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노동조합이 임금인상이나 처우 개선 또는 사회정책 이슈에 관해 발언하는 건 흔하지만 ESG(환경·사회·지배구조)나 기후 얘기를 하는 건 자주 보지 못하는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성주 의원은 금융권 노동조합이 금융사의 기후금융(기업과 사회의 탄소배출 경감을 유도하고 저탄소 경제 이행에 기여하는 금융회사의 대출과 투자활동)을 촉구하는 토론회의 의미를 짚으며 이렇게 말했다.
 
금융노조 기후대응 토론회, 5대 금융지주·10대 자산운용사 '행동' 미흡 지적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월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금융회사의 기후금융 방향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전국사무금융서비스 노동조합과 전국금융산업 노동조합, 에너지기후 정책연구소 등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국내 금융사들의 기후금융은 ‘탈석탄 선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사들의 기후금융을 늘리기 위해서는 구체적 이행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고 퇴직연금의 기후 관련 투자확대, 노조의 녹색단체협약 등도 이뤄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금융회사의 기후금융 방향과 노동조합의 대응과제’ 토론회에 참석한 금융노조 관계자들은 금융사의 생존을 가를 수도 있는 기후금융 문제를 향한 관심을 나타냈다.

이들은 국내 금융사들의 기후위기 대응이 부족하다며 기후금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조 위원장은 "미국에서 소득 상위 10%가 탄소배출량의 40%를 차지한다는 보고가 있는데 이는 대부분 탄소 다배출 산업에 대한 투자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져 탄소세 자체를 투자 수익 기반으로 부과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며 "이와 비교해 국내 금융회사들의 녹색금융, 기후위기 대응은 미약하고 여전히 고수익 유혹을 떨치지 못해 화석연료 금융을 늘려왔다"고 지적했다.

임동근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사무처장도 "녹색금융 이야기가 나온지 10년이 됐는데 아직도 우리나라의 탄소 관련 투자 비중이 높다고 할 수 있다"며 "전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도 기후위기 고위험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밝힌 만큼 이제는 우리 금융사들도 기후위기 대응에 여유로울 때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토론회에 첫 발제자로 나선 박지혜 플랜1.5 변호사는 김성주 의원실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5대 금융지주사와 10대 자산운용사 등의 기후금융 현황을 분석했다.

박 변호사는 △단·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 유무 △금융배출량(금융회사가 보유한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의 합) 관리 목표 수립여부 △석탄발전에 신규 투자 금지 등 투자 제한정책과 재생에너지 등에 투자촉진 정책 △기후위기 관련 능동적인 스튜어드십 정책 수립 및 시행 △주요 기후금융 투자 상품의 목록 및 투자내역 등을 기준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국내 금융권의 기후대응이 초보적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박 변호사는 “5대 금융지주사가 석탄발전에 투자중단을 선언한 지 3년이 지났지만 구체적 투자 방침이나 발전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며 “금융사가 2030년, 2050년이란 장기 계획을 세웠지만 어떻게 줄여갈지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10대 자산운용사들의 기후대응은 5대 금융지주사가 선언한 내용조차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금융노조 기후대응 토론회, 5대 금융지주·10대 자산운용사 '행동' 미흡 지적

▲ 박지혜 변호사가 11월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금융회사의 기후금융 방향 토론회에서 국내 금융사들의 기후대응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박 변호사는 “10대 자산운용사 가운데 신한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만이 별도로 금융배출량을 산출하고 장기 감축목표를 수립했다”며 “지주사가 탈석탄 선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한자산운용과 KB자산운용은 탈석탄 방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점을 고려할 때 (지주사의 기후대응 방침을) 개별 투자회사로 확산을 통한 이행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사들의 기후대응 분석에 참여한 윤세종 변호사는 금융사들의 기후대응을 촉진하기 위해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 등 연기금 역할이 중요하다고 바라봤다.

윤 변호사는 “900조 원에 달하는 국민연금도 2021년 탈석탄을 선언했지만 세부적 이행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국민연금은 ‘연못 속 고래’(국민연금이 투자방침을 바꾸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라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이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금융기관들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윤 변호사는 국민연금 전체의 기후금융이 어렵다면 약 300조 원 규모의 퇴직연금을 기후금융에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표적 장기투자 상품인 퇴직연금이 기후위험에 노출된 산업에 투자를 배제함으로써 연금의 리스크를 줄인다는 정당성도 있다고 했다.
 
금융노조 기후대응 토론회, 5대 금융지주·10대 자산운용사 '행동' 미흡 지적

▲ 윤세종 변호사가 11월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금융회사의 기후금융 방향 토론회에서 퇴직연금의 기후대응 투자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 변호사는 “퇴직연금은 현재 탄소 다배출 기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데 이 정도 규모의  연기금이 변화를 추구하면 다른 금융기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2040년, 2050년 퇴직연금을 수령할 때 그 산업들이 남아있을지 의문인 상황에서 포트폴리오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노동자들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안으로 ‘녹색 단체협약’(녹색 단협)을 제시했다. 노조의 핵심적 활동인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에 기후변화와 관련된 사안을 다루자는 것이다. 
    
한 위원은 “영국과 캐나다 등에서도 작업장을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내용을 포함하는 단체협약이 이뤄졌다”며 “특히 녹색 단협은 젊은 조합원들을 조합에 가입시키는 좋은 유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도 녹색 단협이 기후위기와 관련해 노조원을 설득하고 사용자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효과적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이 사무국장은 “다만 녹색 단협을 마련할 때 그린워싱을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taxonomy(분류체계)를 적용해 세심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성주 의원은 금융권의 사회적 기여에 관한 요구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국회에서 입법 논의를 활발히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의원은 “사회적 기여라는 것은 제도를 통해 가장 바람직한 성과를 내기 때문에 기후금융도 국회가 입법을 통해 제도화해야 금융사들이 앞장서서 실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