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기업 SMIC가 본격적으로 반도체 미세공정 수준을 높이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독점하던 미세공정에 새로운 기업이 발을 들이는 만큼 파운드리시장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중국 SMIC 반도체 공정 진화, 삼성전자와 대만 TSMC 양강 파고들어

▲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


10일 외국언론을 종합하면 SMIC는 이미 주요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로부터 7나노급 반도체를 수주해 생산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기술매체 CN테크포스트는 “SMIC는 4분기부터 7나노급 반도체를 소규모로 생산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반도체 생산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올해 31억 달러에 이르는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SMIC가 개발한 7나노급 공정은 ‘N+1’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졌다.

SMIC의 기존 14나노급 공정과 비교해 성능은 20% 개선되는 반면 전력 소비와 회로 면적은 각각 57%, 63% 감소한다. SMIC는 N+1을 개선한 ‘N+2’도 개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7나노급 공정을 제공할 수 있는 파운드리기업은 삼성전자와 TSMC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SMIC가 7나노급 공정에 도달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7나노급 공정은 아직 5나노급 반도체가 출시되지 않는 가운데 가장 수익성이 높은 파운드리 공정으로 꼽힌다. 

TSMC에 따르면 2019년 4분기 매출 가운데 35%를 7나노급 공정이 차지했다. TSMC가 2019년 매출 41조 원가량을 거두며 역대 최대를 세운 데 7나노급 공정이 톡톡히 기여한 셈이다.

삼성전자도 TSMC와 함께 7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하는 만큼 파운드리사업부에서 7나노급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SMIC가 7나노급 공정을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 다른 두 기업이 글로벌 팹리스의 7나노급 반도체를 차지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됐다.

반도체 위탁생산 가격도 SMIC의 7나노급 공정 진입에 따라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팹리스 쪽에서 보면 7나노급 공정을 제공하는 기업이 2개에서 3개로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가격협상의 여지가 확대될 수 있다. 

SMIC가 삼성전자와 TSMC의 ‘눈엣가시’로 여겨지는 이유다.

특히 삼성전자는 TSMC와 비교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훨씬 낮은 만큼 SMIC의 미세공정 개발이 더욱 달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 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19년 4분기 기준 TSMC는 시장점유율 52.7%, 삼성전자는 17.8%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SMIC는 점유율 4.3%에 불과했다. 하지만 SMIC가 7나노급 공정을 본격적으로 상용화하면 이른 시일 안에 다른 기업들과 점유율 격차를 좁힐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만 SMIC가 삼성전자나 TSMC와 달리 위탁생산 일감을 확보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파운드리에 일감을 주는 팹리스 대부분이 현재 미국에 속해 있는데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데다 미국 정부가 중국의 반도체 기술 발달을 견제하고 있어 SMIC의 반도체 수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 조사기관 IC인사이츠가 집계한 2018년 기준 팹리스시장 점유율을 보면 미국기업이 68%를 차지했다. 

하지만 미국과 반대로 중국에서는 SMIC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적으로 ‘중국 제조 2025’와 같은 반도체 육성정책이 시행되는 이상 적어도 중국 기업들의 일감은 SMIC로 갈 공산이 크다. 중국 제조 2025는 중국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 수준으로 높이는 것을 뼈대로 한다.

또 최근에는 중국에서 가장 큰 팹리스로 꼽히는 하이실리콘이 TSMC 대신 SMIC로 점차 방향을 틀면서 SMIC가 성장할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이실리콘은 화웨이의 자회사로 최근 화웨이와 미국 정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미국 정부로부터 TSMC와 거래를 중단당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초 업계에서는 SMIC가 7나노급 이하 공정을 개발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바라봤다. 7나노급 이하 미세공정에서는 극자외선(EUV) 장비의 필요성이 높아지는데 미국 정부가 SMIC의 극자외선 장비 수입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극자외선 장비는 기존 광원인 불화아르곤레이저보다 파장이 짧아 더욱 미세한 회로를 새길 수 있다.

그러나 SMIC가 개발한 N+1, N+2 공정은 7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극자외선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SMIC는 TSMC가 초기 7나노급 공정을 개발했던 때와 같이 불화아르곤레이저 등 기존 광원을 활용해 7나노급 회로를 새기는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