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당신의 노후 계획은 안녕하십니까. 올해 한국사회는 퇴직연금을 도입한 지 20년차를 맞았다. 하지만 퇴직연금이 퇴직 이후 안정적 삶을 보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퇴직연금'이 되기 위해선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비즈니스포스트는 특별취재팀을 꾸려 퇴직연금 선진국을 찾는다. 우리보다 앞서 제도를 도입한 호주, 일본, 미국의 퇴직연금 장단점을 알아보고 국내 퇴직연금제도가 가야할 방향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 일본 글 싣는 순서
① 부자 아빠에 가난한 아들 거부한다, '일본형 IRP' 청년층 관심 폭발
② 하지메 야나기다 일본JP모건 전무 “일본 퇴직연금도 DC형이 주류될 것”
③ 류재광 간다외국어대 아시아언어학과 교수 “원리금보장 상품 의존하면 디폴트옵션 실패할 것”
④ 다이와종합연구소 정책조사부 연구원 "퇴직연금 핵심은 투자교육"
⑤ 노무라자산운용 출신 전문가 2인 “디폴트옵션에 강제성 필요”
⑥ 일본 전문가들이 바라본 한국 퇴직연금시장

 
[노후, K퇴직연금을 묻다 일본②] 하지메 야나기다 일본JP모건 전무 “일본 퇴직연금도 DC형이 주류될 것”

▲ 하지메 야나기다 일본 JP모간자산운용 금융법인영업부 전무가 22일 도쿄 JP모간 본사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도쿄(일본)=비즈니스포스트] “향후 일본 퇴직연금시장에서 확정기여형(DC)이 확정급여형(DB)형을 넘어서는 순간이 분명 온다. 그 때가 되면 일본 퇴직연금시장에도 큰 변화가 올 것이다.”

22일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JP모간 본사에서 만난 연금전문가인 하지메 야나기다 일본JP모건자산운용 금융법인영업부 전무는 일본 퇴직연금시장의 미래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일본 퇴직연금시장에서는 현재 자산 규모 기준 DB형이 80%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DC형은 20%에 그친다.

DC형이 DB형과 지금의 압도적 자산 규모 차이를 뒤집고 일본 퇴직연금시장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 본 것인데 야나기다 전무는 가장 큰 요인으로 기업들의 태도 변화를 꼽았다.

그는 "DB형의 경우 운용책임이 모두 기업들에게 있어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이 현재 전 세계의 추세다“며 ”이에 일본에서도 소니 등 대기업들이 DB형에서 DC형으로 다들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노후, K퇴직연금을 묻다 일본②] 하지메 야나기다 일본JP모건 전무 “일본 퇴직연금도 DC형이 주류될 것”

▲ 일본 도쿄 JP모건 본사 2층에서 바라본 로비 모습. 일본JP모건 본사는 로비부터 압도적 위용을 자랑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여기에 일본기업들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변수도 부담으로 더해지고 있다.

OECD에 따르면 향후 일본은 디플레이션에서 완전히 벗어나 2%대의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오랜 디플레이션 시대 DB형 퇴직연금의 목표 수익률이 3% 정도로 고정돼 있었는데 인플레이션 시대가 오면 DB형 퇴직연금의 목표 수익률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야나기다 전무는 “미국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7~8%인데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실질 수익률은 4~5% 정도로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일본은 오랜 디플레이션을 겪어 그동안 3% 수익률도 충분했는데 지금은 시장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DB형은 기업이 퇴직연금을 지급하기 위한 자금을 쌓아야 하며 이에 따른 자금의 운용책임도 모두 기업에 있다. 만일 자금을 운용하다가 손실이 나면 부족한 퇴직금은 기업이 메워야 한다.

반면 DC형의 경우 기업은 직원들의 퇴직금 계좌에 매년 일정 액수를 적립해 주기만 하면 된다. 이후 운용 책임은 개별 직원들이 진다.

일본의 물가상승에 따라 퇴직연금의 목표수익률이 높아지면 DC형을 선택한 기업들의 퇴직연금 운용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일본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퇴직연금 수익률을 적극적으로 높이려 하는 점도 DC형 전환에 힘을 싣는 요인으로 꼽혔다.

야나기다 전무는 “부모 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들은 점차 공적연금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며 “여기에 인플레이션에 따른 실질소득 감소도 고려해야 하는 만큼 개인에게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주요 과제가 되고 있다”고 바라봤다.

