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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장기화될 조짐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국제유가 폭등 등 영향으로 당장 올해 실적에는 타격이 불가피해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전쟁 뒤 재건사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삼성물산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병합발전소,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원전, 카타르에서 LNG 수출기지 탱크 등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9일 AP,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국영 매체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현지시각 8일 열린 전문가회의를 통해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했다.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미국,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이다. 이란 혁명수비대 내 강경파의 지지를 받는 인물인 만큼 이번 최고지도자 선출은 이란이 앞으로 미국을 향해 지속적으로 항전을 이어갈 것이라는 신호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중동 전쟁이 장기화한다면 한국 건설사로서는 한동안 실적 흐름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건설사들은 현재 이란에는 직접 공사를 진행하는 현장을 운영하고 있지 않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이라크, 쿠웨이트 등 인근 중동 국가에서는 다수의 현장을 운영 중이다.
삼성물산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병합발전소,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원전, 카타르에서 LNG 수출기지 탱크 등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삼성E&A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파딜리 가스 플랜트 증설, 카타르에서 에틸렌 저장설비 건설 등 사업을 진행 중이다.
현대건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자푸리 유틸리티 프로젝트와 380kV(킬로볼트) 규모 송전선로 공사를, 이라크에서는 해수처리시설 공사 등을 맡고 있다.
한국의 전통적 수주 텃밭인 중동에서의 불안은 당장 인력, 물류 이동 제약과 이에 따른 공기 지연을 유발할 수 있다. 공기 지연은 결국 공사비 증가를 비롯해 매출 발생 지연 등 재무적 손해로 이어진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한국 건설사의 해외 수주액 가운데 중동의 비중은 지난해 기준 25% 정도로 낮지 않은 만큼 앞으로 중동 정세 불안의 확산 여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바라봤다.
장 연구원은 “현재 진행 중의 프로젝트의 문제보다 중동 발주처의 신규 투자결정이 지연되면서 신규 수주 확보에 시간이 더 소요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중동 전쟁의 장기화는 국내 건설 현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국제유가의 폭등이 건설 원가의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중동 전쟁의 영향으로 국제유가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으로 9일 2022년 7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이은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제유가의 상승에 아스팔트, 페인트와 같은 석유화학 자재는 물론 시멘트 제조에 필수적인 연료비, 건설 장비 가동용 경유 등도 동시에 급등한다”며 “이미 주요 건설사들의 매출 원가율이 90%를 웃돌아 비용 관리에 부담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국제유가 급등은 수익성 회복 속도를 둔화시키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다만 중동 전쟁의 진행 중에는 한동안 한국 건설사들이 어려움을 겪겠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재건 사업을 통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동전쟁에서 이란의 공격은 인근 국가 내 미군 기지를 넘어 공항, 에너지, 담수화 등 주요 인프라를 향한 공격으로 확대되고 있다.
▲ 현대건설은 중동 지역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자푸리 유틸리티 프로젝트와 380kV(킬로볼트) 규모 송전선로 공사, 이라크 해수처리시설 공사 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란은 이미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스타누라 정유시설, 카타르의 메사이드 발전소 및 라스파판 LNG 시설, 쿠웨이트 아흐마디 정유시설 등 인근 국가들의 주요 에너지 인프라를 공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바레인 정부는 현지시각 8일 이란 드론이 자국 내 담수화 시설을 공격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동 지역 국가들은 이번 전쟁을 계기로 파괴된 인프라의 복구에 더해 에너지, 담수화 시설 등 핵심 인프라의 재배치까지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물산, 현대건설을 비롯해 두산에너빌리티 등 한국 기업들은 중동 지역에서 다수의 담수화 시설의 건설을 맡아왔고 최근에는 에너지 인프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사업 발주 국가들이 이번 전쟁에 따른 고유가 흐름에 재정적 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종전 뒤 발주 확대 가능성을 높인다.
한국 건설사들은 이미 1970년대 오일쇼크,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중동 플랜트 시장의 호황에 수혜를 본 경험이 있다.
류태환 유진투자등권 연구원은 “역사적으로 지정학적 갈등은 단기 충격 이후 에너지 인프라 투자 사이클의 촉매로 작용해 왔다”며 “중장기적으로는 과거 사례와 같이 에너지 공급선 다변화, 산유국의 재정 지출 확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투자 사이클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