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란 전쟁 여파로 유가 변동성 확대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에너지 안보 확립에 핵심 역할을 맡아야 할 한국석유공사가 국제비축유를 유출하며 위기관리 능력에서 허점을 드러냈다.

손주석 한국석유공사 사장으로서는 재무 개선에 앞서 내부 기강부터 확립할 필요성이 커졌다.
 
석유공사 에너지 위기에 관리 허점, 손주석 재무개선 앞서 내부 기강 확립 필요성 커져

▲ 손주석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재무개선에 앞서 공사 내부 기강을 확립할 필요성이 커졌다.


23일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819.4원, 경유 가격은 1815.8원으로 최고가격 고시 전인 지난 12일과 비교하면 휘발유는 리터당 4.17%, 경유는 5.4% 낮아졌다. 

정부가 최고가격제 시행 등 유가 안정화 조치에 나선 뒤 첫 주가 지나면서 단기적으로는 기름값 급등을 억제하고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최고가격은 정유사의 주유소 및 대리점 등을 대상으로 한 공급가격에 적용된다.

다만 최고가격제는 단기적 처방에 가까워 중·장기적 석유 수급 안정에 핵심인 석유공사 역할이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산업연구원은 이날 내놓은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의 정책적 함의와 향후 방향’ 보고서를 통해 최고가격제가 시장 왜곡과 공급 축소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제한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유가 안정화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석유공사에서 방만 경영 문제가 불거졌다는 점은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석유공사가 우선구매권을 즉시 행사하지 않아 해외기업이 울산 석유 비축기지에서 보관하고 있는 국제공동비축 원유 90만 배럴을 지난 20일 해외로 판매한 사실이 전해졌다.

국제공동비축 사업은 산유국을 비롯한 해외기업의 석유를 석유공사의 유휴 비축시설에 저장한 뒤 비상시 우선구매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하지만 석유공사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에너지 안보 대응 역량에 허점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석유공사는 지난 8일 유출 물량을 포함해 국내 정유사가 중동 석유회사와 원유 200만 배럴 구매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도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뒤 다음 날 중동 기업이 200만 배럴 전량을 해외 정유사에 판매를 추진하면서 우선구매권을 제때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손주석 사장이 지난 5일 취임 후 첫 행보로 울산 석유비축기지 현장을 방문해 '비축유 방출 무결점(Zero Defect) 이행'을 강조한 뒤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더욱 뼈아프다는 지적이 많다.
 
석유공사 에너지 위기에 관리 허점, 손주석 재무개선 앞서 내부 기강 확립 필요성 커져

▲ 한국석유공사 손주석 사장(오른쪽 첫 번째)이 지난 6일 울산 석유비축기지 현장을 방문해 석유수급 위기 상황에 대비한 비축유 방출 대비 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석유공사는 동해 가스전 개발사업인 ‘대왕고래’를 둘러싸고 사업 추진의 투명성에 의구심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핵심인 자원 개발 사업뿐 아니라 석유 비축 사업에서도 허점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손주석 취임사에서 강조한 재무 건전성 회복과 석유개발 사업의 질적 고도화, 국가안보 자산인 석유비축 사업의 운영 효율성 최적화를 통해 내실 있는 성장에 집중하려면 먼저 내부 기강 확립 바탕으로 한 핵심 사업 신뢰도 회복이 선행될 필요성이 크다는 시각이 나온다.

앞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대왕고래 프로젝트 관련 책임자들이 성과금을 받고 승진까지 한 것과 관련해 1월 석유공사 업무보고에서 “대왕고래 시추 결과가 좋지 않았던 걸 문제 삼는 게 아니라 프로세스 자체에 많은 의구심이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담당자들이 우수 등급을 받아 승진했다는 게 의외”라고 질타한 바 있다.

이번 비축유 수출 사건에 대해 산업통상부는 우선구매권 행사 여부와 관련해 관리 감독 상의 문제가 없었는지에 대해 감사를 진행해 위반이 확인되면 문책할 방침을 세웠다.

다만 석유공사는 국내 정유사가 진행하던 원유 수입과 관련해 재협상을 벌인 결과 기존 200만 배럴 가운데 110만 배럴을 확보했다고 해명했다. 비축유 가운데 90만 배럴은 해외로 유출됐으나 사태를 파악한 뒤 바로 대응에 나섰다는 것이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계약 관계를 확인한 뒤 국제비축유 물량에 대해서는 출하 조치를 보류하고 구매 재협의를 요청해 일부 원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경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