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삼성 준법감시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이른 시일 안에 대국민 사과 내용에 관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마련해 준법감시위에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준법감시위 관계자는 “명확한 시한은 정해지지 않았다”면서도 “조만간, 빠른 시일 안에 답을 달라고 요청했다”라고 전했다.
이 부회장은 6일 대국민 사과에서 앞으로 경영권 승계를 두고 논란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노동자와 회사의 상생을 도모하고 시민사회와 소통을 강화하며 준법경영에도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이 가운데 이 부회장이 당장 뚜렷한 실천방안을 내놓을 만한 분야는 ‘노사상생’으로 꼽힌다.
경영권 승계 문제와 관련한 부분은 아직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이 부회장 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기 쉽지 않다.
검찰은 2015년 9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할 때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도록 그룹 차원에서 삼성물산의 주가관리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이 최대주주로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가 저질러졌다는 의혹이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16년 12월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승계와 무관하다고 밝혔는데 이제 와서 승계 문제와 관련한 실천방안을 마련하면 검찰 조사나 재판에서 결론이 나지도 않은 의혹을 사실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사안들은 당장 실천방안이 급하지 않다.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문제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준법경영은 최근 준법감시위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노사상생 문제는 이 부회장이 비교적 빠르게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특히 삼성그룹 창립 이후 지속된 ‘무노조경영’을 철폐하는 데 이 부회장 역할이 중요하다.
삼성그룹은 2019년 말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사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화재 등 주요 계열사에서 잇따라 노조가 설립되며 새 노사문화의 장을 열었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회사에서 노조 활동을 방해한다는 의혹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삼성전자가 노조 홍보메일을 일괄 삭제하거나 삼성디스플레이가 내부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가시화한 후 일부 사업부에만 격려금 지급을 결정하는 등의 사례가 외부로 알려졌다.
이에 삼성그룹 노조 6개는 6일 노조연대를 결성하고 “노조 설립과 운영을 방해하는 것은 불법행위로 결코 경영일 수 없다”며 “삼성은 노조를 인정하고 활동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 부회장이 다짐한 노사상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자유로운 모집과 가입 등으로 활동을 보장하는 방향의 실천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 문제도 이 부회장이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다.
김용희씨는 1991년 삼성항공(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노조 설립을 시도하다 해고된 뒤 1994년 삼성물산으로 복직했지만 이후 1년 만에 다시 회사를 나와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10일부터 삼성 서초사옥 앞 교통관제탑 꼭대기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 따르면 그동안 삼성측은 김용희씨가 소속됐던 법인이 현재 삼성그룹 소속이 아니라는 점, 사건 당시 관련 직원들이 삼성그룹에 남아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김용희씨에 관해 뚜렷한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김용희씨를 관제탑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이 이 부회장의 사과에 진심을 더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7일 서울 서초구 삼성사옥 앞 교통관제탑에서 농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7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삼성그룹이 무노조경영을 포기한 시각 강남역 철탑 위에서 김용희씨가 3번째 단식을 시작했다"며 “삼성과 대한민국 기업경영의 새 출발이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첫 출발과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이처럼 노동문제 등이 포함된 대국민 사과에 관해 얼마나 진정성 있는 실천방안을 내놓느냐에 따라 앞으로 있을 재판에서 형량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는 재판부가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 재판을 담당하는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2019년 10월 첫 재판 때 준법감시위가 재판결과와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이후 "이 제도(준법감시위)는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며 준법감시위 활동을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정 부장판사는 1월22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항소심에서 준법감시실을 신설하고 독자적으로 준법경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1심의 징역 5년보다 감경된 2년6개월을 선고하기도 했다.
준법감시위 운영을 양형에 반영하는 것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떠나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의 올바른 활동을 전제로 형량 감경을 검토하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이 부회장이 준법감시위 권고에 따른 대국민 사과의 실천방안을 깊이 있게 고민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및 최순실씨 국정농단사태와 관련한 항소심에서 최씨 쪽에 제공한 뇌물 가운데 36억 원가량만 인정돼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하지만 2019년 8월 대법원은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경영승계 청탁과 대가성 뇌물공여, 마필 뇌물 제공 등 혐의를 놓고 고등법원에서 범죄사실과 형량을 다시 심리해 판결해야 한다고 보고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이 부회장이 제공한 뇌물규모가 80억 원 이상으로 늘어나게 돼 파기환송심에서 형량이 더 무거워질 수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