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 레시피] 일상이라는 시선 너머로 포착된 비일상, ‘존 오브 인터레스트’

▲ 헤트비히는 남편이 소장으로 부임한 이후 3년 동안 불모지였던 땅을 일궈 식물원에 작은 풀장까지 있는 정원으로 가꿨다. ‘아우슈비츠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녀에게 소장 사택은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천국 같은 곳이다. 사진은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한 장면. <찬란>

[비즈니스포스트] 20세기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두 번의 세계대전이라 할 수 있고 그 중심에 홀로코스트가 똬리를 틀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과 학살은 끊임없이 자행됐지만 1, 2차 세계대전은 초유의 지구적 사건이었다. 

19세기 끝 무렵에 등장한 영화는 20세기 내내 두 번의 세계대전을 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치열한 전투를 소재로 한 스펙터클 블록버스터부터 포화 속에 피어난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이 존재한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의 리스트도 길다. ‘밤과 안개’(알랭 레네, 1955), ‘쇼아’(클로드 란즈만, 1985) 같은 다큐멘터리도 꾸준히 제작됐고 ‘쉰들러 리스트’(스티븐 스필버그, 1994)로 대표되는 극영화도 무수히 많다. 

‘인생은 아름다워’(로베르토 베니니, 1997)는 홀로코스트를 색다른 방식으로 그려내 많은 관객을 감동시켰다. 유대인 수용소에 수감된 이탈리아인 귀도가 자신의 아들에게 수용소 생활이 게임이며 정해진 점수를 따면 이기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다는 내용이다. 

아버지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 아들의 천진함과 아들을 지키기 위해 희극을 연기하는 아버지의 고뇌가 맞부딪히며 웃음과 눈물을 자아낸 영화였다. 

홀로코스트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조나단 글레이저, 2003)는 ‘인생은 아름다워’의 정반대 지점에 놓여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담장 건너편에 자리 잡은 수용소 소장의 저택이 영화의 주요 공간이고 거기서 생활하는 회스 중령 가족과 일꾼들의 일상이 중심 내용이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은 수용소 안에서 생활한다는 현실을 좋은 의도의 거짓말로 위장하고 있다면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가족은 수용소 담장 너머에 거주하면서도 수용소라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마틴 에이미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제 7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제96회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라는 제목은 아우슈비츠 주위 40킬로미터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는 그렇지만 ‘흥미로운 구역’이라는 즉자적 해석이 어울리기도 한다. 아우슈비츠의 참상은 여러 방식으로 꾸준히 전해져 왔지만 소장 가족의 일상이 펼쳐지는 수용소 담장 너머의 공간은 낯설다. 

비명과 소각장 굴뚝의 연기가 섬뜩한 바깥 공기와 달리 회스 소장의 거주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치고 정원은 잘 가꿔진 화초가 그득하다. 

남편인 회스 중령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소장부인 헤트비히는 막내인 갓난아이를 화단으로 데려가 꽃을 만지게 하고 냄새를 맡게 한다. 패랭이, 장미, 달리아라고 이름까지 알려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다. 

헤트비히는 남편이 소장으로 부임한 이후 3년 동안 불모지였던 땅을 일궈 식물원에 작은 풀장까지 있는 정원으로 가꿨다. ‘아우슈비츠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녀에게 소장 사택은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천국 같은 곳이다. 

아우슈비츠 내부의 참상은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 더 끔찍한 에피소드들이 일상에 도사린 모습을 보여준다. 

헤트비히는 수용소에서 나온 여성 속옷가지를 집안일을 하는 여성들에게 나눠주고 값비싸 보이는 모피 코트는 자신이 차지한다. 코트 주머니에 들어 있던 립스틱을 태연하게 발라본 뒤 화장대에 넣는 장면은 학살에 무감각한 가해자들의 민낯을 보여준다. 

쾌활해 보이는 아이들에게서도 문득문득 그늘이 엿보인다. 높은 담장으로 가려진 수용소 안의 실상은 보이지 않지만, 비명과 총소리 같은 소음은 막을 수가 없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생활하던 장난꾸러기 소년의 얼굴에 두려움이 스쳐 가기도 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주인공 회스 중령은 일 중독자로 보일 정도로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다. 어떻게 하면 수용소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 밤낮으로 고민하고 쉬지 않고 가동할 수 있는 대규모 소각장 건설을 추진한다. 

밤이면 온 집안의 문단속을 하고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자상한 가장이기도 한 그가 왜 그렇게 충직하게 일하는지 자신이 수행한 일들에 회의는 없는지 그런 면은 영화에 그려지지 않았다.

일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비일상적인 장면이 몇 번 등장한다. 정원의 꽃을 클로즈업하고 뒤이어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꽃을 더 확대하는 장면이 있다. 정원에 예쁘게 피어있던 장미가 그로테스크하게 변하고 마침내 화면은 핏빛으로 가득 찬다. 

회스 중령이 사는 공간의 의미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우슈비츠와 관련해 새롭고 낯선 감각을 전달하는 흥미로운 영화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