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킹과 개인정보 유출 및 그에 따른 가입자 2차 피해는 모두 사업자가 통신망 보안을 소홀히 한 탓에 발생했다. 가입자들에게 무릎을 꿁어도 부족할 판인데 거만하고 생색까지 낸다. 통신사들이 가입자들에게 참 무례하다. <비즈니스포스트>
통신·IT 업체들이 가입자와 이용자를 대할 때 쓰는 말이나 행동이 그렇다.
국어사전 해석에 따르면, 무례하다는 '태도나 말에 예의가 없다'는 뜻이다. 거만하다, 당돌하다, 몰상식하다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참고로 기자는 이동통신 가입자이자 카카오톡 같은 IT 서비스 이용자다.
KT는 최근 발생한 무단 소액결제 피해 및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고객의 보안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5일부터 유심 무상 교체를 시행한다고 지난 4일 밝혔다. 신청하는 고객이 대상이다.
KT는 "피해 고객에 대한 위약금 면제 조치에 이은 추가적인 고객 보호 대책"이라며 "통신서비스 전반의 신뢰 회복과 보안 강화를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가입자 쪽에서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무상'이라는 말이 거슬린단다. '희망하는'(전화를 걸어 신청하는) 고객이 대상이라는 설명도 마찬가지란다.
KT 발표를 전하는 기사에 달린 댓글에 담긴 내용이다.
앞서 KT 통신망에서 유령(불법) 기지국이 대거 발견됐다. 통신망에 연결된 서버(컴퓨터)가 해커에게 뚫린 사실도 드러났다.
무단 소액결제 피해도 발생했다. 경찰 조사로 드러난 피해자가 수백명(피해액 수억 원)에 이르고, 추가 피해 발생 가능성도 점쳐진다. 유령 기지국에 접속된 것으로 드러난, '잠재 피해자'로 꼽히는 가입자 만도 수만명에 달한다.
모두 KT가 통신망 관리를 허술하게 해 발생했다.
가입자 귀책은 없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유심 교체가 통신망 보안과 추가 가입자 피해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면, KT가 당연히 해야 한다. 찾아가서 '해드려야' 한다.
그런데도 KT는 무상으로 해주겠다고 생색을 낸다. 희망자에 한해 해주겠다고 거드름을 피우기까지 한다.
눈꼼만큼이라도 가입자 귀책이 있을 때나 가능한 말이고 행동이다.
가입자들이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자기들이 통신망을 허술하게 관리해 피해를 입혀놓고 무슨 시혜를 베풀 듯 하네'라고 괘씸하게 여길 수도 있다.
앞서 무단 소액결제 피해 신고가 한창 확산할 때 '서둘러 문자메시지로 가입자들에게 피해 발생 사실을 알리며 주의를 당부하고 피해 예방 요령을 공지하라'는 요구가 많았다. 비즈니스포스트도 기사와 컬럼을 통해 여러차례 촉구했다.
하지만 KT는 누리집과 앱을 통한 공지만 했다. 가입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불안감을 키울 수 있다는 이유를 댔다.
은폐 의심을 받았다. 국회에서 연거푸 질타를 받은 뒤에야 문자메시지 공지에 나섰다.
가입자들이 무례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KT가 정말로 고객 혜택과 신뢰 회복을 생각했다면, 고객센터를 통해 가입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해킹과 무단 소액결제 피해 발생에 대해 사과하고 추가 피해 방지 차원에서 유심을 바꿔주겠다고 해야 했다.
KT는 이날 정작 가입자 쪽에서 줄기차게 요구해온 중도 해지자에 대한 위약금 면제 건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안했다.
가입자들에게 무례하기는 SK텔레콤도 마찬가지였다.
SK텔레콤 역시 통신망 보안을 허술하게 해오다 해커에게 뚫리고 2300만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유심 교체 같은 사후 대책을 제대로 된 소통과 물량 준비도 없이 내놔 가입자들을 오픈런 시키고, 컴퓨터와 대리점 앞에 몇시간씩 줄서서 기다리게 했다.
또한 뒤늦게 위약금 면제 방침을 밝히며 열흘 뒤까지로 시한을 뒀다. 위약금 면제에 따른 비용이 수조원에 달할 수 있다고 국회에서까지 엄살을 부렸으나 실제로는 수백억 원에 그쳤다.
