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미국 대선 판세, 건설사 해외 수주 환경 변화도 가늠하기 힘들어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고개를 숙인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를 100여 일 앞두고 연이어 판세가 급변하고 있다.

미국 대선이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서 한국 건설사의 해외 수주 전략도 한 치 앞을 내가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21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직에서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한 것은 1968년 민주당의 린든 존슨 대통령 이후 56년 만이다. 존슨 대통령 이전에 현직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한 사례는 1952년 민주당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일 정도로 현직 대통령의 재선 포기는 미국 역사에서 드문 사례다.

특히 현직 대통령이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뒤 사실상 후보 지명만을 남겨 놓은 상태에서 재선 도전을 포기하는 사례는 이번 바이든 대통령이 최초가 됐다. 앞선 두 사례는 모두 당내 경선 승리 전에 재선 포기가 이뤄졌다.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포기는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세장 피격을 당한 지 8일 만에 전격적으로 진행됐다.

미국 대선 판세는 피격 사건을 겪은 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흐름이었으나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포기로 불과 일주일 만에 향방을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들로서도 사업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해외건설 수주를 따내야 하는 한국 건설사들에게 미국의 정치지형 변화는 가장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국내 건설사들의 주가는 피격 사건 이후 트럼프 대세론이 힘을 받을 때 덩달아 뛰었다. 19일에는 KRX 건설 지수가 업종별 지수 가운데 가장 큰 폭인 6.04% 오르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어 우크라이나에서 재건사업이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 등이 커진 데 따른 시장의 반응으로 풀이된다.

김선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22일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건설업종 주가가 오르고 있다”며 “오일 및 가스 관련 프로젝트의 확대, 우크라이나 재건 수혜 기대감, 대북관계 개선 가능성 등이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고 바라봤다.

국내 건설사들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과 관련해 이미 활발한 수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우크라이나 정부가 재건 사업과 관련한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는 데 따른 대응이다.

삼성물산은 우크라이나 서부 요충지인 리비우에 스마트시티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를, 현대건설은 우크라이나 최대 공항인 키이우 보리스필 국제공항 복구를 위한 양해각서를 각각 우크라이나 정부와 체결했다.

삼부토건이 올해 6월 우크라이나 호로독 시와 스마트시티 4.0 프로젝트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국내 건설사들의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참여를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가정해도 국내 건설주의 강세 지속은 낙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격상 미국 정부의 정책에서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불안요소로 꼽힌다.

김 연구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도 재건사업 관련 주가 상승은 단기에 그칠 것”이라며 “과거 트럼프 집권 때도 대북관계 수혜 기대로 국내 건설사 주식이 강세를 보였다가 실질적 진척이 없어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었다”고 바라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가 한국 건설사의 해외건설 수주에는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에 성공하면 바이든 대통령의 대표적 정책인 인프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 보조금 지원 등을 백지화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유세 과정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놓고 "터무니 없는 세금 낭비"라고 발언하는 등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들을 놓고 비판을 이어 왔다.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반도체 보조금 지원 등은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해외건설 수주를 확대하는데 크게 기여한 정책들이다.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등 국내 제조사의 현지 생산설비 건설공사가 늘었기 때문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미국 건설수주 금액은 2021년 9억4천만 달러에서 2022년 34억6천만 달러로 대폭 늘었고 2023년에는 99억8천만 달러로 사상 처음 미국이 국가별 수주 순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오스틴팹,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차그룹의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공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정책에 따라 미국에서 추가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 기존에 진행하고 있는 투자부터 재검토해야 할 상황을 맞이해야 할 수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9일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대선 결과와 SK그룹의 반도체 패키징 공장 투자 등을 놓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은 한국 기업에는 불확실성의 증가”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대선이 끝나고 내년 봄이 지나야 제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이 반도체 보조금을 안 준다면 완전히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주요 해외건설 수주 텃밭인 중동의 정세가 더욱 복잡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성공에 따른 부정적 전망으로 꼽힌다.

실제로 한국 기업들의 중동 지역에서 해외건설 수주액은 트럼프 집권 3년째였던 2019년에 2004년 이후 최저치인 47억 달러로 떨어진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가정해도 한국 건설사에 미칠 영향을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누가 될지를 놓고도 불확실성이 큰 상황으로 보인다.

민주당위 대선 후보 승계는 현재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유력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그레첸 휘트머 미시건주 주지사 등을 비롯해 미셸 오바마 전 대통령 영부인도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의 본선 경쟁력이 의심받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의회 전문 매체인 더힐이 21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의 지지율은 47.4% 대 45.4%로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일 때와 마찬가지로 민주당 열세로 파악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해리스 부통령의 후보 승계 가능성과 관련해 “바이든보다 이기기 쉽다”고 발언했다.

해리스 부통령을 비롯해 현재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거명되는 인사 가운데 누구도 현재까지는 미국의 대외 정책 등과 관련해 구체적 방향을 밝힌 바는 없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