야나기다 전무에 따르면 젊은층에서는 퇴직연금 자산 비중에서 원리금보장형보다 투자형상품의 비중이 급격히 올라가는 추세가 이미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일본 20대가 DC형에서 투자형상품을 택하는 비중은 65%까지 높아졌다. 일본의 개인형 DC형 상품인 이데코(iDeCo, 한국의 IRP)에서는 투자형상품 비중이 80%를 넘기기도 했다.
[노후, K퇴직연금을 묻다 일본②] 하지메 야나기다 일본JP모건 전무 “일본 퇴직연금도 DC형이 주류될 것”

▲ 일본 기업형 DC(왼쪽)와 개인형 DC(이데코, 한국의 IRP)에서 연령대별 투자형 상품의 비중. 2017년, 2020년, 2023년을 거치면서 특히 젊은 층에서 투자형 상품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점을 볼 수 있다. <노무라연구소>

야나기다 전무는 “일본 젊은층도 유튜브 등의 발달로 해외 젊은이들의 투자성공 사례들을 보면서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가 도박이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투자형상품 선택을 늘리고 있다”며 “정보혁명도 젊은층의 투자 확대를 이끌고 있는 한 요인이다”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가 향후 세제혜택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점도 DC형의 강점으로 제시됐다.

야나기다 전무는 “지금까지 DC형이 크게 성장하지 못한 것은 세제혜택의 문제가 있었다”며 “구체적으로 보면 현재 DC형은 세제혜택이 1년에 60만 엔까지지만 DB는 무제한인데 어찌보면 이것이 DC형이 늘지 않은 가장 큰 이유였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일본 정부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며 “일본 정부가 최근 NISA(일본의 개인형종합자산관리계좌)에 세제혜택을 크게 강화해 신NISA를 출범시켰는데 이런 흐름이 향후 DC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일본 정부가 신NISA를 통해 증시가 오르는 톡톡한 효과를 본 만큼 다음 세제혜택 대상으로 DC형 상품을 적극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신NISA 출범 당시 넉넉지 않은 재정으로 NISA와 DC형 모두에 세제혜택을 강화할 수가 없어 우선 NISA에만 세제혜택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이유들로 DC형은 자산 규모 측면에서는 여전히 DB형에 크게 밀리지만 가입자 수 기준으로는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DB형 가입자 수는 최근 감소 추세인 반면 DC형은 꾸준히 늘어 이미 DB형을 거의 따라 잡았다.
 
[노후, K퇴직연금을 묻다 일본②] 하지메 야나기다 일본JP모건 전무 “일본 퇴직연금도 DC형이 주류될 것”

▲ 2022년 말 시점까지 매년 DB형(푸른색)과 DC형(연두색) 가입자 수의 추이. DB가 하락하고 있는 반면 DC는 줄곧 상승세다. <일본 후생노동성>

야나기다 전무는 DC형 시장이 커질수록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역할도 중요해질 것으로 봤다.

일본에서는 한국보다 5년 빠른 2018년 디폴트옵션 제도가 도입됐으나 전반적으로 지금까지는 도입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일본 디폴트옵션에는 원리금보장상품도 허용되면서 도입 효과가 크지 않았다”며 “일본은 DB형이 대세인 만큼 디폴트옵션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는데 향후 DC형이 늘어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일본 DC형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특히 한국과 달리 퇴직연금 상품 수익률 비교공시가 이뤄지지 않는 점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야나기다 전무는 “일본에서 수익률 비교공시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금융사나 연금기금들이 공개를 꺼려하기 때문이다”며 “DB형을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이해하지만 DC형은 상품을 개인들이 선택하므로 수익률 공시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금융당국에서는 수익률 비교공시를 준비하고 있으나 일본 금융사들이 경쟁을 좋아하지 않는 문화라 쉽지 않을 것 같다”며 “한국에서 고용노동부와 금융당국 등이 내놓은 수익률 공시 봤는데 멋지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야나기다 전무는 JP모간자산운용 내에서도 연금 전문가로 손꼽힌다. JP모간자산운용은 매년 일본 퇴직연금시장 조사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일본 퇴직연금시장의 주요 운용사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야나기다 전무는 와세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과거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 등을 거쳤다. 현재 일본 증권애널리스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