'보상안'이라고 내놓은 것 역시 대다수 가입자들에게 그림 속 떡에 불과했다. 데이터를 월 50기가씩 추가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사실상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쓰는 상당수 가입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멤버십 혜택 확대도 마찬가지란 평가를 받았다. 가입자 열 명 중 여섯 명 이상은 멤버십을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SK텔레콤은 중도 해지 위약금 면제 기한을 연말까지 연장하라는 통신분쟁조정위원회 조정안은 걷어차버렸다.
SK텔레콤은 통신망 보안을 허술히 해 가입자 개인정보를 유출시킨 것으로 드러났으니 가입자들에게 각각 30만원씩 보상하라는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 조정안의 수용 여부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 SK텔레콤이 오는 18일까지 수용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조정안은 자동 폐기된다.
필요없다는 것은 잔뜩 안기며 생색을 내고, 필요하다는 것은 외면해버리는 꼴이다.
가입자 쪽에서 보면 무례하기 그지없다.
▲ 카카오톡 친구 목록 탭을 일방적으로 바꿔 이용자들을 열받게 한 카카오 행태는 이용자들에게 무례한 또다른 사례로 꼽힌다. <카카오>
카카오톡 서비스를 하는 카카오의 행태는 이용자들에게 무례함을 저지른 또다른 사례로 꼽힌다.
카카오는 카톡의 친구 목록 탭을 일방적으로 페이스북처럼 바꿨다.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전후 상황을 요약하면, 카톡 이용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절차가 부실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용자들이 강력 반발했다. '내 전화번호부에 올라 있을 뿐, 친하지도 않은 남의 일상을 왜 강제로 보게 하느냐'며 철회를 요구했다. 이용자들의 원성이 높자, 카카오는 즉각 이전처럼 되돌리겠다고 밝혔다. 기술적으로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4분기 중 되돌리겠다고 했다.
이후 소통에 문제가 생겼다.
카카오 고위 임원이 지난 10월14일 국정감사에 출석해 "카카오톡 업데이트 롤백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소식을 들은 이용자들이 '친구 목록 탭이 이전처럼 복구되지 않는 것이냐'고 다시 들고 일어났다. 4분기 중 카톡 친구 탭 첫 화면을 친구 목록으로 되살린다는 공지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냐는 비난의 목소리도 쏟아졌다.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카톡 친구 목록 탭 첫 화면을 원래대로 되살리는 것과 롤백은 기술적으로 다른 설명이다. 기술적으로 롤백이 안 된다는 뜻은 이미 배포한 버전을 기존 버전으로 다운그레이드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카톡 이용자들이 친구 탭 첫 화면을 기존처럼 바꾸기 위해서는, 카카오가 친구 탭 첫 화면을 업데이트한 새로운 버전을 배포하고, 이용자가 이를 설치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카카오 임원이 기술적인 용어을 사용하며 일어난 해프닝 성격이 짙다. 하지만 카톡 이용자들이 열 받은 것은 사실이다.
카카오 측은 "최대한 빨리 이용자들에게 친구 목록 탭 첫 화면 업데이트를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톡 이용자들은 오래 전부터 "카카오가 참 무례해졌다"고 호소해왔다.
매출 증대에 집착해 이용자 의견도 들어보지 않은 채(때로는 동의도 없이) 채 카톡에 각종 낯선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추가하고, 이를 통해 이용자들이 광고에 더 자주 노출되게 하고 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번 친구 목록 탭 일방 변경 사태 역시 이런 맥락으로 보는 이용자들이 많다.
일부 이용자들은 친구 탭을 원래대로 되살리는 시기를 4분기 중으로 미룬 것을 두고, 이용자들을 길들이기 위한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했다. 이용자들이 바뀐 화면에 익숙해져 반발이 줄어들면 그냥 강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무례함에서 비롯된 불신의 골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통신사들과 IT 업체들은 요즘 인공지능(AI)를 통한 서비스 혁신을 강조한다. 고객 상담도 AI한테 맡기고 있다.
그런데 AI는 예의를 모른다. 복기와 반성을 못한다.
거짓말을 해놓고, 바로잡아 주면 그냥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끝이다.
무례함을 넘어 뻔뻔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걱정도 된다. 통신·IT업체들이 AI를 앞세워 가입자와 이용자에게 더 무례하게 굴지 않을까. 김재섭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