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신세계 소액주주 모임이 주주제안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회사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것인데 실제로 광주신세계는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배구조를 봤을 때 소액주주들의 제안이 주주총회에서 승인될 가능성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회사의 태도 변화를 위해서다.
실제로 광주신세계는 소액주주 목소리가 나온 뒤 결산배당 금액을 정한 이유에 대해 시장과 소통하는 등 '눈치'도 보고 있다.
23일 광주신세계에 따르면 3월22일 광주광역시 서구 유스퀘어에서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 상장될 여러 안건 가운데 2022년도 결산배당 안건과 감사위원을 겸임하는 사외이사 선임 안건은 회사안과 주주제안안이 동시에 올라간다.
광주신세계는 지난해 결산배당으로 1주당 2200원을 주려고 한다. 반면 소액주주들이 주주제안을 통해 낸 지난해 결산배당안은 1주당 3750원이다.
감사위원을 맡는 사외이사에 한동연 현 광주신세계 감사위원장을 재선임하겠다는 것은 광주신세계의 안이다. 소액주주들은 이 자리에 회계사인 배일성 현 서원회계법인 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광주신세계의 정기주주총회에 소액주주들이 내놓은 주주제안 안건이 상정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광주신세계 소액주주 모임 '광주신세계소액주주권리찾기운동'의 대표 김남훈씨는 1월30일 결산배당을 늘려줄 것과 소액주주의 의견을 이사회에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사외이사를 선임해줄 것을 뼈대로 하는 주주제안 안건을 보도자료로 밝혔다.
김 대표는 27일부터 소액주주 모임의 다른 회원 2명과 함께 의결권 대리행사를 위해 의결권을 위임받는 절차도 밟는다. 대상은 지난해 12월31일 기준 광주신세계 주주명부에 기재돼 있는 주주 전체다.
하지만 광주신세계에서 처음 벌어지는 소액주주 운동이 성공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보면 광주신세계의 최대주주는 지분 62.5%를 보유한 신세계다. 2대주주는 외국계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로 지분 6.09%를 들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주주 숫자로만 따지면 광주신세계 주주의 99.72%를 차지하지만 이들이 들고 있는 지분은 19.11%에 불과하다.
표 대결을 펼치면 소액주주들이 판을 뒤집을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뜻이다.
광주신세계의 주주총회 절차도 회사쪽에 유리하게 돼 있다.
광주신세계는 주주총회소집공고에서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놓고 "일괄표결을 통해 결의 요건을 충족하는 후보자 가운데 다수의 찬성을 받은 다득표자를 선임하는 투표 방식을 이사회 결의 승인을 받아 1명을 선임하고자 한다"고 했다.
신세계가 회사안에 찬성표를 던진다면 소액주주들의 제안은 자동 폐기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액주주들이 광주신세계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회사의 결정을 견제하는 의견을 내지 않으면 회사가 소액주주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광주신세계의 지배구조가 바뀌면서 소액주주들의 권리가 대폭 침해됐다는 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2021년 9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광주신세계 지분 52.08%를 2285억 원에 모두 신세계에 넘겼다.
광주신세계는 예전부터 정 부회장의 '승계 자금줄'로 여겨졌던 회사다. 정 부회장이 지분을 모두 털고 나간 것은 사실상 이 회사 주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를 잃었다는 뜻으로 시장에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정 부회장이 광주신세계 지분을 모두 신세계에 매각한 다음날 광주신세계 주가는 15%가량 급락했다.
김남훈 광주신세계소액주주권리찾기운동 대표는 "대주주는 본인의 주식을 매각할 때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고 매각했지만 회사의 성장을 바라며 장기투자하고 있는 소수 주주는 그 프리미엄을 받지 못했다"며 "이는 부당하고 주주평등의 원칙에도 반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결산배당을 올려달라고 요구한 것도 이런 주장의 연장선에 있다.
김 대표는 "대주주 변경 과정에서 회사는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데 미흡했다"며 "(대주주가 받은) 경영권 프리미엄이 380억 원인데 회사가 결정한 2021년 현금배당 총액이 135억 원이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현재 주주제안으로 상정한 현금배당 1주당 3750원(현금배당 총액 300억 원)은 회사가 지급할 수 있는 범위라고 덧붙였다.
▲ 광주신세계가 소액주주의 움직임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자신들이 원하는 사외이사를 선임해달라는 것도 소액주주의 의견을 회사에 직접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김 대표는 설명한다.
신세계는 물론 이러한 소액주주 모임의 주주제안을 모두 반대한다.
신세계는 23일 '의결권대리행사권유참고서류' 공시를 통해 "(소액주주 모임이 한) 배당 제안은 회사의 기업가치와 전체 주주 이익 증대를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소액주주 모임이 제안한) 사외이사 후보도 후보 심사와 검증 절차를 충분히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반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액주주 운동의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광주신세계는 이번 주주총회에 올릴 안건을 정하기 위한 이사회를 열면서 소액주주들의 시선을 일부 의식한 듯한 행보를 보였다.
광주신세계는 과거 이마트에 대형마트 사업부문을 양도할 때 취득했던 자사주 4만2810주를 주주총회 이후 소각하기로 했다. 전체 발행주식의 0.54%밖에 되지 않는 소량이지만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홈페이지에 지난해 결산배당 규모를 결정한 배경을 놓고 자세한 설명자료를 올린 것도 사실상 주주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광주신세계는 이 자료를 국문과 영문 버전으로 모두 작성하고 "회사는 현재 광주 아트앤컬쳐파크 개발을 예정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 향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자본시장의 불확실성과 높은 금융 비용을 고려할 때 현재의 배당정책에 따른 주주환원 수준을 유지하면서 자체 유보자금을 활용하는 것이 보다 나은 방안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여태껏 광주신세계가 배당과 관련해 단 한 번도 시장과 문서로 소통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의미 있는 변화로 보인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