롯데그룹이 오랜만에 국내 재벌기업과 손을 맞잡았다는 점에서 이번 협약에 의미가 있다.

국내 재벌기업들은 수 년 전부터 합종연횡에 속도를 올려왔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려면 그룹 내부의 역량뿐 아니라 외부와 협력하는 것이 필수인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각 그룹이 보유한 주력사업 노하우를 결합하는 방식은 신사업 추진 속도를 높여주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롯데그룹은 이런 흐름에 비교적 소외된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020년 상반기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을 차례대로 만나 전기차 배터리사업과 관련해 동맹 구도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자리에 롯데그룹은 빠졌다.

신동빈 회장이 2020년 11월 정 회장을 롯데케미칼 첨단소재 사업장으로 초청해 사업현장을 둘러보게 하며 뒤늦게 미래 모빌리티 산업과 관련한 협력구도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앞선 그룹들과 비교하면 협력의 강도가 세진 않았다.

수소기업협의체 출범 논의가 한창 진행될 때도 롯데그룹은 다소 소외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2021년 6월 현대차기아 기술연구소에서 만나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 민간기업 주도의 협력 필요성을 논의하며 수소기업협의체 출범을 공식화하는데 합의했다.

롯데그룹이 롯데케미칼을 통해 수소사업을 육성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음에도 수소기업협의체 출범에 주축이 되지 못한 것이다.

롯데그룹은 수소기업협의체 10개 주요기업 명단에 포함되긴 했지만 미래사업을 선도하는 그룹이라는 이미지는 주지 못했다.

이런 이력들을 놓고 볼 때 롯데그룹이 현대차그룹, KB자산운용과 손을 잡고 미래 사업을 위해 힘을 합치기로 한 것은 주요 대기업들의 합종연횡 흐름에 본격적으로 올라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롯데그룹의 변화를 보여주는 다른 단면도 있다. 의사결정의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는 점이다.

롯데그룹의 통합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롯데온은 18일부터 롯데마트몰의 새벽배송 서비스를 중단했다.

롯데온은 주문한 지 2시간 만에 배송해주는 바로배송 서비스의 이용 고객이 새벽배송보다 많다는 점에서 철수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새벽배송에 주력하며 점유율 경쟁을 놓지 않는 상황에서 롯데온의 결정은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롯데온이 누적되는 영업손실 규모를 본 뒤 출혈경쟁만으로는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한 것으로 이커머스업계는 본다.

롯데그룹이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의사결정 구조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롯데온이 새벽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2020년 5월이다. 새벽배송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와 관련한 투자가 이뤄졌음에도 2년 만에 서비스를 중단한 것은 최고경영진의 결단이 없다면 쉽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보수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로 유명한 롯데그룹이라면 이런 결정은 애초 검토 대상에 오르지도 못했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롯데그룹이 ‘되지 않으면 빨리 포기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어낸 덕분에 이례적인 속도로 의사결정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
[오늘Who] 롯데그룹이 달라졌다, 신동빈은 어떻게 변화를 채찍질하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제과와 롯데푸드의 합병도 빠른 의사결정 구조가 구축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롯데그룹이 비슷한 사업구조를 지닌 롯데제과와 롯데푸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미 예전부터 나왔다.

하지만 롯데그룹은 두 회사의 사업구조를 효율화하는 방안을 좀처럼 찾지 못했는데 최근 들어 합병 논의가 급물살을 탄 덕분에 결국 올해 7월 롯데제과 통합법인이 출범한다.

롯데그룹은 신사업 진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지주는 새 성장동력으로 바이오와 헬스케어를 점찍었다. 곧 바이오사업과 관련한 진출방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며 헬스케어는 이미 담당 법인인 롯데헬스케어를 세우며 첫 발을 뗀 상태다.

롯데그룹이 5대 그룹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인 인수합병 DNA도 되살아나고 있다.

롯데지주는 올해 초 미니스톱 인수에 3천억 원가량을  쓴 데 이어 롯데렌탈을 통해 차량공유기업 쏘카에도 1800억 원가량을 투자했다. 롯데그룹이 지난 1년 동안 인수합병이나 지분 투자에 쓴 금액은 모두 1조 원이 넘는다.

롯데그룹의 변화는 신동빈 회장이 계속 강조해온 위기감에서 촉발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지난 수 년 동안 신년사나 VCM(옛 사장단회의) 등을 통해 위기를 수없이 강조했음에도 변화에 굼떴던 점을 고려하면 최근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분명 달라 보인다.

조직문화의 혁신이 롯데그룹의 변화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과거 롯데그룹이 말했던 위기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실행력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다. 보수적 기업문화가 롯데그룹의 총체적 변화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외부 인재 영입이 급격히 늘어나고 롯데그룹의 순혈주의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이런 보수적 기업문화도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게 롯데그룹 안팎의 시선이다. 롯데그룹의 보수적이고 경직된 과거 DNA가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변화의 방향성이 뚜렷해지고 이에 공감하는 롯데그룹 임직원들이 많아졌다는 것도 변화가 빨라질 수 있었던 배경이다.

신 회장이 과거 롯데그룹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할 때만 해도 방향성이 모호했다.

하지만 최근 바이오와 헬스케어, 메타버스, 미래 모빌리티 등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면서 목표가 뚜렷해지자 롯데그룹의 움직임이 빨라질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