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다시, 청와대 시대가 열린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권위주의를 혁파하고 국민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겠다면서 무리하게 용산으로 이전했으나, 돌고 돌아 대통령실이 다시 경복궁 위쪽 인왕산 아래 청와대로 되돌아간다. 확장과 철거, 그리고 공백을 겪어온 '청와대의 여정'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크리스마스 입주 앞둔 청와대, 넓히고·부수고·떠났던 역사 다시 열린다

▲ 용산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로 옮기는 이사 작업이 착수된 8일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바라 본 청와대. 성탄절 전후로 이사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14일 정부 움직임을 종합하면 대통령실의 청와대 복귀는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강훈식 비서실장은 7일 ‘이재명 정부 6개월 성과 보고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실은 용산시대를 뒤로 하고 원래 있어야 할 곳인 청와대로 이전한다”며 “업무시설의 경우 크리스마스쯤 이사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서울시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업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실의 효과적 운영과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제자리를 잡기 위해 이재명 정부는 청와대 복귀를 선택했다. 이는 또한 '윤석열 시대 종료·이재명 시대 개막'이라는 강한 상징성도 갖는다. 

청와대는 단순한 건물군이 아니라 정권에 따라 이름과 형태를 달리해 왔다. 경복궁 후원 자리에 세워진 조선총독부 관저에서 출발해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용산 이전까지 청와대는 확장·파괴·공백의 역사를 통과해 왔다. 

◆군사정권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 청와대를 증축해 현 모습을 갖추다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를 처음으로 대대적으로 넓혔다. 이 시기 본관과 관저 주변에 대규모 증·개축이 반복됐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에 보존돼 있는 박정희 정부 당시 예비비지출 재가 품의 문서를 살펴보면 △청와대 경호초소 시설공사비 △청와대 제2신관 건축공사비 등 구체적 공사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 유일한 한옥 건물이었던 상춘재를 조성했으나 당시 군사정권의 폐쇄성으로 인해 공개된 기록이 많지 않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상춘재는 1983년 4월5일 완공됐다. 이때 공개적 준공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노태우 대통령은 청와대를 '푸른 기와'로 덮어 오늘날의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기존의 서양식·혼합식 구조를 걷어내고 건물 외피를 한옥 양식으로 교체했다.

노 대통령은 1991년 9월4일 청와대 새 본관 준공식 연설에서 "건국 반세기를 내다보는 이제까지 역대 대통 령이 52년전 일제가 총독관저로 지은 협소한 집을 집무실겸 관저로 써온것은 민족의 자존에 어긋나는 일이며 높아진 나라의 위상과 국민의 긍지에도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새 청와대는 국민의 사랑과 신뢰위에 선 민주정부의 표상으로 번영하는 선진국, 7천만 겨레가 한나라속에 사는 통일을 이루고 또한 그속에서 민족의 무한한 영광을 창조하는 전당이 되기를 충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였다.
 
당시 청와대 공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표이사로 있었던 현대건설이 맡았다.

◆문민정부 김영삼, 본관을 부수어 일제가 끊은 능선을 되찾다

김영삼 대통령은 '역사 바로세우기' 일환으로 청와대 구 본관으로 쓰이던 옛 조선총독 관저 철거를 지시했다. 

청와대는 1993년 10월15일 보도자료를 통해 "1993년 2월25일 출범한 신정부에서는 어둡고 쓰라렸던 과거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잡기 위하여 구 본관의 철거를 확정 짓고 1993년 10월15일 철거하기 이르렀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청와대 구 본관의 잔재를 활용해 북악산 능선을 복구하기도 했는데 이에는 풍수지리적 해석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KBS는 1993년 10월15일 메인 뉴스인 '9시뉴스'에서 "조선시대 수공이 있었던 이 위치(청와대 구 본관 위치)는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지만 양택이 아닌 음택으로 알려져 왔으며 일제는 북악으로부터 경복궁으로 흐르는 맥을 끊어 조선의 기를 차단하기 위해서 이 능선을 끊고 집터를 조성한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며 "청와대는 구 본관건물의 벽돌과 기왓장을 모두 능선을 복원하는데 사용할 계획이며 그 위에 잔디를 조성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김 대통령은 청와대 주변 일부를 일반에 공개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보존한 국립영화제작소가 1993년 2월25일 공개한 ‘신한국 창도(제14대 김영삼 대통령 취임)’ 영상에는 “이날을 기해서 청와대 앞길이 개방되고 인왕산 등산길이 뚫리는가 하면 청와대 주변 안전가옥과 이른바 지방 청와대도 국민에게 되돌려졌다”는 설명이 담겨 있다.  

윤석열, 청와대를 비우고 용산으로 들어가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공약한 것처럼 청와대를 일반에 공개하고 대통령실은 용산 국방부 건물로 들어갔다. 이에 윤 대통령 부부는 단 하루도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크리스마스 입주 앞둔 청와대, 넓히고·부수고·떠났던 역사 다시 열린다

▲ 2024년 12월12일 서울 남영삼거리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국민의힘 해체를 촉구하며 대통령실 방향으로 행진하던 민주노총 등 단체 회원들이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22년 1월27일 서울시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계획 발표' 회견을 열고 “제가 대통령이 되면 기존의 청와대는 사라질 것”이라고 공약했다. 윤 후보는 “부처 위에 군림하면서 권력만 독점하고, 국가적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미래도 준비하지 못하는 청와대로는 더 이상 국가를 이끌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대통령실 이전을 두고 즉각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특히 도감청 문제와 함께 비용 문제가 크게 부각됐다.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가 국회예산정책처에 의뢰한 '대통령 관저 및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그에 따른 연쇄이동 및 부대시설 구축 비용 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대통령실 이전 비용은 2024년 기준 832억1600만 원이며, 합동참모본부 이전 신축사업비 2418억 원까지 추가하면 총 3250억1600만 원에 이른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이전 비용으로 496억 원을 주장했는데, 실제는 이보다 6.6배가 많은 예산이 들어간 것이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윤 전 대통령의 대통령 집무실은 2022년 5월10일 이루어졌다.

용산 대통령실은 따로 대규모 오찬·만찬 공간이 없어 몇 차례 서울시내 호텔을 이용하다 비용 문제로 결국 청와대 영빈관 건물을 계속 사용했다. 윤 대통령도 오찬·만찬을 위해 청와대를 찾는 일이 계속 벌어진 셈이다. 

한편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용산 대통령실' 사수에 전력을 다했다. 경찰의 압수수색과 공수처의 체포 시도를 경호처를 동원해 막아섰다. 결국 그는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1주일 만인 2025년 4월11일 관저에서 퇴거했다.

올해 12월 말 청와대는 우여곡절을 거쳐 다시 대통령을 주인으로 맞이하게 됐다. 이 대통령은 일단 복귀를 선언했지만 세종 대통령실 시대가 추후 열릴 가능성도 있다.

이 대통령은 2025년 4월21일 대선 후보로 더불어민주당에서 경선하던 시절  MBC ‘특집 100분 토론’에서 진행된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세종시로 집무실을 옮기는 게 종착지가 되지 않을까 한다.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