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실기' 삼성전자 반도체 수장 전격 교체, 전영현 잃어버린 초격차 되찾나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이 잃어버린 삼성전자의 반도체 초격차를 되찾기 위한 '구원투수'로 낙점됐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반도체(DS) 부문 수장을 전격 교체했다. 최근 반도체 사업의 초격차 등 기술 리더십이 위기에 직면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DS 부문 ‘구원투수’로 투입된 전영현 전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장 부회장은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주역 가운데 한 명으로, 그가 잃어버린 삼성전자의 ‘기술 초격차'를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 부회장은 우선 SK하이닉스에 뒤처진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반도체 부문 인력 재배치와 함께 업무 프로세스 개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21일 삼성전자는 DS 부문장을 경계현 대표이사 사장에서 전영현 부회장으로 교체하는 ‘깜짝인사’를 발표했다. 보통 삼성전자는 연말 정기 사장단 인사를 통해 주요 사업부문 대표를 선임했는데, 5월에 전격 수장을 교체했다.

이를 두고 이재용 회장이 반도체 사업 위기 타개를 위해 결단을 내렸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약 2년5개월 동안 삼성전자 반도체를 이끌었던 경계현 사장은 2023년 반도체 업황이 최악이었던 상황에도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 확대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HBM 주도권을 상실하는 데 책임이 크다는 회사 안팎의 비판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5세대 HBM인 HBM3E를 개발해 엔비디아로부터 샘플 인증 테스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아직까지 공급 확정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반면 경쟁사인 SK하이닉스는 HBM3에 이어 HBM3E도 엔비디아 공급을 확정했고, 마이크론도 HBM3E를 엔비디아에 납품키로 했다.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인증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반도체 부문 대표를 전격 교체한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엔비디아 관련해선 확인해줄 수는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2025년 전체 D램 매출에서 3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HBM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밀리고 있는 양상이다.

미즈호증권은 “HBM3E 시장은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의 2톱 체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전영현 부회장은 D램 설계에선 국내 최고 전문가로 불린다.

2001년~2008년 메모리사업부 D램 설계팀을 이끌며 50나노급 1GB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이후 20나노와 18나노급 D램 미세공정 개발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는 2009년 D램 개발실장을 거쳐 2014년 5월 김기남 사장의 후임으로 메모리사업부장을 역임했다.

당시 삼성전자 출신이 아니라 LG반도체 출신 전 부회장이 메모리사업부장에 오른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반응도 나왔지만, 이미 내부에서는 ‘김기남 사장의 후임자는 전영현밖에 없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내부 신임이 두터웠다.  

전 부회장은 권오현, 김기남 전 회장들과 함께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주역 가운데 한 명으로 1960년생의 '올드보이'로 분류되지만, 여전히 이 회장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는 전해졌다. 

전 부회장은 우선 HBM 경쟁우위를 되찾는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HBM 실기' 삼성전자 반도체 수장 전격 교체, 전영현 잃어버린 초격차 되찾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반도체부문 수장을 전격 교체하는 핀포인트 인사를 통해 조직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HBM 시장은 AI 반도체 성장에 따라 급격하게 커지고 있어 HBM3E가 엔비디아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D램 주도권이 완전히 경쟁사들에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다. 이 회장도 관련 보고를 받으며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에 이번 ‘핀포인트’ 인사를 단행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삼성전자는 황상준 메모리사업부 D램 개발실장이 엔비디아 경영진과 HBM3E 공급 관련 논의를 하기 위해 미국 출장길에 오르는 등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부회장은 ‘선택과 집중’을 위해 연구개발 인력을 재배치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올해 3월 차세대 HBM을 개발하는 태스크포스(TF)를 꾸리며 메모리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후공정 분야의 인력 100여 명을 한 군데로 모았다. 또 300명 규모의 HBM 개발 전담팀이 6세대 HBM인 HBM4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경쟁사를 뛰어넘어 HBM에서도 ‘초격차’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전문인력이 투입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무 방식과 평가 시스템도 손볼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삼성전자 문화가 도전보다는 안정, 개방보다는 보수적 사고가 팽배해지면서 반도체 전문 인력의 이탈이 늘고 있다는 내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처럼 도전할 수 없는 삼성전자의 사내 문화는 평가, 보상 시스템이 단기적 관점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닛케이아시아는 4월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에서 퇴사한 연구개발 직원을 인용해 “리더들이 위험을 피하면서 경쟁사에 뒤처지기 시작했다”며 “삼성의 최고 경영진은 1년 계약만 부여받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프로젝트에 시간을 투입할 여유가 없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