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회사채 발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재무적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현금 보유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현대차 기아차 회사채 발행 적극, 코로나19 장기화에 최대한 현금확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22일 투자은행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차가 최근 연달아 회사채 발행에 나서는 것을 놓고 유동성 확보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는 5월8일 회사채 발행을 위해 28일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수요예측에 들어간다. 규모는 3천억 원으로 예정됐으며 만기 구조는 3년과 5년, 7년 등으로 구성된다.

현대차가 자본시장에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회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회사채 발행의 의미는 적지 않다.

현대차가 회사채를 발행했던 시기는 대외적 불확실성이 급격하게 높아졌던 때에 집중된다.

가장 최근 발행 시기였던 2016년 10월은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따라 현대차의 중국사업이 크게 휘청이던 시기였다. 현대차는 당시 5년 만기의 회사채 3천억 원을 발행했다.

2011년에는 일본 대지진과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과 경제성장율 하락 등의 리스크가 집중되던 때였으며 반 년 동안 3차례나 회사채를 조달했던 2008년 12월~2009년 6월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하던 시기였다.

이런 전례들을 살펴볼 때 현대차가 코로나19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선제적으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자본시장의 문들 두드렸다고 볼 수 있다.

현대차는 이번에 발행하는 회사채를 차입금 상환과 운영자금으로 쓰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운영자금은 대부분 부품계열사에 줘야 하는 물품대금 전자채권을 결제하는데 쓰일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현대차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만 해도 2019년 말 기준으로 8조6천억 원이 넘는다. 이 수치만 보면 현대차가 굳이 회사채 조달에 나설 필요는 없다는 것이 증권가의 주류 시각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와 기아차는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채를 발행하려는 것은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 커 보인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까지 장기화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보유현금을 막연하게 풀기보다는 외부 자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현금을 최대한 지키는 것이 재무적으로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은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3월 말에 계열사에 “현금성 자산을 최대한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현대차는 수요예측에서 기관투자자들이 대거 몰린다면 회사채의 발행규모를 5천억 원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아차도 최근 현대차와 비슷한 이유로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기아차는 22일 모두 6천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애초 계획했던 규모는 3300억 원이었으며 수요예측에서 모두 7200억 원 규모의 수요가 쏠린 덕분에 금액을 늘려 발행했다.

기아차가 회사채 발행에 나선 것은 사드보복이 한창이던 2017년 2월 이후 3년2개월 만이다. 코로나19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현대차와 같은 이유로 회사채 시장에 다시 등장한 것으로 투자은행업계는 보고 있다.

기아차가 회사채 수요예측 성공에 따라 얻은 효과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운영자금을 외부에서 대거 수혈함으로써 보유현금 지출을 최소화했다는데 있다.

기아차는 애초 회사채 3300억 원을 발행해 이 가운데 차입금 상환에 2500억 원을 쓰고 나머지 자금을 현대케피코와 현대트랜시스,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에 차량부품대금으로 지급하려고 했다.

기아차가 24일부터 5월1일까지 계열사에 지급해야 하는 부품대금은 모두 1200억 원가량이다. 최초 계획대로만 회사채를 발행했다면 기아차가 계열사 부품대금 결제를 위해 풀어야 했던 보유현금만 400억 원가량이 됐다.

하지만 회사채를 6천억 원까지 발행하면서 차입금 상환금액을 제외한 3500억 원이 여유자금으로 남았다.

기아차는 회사채의 증액발행 덕분에 5월22일까지 계열사에 지급해야 하는 총 3650억 원 규모의 부품대금 상당부분을 외부 자금으로 줄 수 있게 됐다.

회사채 수요예측 성공의 두 번째 효과는 차입금 발행금리를 낮춘 것이다.

기아차가 이번에 발행한 회사채의 금리는 3년 만기물 2.017%, 5년 만기물 2.134%, 7년 만기물 2.192%다. 회사채 발행으로 상환하는 기존 차입금 2500억 원의 발행금리는 2.331%였는데 5년 만기물 기준으로 금리가 0.2%포인트 줄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