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유 기자 jsyblack@businesspost.co.kr2024-07-23 14: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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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전 세계 최대 스포츠 행사인 하계 올림픽, ‘2024 파리올림픽’ 개막식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보름 넘게 이어지는 파리올림픽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선수단은 속속들이 현지에 입성하며 전의를 다지고 있다.
하지만 파리올림픽에 한국 축구의 자리는 없어 아쉬움이 크다. 게다가 현재 우리 축구계와 축구계를 대표하는 대한축구협회(KFA)를 둘러싼 분위기는 눈앞에 다가온 축제와는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2월16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위르겐 클린스만 전 국가대표팀 감독 경질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그저 한국 축구가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한 것 때문만은 아니다. 장장 5개월여 만에 선임된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한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22일 대한축구협회는 홈페이지에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설명드립니다’, ‘대표팀 감독 선임과정 관련 Q&A’ 등 2건의 게시물을 게시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을 경질한 2월16일부터 7월13일 신임 홍명보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공식 선임하기까지 과정을 이례적으로 상세히 소개했다. 주로 논란이 되는 몇몇 질문들에 관한 설명도 덧붙였다.
대한축구협회는 신임 감독 선임 과정에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선진축구를 향한 기대가 큰 상황에서 단순히 국내 감독을 선임해서가 아니라 절차가 불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다.
전력강화위원회에서 활동한 박주호 위원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절차상의 문제점을 이야기했고 이와 함께 박지성 전북 현대 모터스 테크니컬 디렉터 등 많은 전 국가대표 선수들도 대한축구협회의 일처리를 지적했다.
정치권도 대한축구협회를 겨냥하고 있으며 이미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대한체육협회에 관한 감사에 돌입했다. 대한축구협회의 해명도 감사가 시작된 뒤 부랴부랴 나왔다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가운데 절차가 적절했는지 등은 향후 감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잇따른 논란에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의 수장인 정몽규 회장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정 회장은 2013년 대한축구협회장에 오른 뒤 자의적으로 협회를 운영한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매번 반복되는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이 가장 대표적이다.
한국축구지도자협회는 12일 발표한 설명문에서 “정 회장은 취임 뒤 국가대표 감독 선임 시스템을 지속해서 변경해왔다”며 “기술위원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 전력강화위원회, 다시 기술위원회로 바꾼 것인데 이는 정 회장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협회를 운영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최근 들어 대한축구협회와 정 회장의 ‘헛발질’은 더욱 잦아졌다.
지난해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조치,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 절차 등 굵직굵직한 사건에 이어 대표팀 주축 선수 다툼 논란 때는 앞장서서 말을 키우고 선수를 보호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일었다. 최근 박주호 위원의 폭로 이후에는 곧바로 법적대응을 언급하며 비난을 자초했다.
정 회장은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이 논란이 되자 이를 철회했고 클린스만 전 감독을 향한 불만이 깊어지자 그를 경질하며 사과했다. 물론 승부조작 사면 철회 당시에 추가 질의응답 없이 입장문 만을 읽었던 점,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 논란이 ‘오해’라고 일축한 점 등은 비판을 받았지만 적어도 팬들 앞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감독 선임 논란에서는 대한축구협회 수장으로 어떠한 소통도 하지 않으며 더욱 논란을 키우고 있다.
정 회장이 2015년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선거, 2019년과 지난해 FIFA 평의원 선거에서 낙선하면서 10년 동안 한국 축구의 외교력이 후퇴했다는 평가도 나오는 형편이다. 정 회장은 2017년 FIFA 평의원 선거와 올해 아시아축구연맹(AFC) 동아시아 집행위원 선거에서는 1대1의 경쟁률인 상황에서 각각 자리에 올랐다.
유독 대한축구협회를 둘러싼 잡음이 많은 상황에서 정 회장이 돌아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스포츠 사랑으로 유명한 범현대가가 지금까지 보여준 품격이다.
‘현대’라는 이름으로 한국 체육계 발전에 기여한 것은 창업주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 명예회장은 국내 굴지의 기업집단을 일군 일 만큼이나 스포츠계에도 큰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정 명예회장은 서울올림픽 민간추진위원장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1981년 하계올림픽 개최에 큰 역할을 했다.
이어 1982년부터 2년3개월 동안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하며 올림픽 준비뿐 아니라 스포츠계에 경영마인드를 이식하고 이후 범현대가 인물들과 그룹 전문경영인들을 여러 단체장으로 이끈 체육계 대부로 평가된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아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도 범현대가 스포츠 단체장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정몽준 이사장은 1993년부터 2008년까지 제47~50대 대한축구협회장을 지내면서 2002년 한일월드컵 유치와 함께 한일월드컵 4강 신화라는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성과를 봤다.
정 이사장은 당시 히딩크 감독을 선임했고 그 이후 히딩크 감독이 경질설에 휘말렸을 때도 끝까지 지지해 한일월드컵 결과를 이끄는 데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
또 정 이사장은 1994~2010년 FIFA 부회장을 비롯해 FIFA 미디어위원장, FIFA 올림픽분과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역대 한국 축구계가 가장 외교력이 높았던 시절로 꼽힌다.
물론 정 이사장 시절부터 30년 넘게 대한축구협회가 범현대가 입김 아래 놓여있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그러나 현재 정 회장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면서 전임인 정 이사장이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한 바가 더욱 조명받기도 한다.
현재 경영일선에 있는 범현대가 오너경영인 가운데서는 대한양궁협회장으로 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투명하게 협회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 정 명예회장이 대한체육협회장 때 양궁과 국궁 분리로 대한양궁협회가 설립됐다. 1983년 초대 정 이사장을 시작으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범현대 계열사 전문경영인이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았고 2005년부터 지금까지 정의선 회장이 협회를 이끌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투명하고 공정한 국가대표 선발로 대한양궁협회를 국내 스포츠 단체 가운데 최고의 평가를 받는 단체로 만든 공을 인정받고 있다.
이 밖에 정몽원 HL그룹 회장은 2013년부터 8년 동안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을 지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2022년 1월17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정 회장은 HDC그룹을 국내 재계 서열 31위이자 범현대가에서 현대차그룹, HD현대그룹, 현대백화점그룹에 이어 4번째로 큰 기업집단으로 성장시켰다.
지금까지 현대라는 이름이 국내 스포츠계에 끼친 영향력, 정 회장이 범현대가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 등을 고려하면 최근 일련의 논란 속에서 품격을 보여줘야 할 책임도 느껴진다.
정 회장은 최근 HDC현대산업개발에서 발생한 연이은 붕괴사고 때 매번 곧바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2번째 사고 때는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바로 물러났다.
사고의 과실과 별개로 정 회장이 일정 부분 책임지는 리더십을 보여준 것으로 여겨진다.
‘대한축구협회는 한국의 축구 행정을 총괄하는 유일한 기구로서 축구를 대중 속에 널리 보급시켜 국민의 건강 증진을 도모하고 우수 선수 및 지도자 양성, 축구를 통한 국위 선양을 위해 만들어졌다.’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에 적힌 협회 소개 문구다.
한국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대한축구협회의 장으로서 정 회장 자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