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스타트업에게 기술은 단순한 자산을 넘어 기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문제입니다. 이 기술을 탈취하는 것은 단순한 분쟁사항이 아니라 우리 경제 생태계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안입니다."

김동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국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기술 탈취 방지를 위한 국회 정책 토론회'에서 "중소기업 기술 보호를 위한 입법적 고민과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현장] "중소기업 대상 기술탈취 여전, 독일식 전문기술보좌관 제도 도입 필요"

▲ 김동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8간담회실에서 열린 중소기업 기술탈취 대책 관련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날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김동아, 김남근, 김윤, 박희승, 송재봉, 오세희 의원과 당내 갑을문제 연구모임인 을지로위원회가 공동주최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피해를 막고 실질적인 피해 구제책을 논의하기 위해 정부 경쟁당국 실무자들과 학계, 법조계, 그리고 기술탈취 피해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펼쳤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기술탈취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동안 수없이 많은 법 개정을 통해 보완책이 마련됐음에도 피해가 근절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을 사고 있는 사안이다.

특히 경기침체로 벤처자본이 힘을 잃은 시기에 대기업의 협업 제안에 속아 핵심기술을 빼앗긴 뒤 사업을 포기하는 스타트업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피해 기업들이 자신들이 겪언던 생생한 증언을 내놨다.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 관련 데이터 솔루션을 제공했던 스타트업 '텐덤'의 경우 협업을 미끼로 접근한 모 출판사에 기술을 빼앗겨 2번의 재판 끝에 2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인정받는데 그쳤다.

그나마도 가해기업이 상고하면서 대법원 심사가 진행 중인데 그동안 사업은 중단되고 직원들은 흩어졌으며 투자가 멈추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유원일 텐덤 대표는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분쟁을 하는데 법적자원이 부족하고 그들의 내부정보를 확보하지 않는 한 기술탈취를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한 순간에 허사가 된 열정과 노력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회사는 어려움에 빠져 있다"고 호소했다.

중소기업 권리회복을 위해 활동하는 재단법인 '경청'의 박희경 변호사는 "대기업이 협업을 빌미로 기술을 탈취하는 경우 그 고의성과 침해 사실을 입증하는 일은 가해기업 데이터와 메일을 열어봐야 가능하다"며 "일부 승소사례를 봐도 통상 개발기간 3년이 걸리는 것을 3개월만에 해낸 것을 지적하는 등 간접적으로 입증하는데 머문다"고 법적 대응의 어려움에 관해 설명했다.
 
[현장] "중소기업 대상 기술탈취 여전, 독일식 전문기술보좌관 제도 도입 필요"

▲ 12일 국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기술 탈취 방지를 위한 국회 정책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기술탈취 입증의 어려움 △손해액 산정의 어려움이라는 2가지 주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아무리 강력해져도 대기업의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에 해결방안으로 △형사처벌 규정 신설 △신기술 가치평가 기준 수립 △입증책임 방안 개선 △법원 자문위원회와 경쟁당국 조정위원회 전문성 제고 △기술침해 행위에 대한 금지청구권 도입 등을 제안했다.

정강은 중소벤처기업부 기술보호과장은 "특허청이나 중기부가 중재를 해보려고 해도 대기업은 소송을 하면 이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정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손해배상액과 관련해서도"법원이 보수적으로 손해배상 산정을 하는 기조가 이어지는 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5배가 아니라 몇 배가 되든 의미는 없다"며 "특히 시장에 선례가 없었던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그동안 투입한 연구개발비나 미래 가치를 좀 더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국회는 입증책임과 손해배상액 산정 문제를 입법을 통해 해결해보려는 노력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1대 국회때부터 '한국형 디스커버리법'이라고 불리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을 준비해왔다.

디스커버리는 미국의 소송제도로서 분쟁 당사자들이 상호 증거와 서류를 공개해 쟁점을 명확히 하도록 하는 제도다. 다만 이 법이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의 영업비밀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지난 21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에 민주당은 중소기업 기술 탈취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독일의 '전문기술보좌관'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

전문기술보좌관이란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현장을 직접 방문해 기술과 관련한 증거를 수집하도록 하는 제도다. 디스커버리 제도와 비교했을때 영업비밀 유출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점이 있다.

현재 판사들도 각종 첨단기술을 놓고 벌어지는 기업분쟁에 적극적으로 판단을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전해졌다.

판사 출신인 박희승 민주당 의원은 "판사들은 엄격한 증명과 인과관계 입증을 요구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데 기술탈취가 인정되면 위자료로 일정금액을 주도록 하는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이러면 판사들도 판결하는데 좀 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근 민주당 의원은 "판사 재량으로 손해배상을 3배까지 가능하도록 했어도 통상 1.2배, 최대 1.6배 수준으로 손해배상만을 산정하고 있다"며 "이것을 반대로 바꿔서 원칙적으로 3~5배를 매기되 예외적으로 감액하는 식으로 가야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원을 책임회피수단으로 악용하는 대기업의 행태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남근 의원은 "대기업이 지금처럼 시간끌기 전략으로 일관하면 더 크게 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며 "미국의 제도를 받아들여 시간끌기용 항소에 징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