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우리가 걸음마를 떼는 동안 금융선진국에서는 비트코인 기반의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돼 흥행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긴 논의에도 불구하고 현물ETF가 승인받지 못하면서 우리 자본시장의 후진성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6간담회실에서 열린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과 가상자산시장육성법에 대한 정책 토론회'에서 "금융선진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이 언제까지 따라가는 정책만 할 수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현장] 한국엔 비트코인 ETF 없어, 민병덕 "언제까지 따라가는 정책만 하나"

▲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11일 열린 토론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민 의원은 "가상자산 시장의 활성 이용자는 350만 명, 1년에 한 번 정도 하시는 이가 280만 명, 계좌는 1천만 개에 이른다"고 짚었다. 그는 "이 정도면 가상자산시장이 이미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며 가상자산 법제 정비를 서둘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민병덕, 이강일, 김남근 의원 주최로 가상자산 시장을 둘러싼 입법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학계와 금융당국,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와 블록체인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모여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발제는 신상훈 금융위원회 디지털금융총괄과 과장, 김재진 디지털자산거래소공동협의체(DAXA) 상임부회장, 조재우 한성대학교 교수, 박종백 법무법인태평양 변호사가 맡았다. 이어진 토론에서서는 제임스정 블록미디어 기자를 좌장으로 김용태 법무법인 화우 고문, 오종욱 웨이브릿지 대표이사, 곽도성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팀장이 토론을 펼쳤다.

신상훈 과장은 올해 시행되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개요를 설명하면서 후속입법을 서둘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란 가상자산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가상자산시장의 투명하고 건전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민 의원이 발의한 '디지털자산거래법안'을 포함해 모두 19건의 법률안을 통합 조정돼 2023년 7월18일 제정됐다. 2024년 7월19일부터 시행된다.

이 법에는 △가상자산과 가상자산 사업자의 정의 △금융위원회 산하 가상자산위원회 설치와 운영 △사업자의 가상자산 보호 의무 등을 내용이 담겼다.
 
[현장] 한국엔 비트코인 ETF 없어, 민병덕 "언제까지 따라가는 정책만 하나"

▲ 민병덕 의원(앞줄 가운데)과 가상자산 토론회 참석자들이 11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와 관련해 신 과장은 "이 법이 완전한 기본법 체계는 아니고 이용자 보호를 중시으로 필수사항만을 담고 있다"며 "향후 추가입법이 국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국회에서 잘 좀 제정을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따라 거래소만 지켜볼 것이 아니라 감시시스템 고도화를 위해 '온체인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살피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온체인 데이터란 블록체인 상에서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거래내역들을 말한다. 이 데이터에 나와있는 코인의 수량과 수수료 정보를 살펴보면 시장 참여자들의 행태를 파악하고 예측해 볼 수 있다.

조재우 교수는 "온체인 데이터를 살펴보면 모든 거래를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다"며 "이것만 잘 들여다보면 금융당국이 각종 코인사태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최근 초과 유통량 의혹을 받고 있는 '수이' 코인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 온체인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작됐다. 초과 유통량 의혹을 받고 있는 '위믹스' 역시 최초 문제 제기가 되기 10개월 전부터 온체인데이터상으로 과도한 유통량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다만 온체인 데이터 시스템은 공무원이나 거래소, 개별이용자 등 한 주체만으로 구축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조 교수는 "거래소는 도구를 제공하고, 정부는 정보를 공유하며, 이용자는 방향성을 제안하는 '협력적 모니터링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 제정을 논의하기 전에 가상자산 용어부터 통일해야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박종백 변호사는 "이날 토론회 발제에서조차 가상자산, 암호화폐, 디지털자산 등 용어들이 혼재돼 사용되고 있다"며 "지금 우리가 가상자산을 둘러싼 법적 지위와 규범체계와 관련된 질문에 제대로 답변할 준비가 안됐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 가상자산 논의를 거래소를 중심으로 한 '유통'에만 한정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도 있었다.

박 변호사는 "국내 가상자산 입법 논의는 발행된 코인의 유통만 규제하고 있는데 이것은 앞뒤가 바뀐 것"이라며 "발행 과정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규정과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이 지난 5월 제정한 가상자산 법안 '미카(MiCA)'에서 우리나라가 배울 수 있는 점들도 소개됐다.

김용택 고문은 우리 가상자산법이 가상자산 시장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사업형태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의 법안은 가상자산 서비스 유형을 10개로 분류해 각각 행위규제를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5개에 불과해 기업들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이에 김 고문은 건전한 가상자산 시장 형성을 위해 △금융기업의 가상자산시장 진출 △가상자산매개송금 △법인의실명계좌 개설 등을 허용해야 한다고 봤다.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오종욱 웨이브릿지 대표가 조속한 가상자산 관련 후속 입법을 촉구했다.

오 대표는 "법적인 체계 안에서 규제가 정해지지 않고 용어가 정해지지 않으면 창업자들이 한순간에 범법자가 될 수 있다"며 "현재 한국에서는 아무리 기술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한국보다는 미국과 싱가포르, 유럽에서 지사를 만드는 쪽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젊은 창업가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판이 한국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