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정부가 한미 통상협상에서 '15% 관세, 3500억 달러 투자'에 합의했다.

15% 관세 수준은 일본과 유럽연합(EU)와 동일하며, 대미 투자는 일본과 달리 조선업 협력 등 '자물쇠'를 채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일 협상을 지켜본 뒤 그 뒤에 협상에 나선다는 전략이 빛을 발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보다 늦게' 전략 통했다, 15%에 대미투자 '자물쇠' 채우고 농산물 지켜

이재명 대통령이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 특강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3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촉박한 기간과 녹록지 않은 여건이었지만 정부는 오직 국익을 최우선으로 협상에 임했다"며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전략 다듬기를 반복한 끝에 오늘 드디어 관세협상을 타결했다"고 밝혔다. 

협상 마감 시한인 8월1일을 하루 앞두고 대미 관세 협상을 타결한 것이다. 상호관세율은 앞서 타결한 일본·EU와 같은 15%로 맞췄다. 미국 시장에서 일본, EU와 경쟁하는 한국으로선 일단 외형적으로 동일한 경쟁 조건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일각에서는 일본·EU보다 늦게 타결함으로써 더 나은 성과를 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EU는 28일, 일본은 22일 대미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정부는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대미 투자(3500억 달러), 에너지 수입(1천억 달러) 등을 약속했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로 결정됐다. 

특히 대미 투자와 관련해 정부는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1500억 달러 규모로 한미 양국이 조선 분야에서 함께 협력하는 펀드가 포함된다. 나머지 2천억 달러는 반도체·원전·이차전지·바이오 분야 투자에 동원된다.

한국 정부는 대미 투자 펀드에 있어 앞선 미일 협상과 비교해 '자물쇠'를 달아뒀다. 자물쇠가 얼마나 튼튼할지 지켜봐야 하지만, 일본이 5500억 달러를 '묻지마 투자' 식으로 집어넣겠다고 한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을 알리면서 "일본이 미국과 만들기로 약속한 펀드는 구체적 합의가 없었다"며 "우리는 일본 펀드를 정밀하게 분석했고 관련 정보를 외교라인 등을 통해 최대한 확보하려 했다. 금융위원회와 통상 변호사도 함께 분석에 참여했고 우리는 일본보다 훨씬 많은 안전장치를 포함시켰다"고 강조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특히 "2천억 달러 펀드에는 미국이 보증하고 산업적으로 합리적인 분야에 투자한다는 점이 명시돼 있다"며 "이 표현은 우리 측 합의문에는 포함돼 있지만 일본과 미국 간의 펀드 합의에는 없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2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 가운데 직접투자 비율은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이 자리에서 "직접투자는 비율이 높지 않고 대부분이 대출과 보증이라고 본다"며 "보증이 제일 (비율이) 높고 대출·직접투자는 비율로 말하긴 어려워도 매우 낮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2천억 달러를 한도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2천억 달러를 전부 투자한다는 것과는 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안전장치 마련에 있어 수많은 '물밑 사전 작업'이 있었다.
 
'일본보다 늦게' 전략 통했다, 15%에 대미투자 '자물쇠' 채우고 농산물 지켜

▲ 조현 외교부 장관(왼쪽)이 30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를 예방, 악수하며 기념촬영하고 있다. <외교부>


앞서 조현 외교부 장관은 30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 이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를 만나 한미일 협력 진전에 대한 회담을 진행했는데 이 자리에서도 일본과 미국의 '펀드 딜'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김 실장은 "일본과 미국의 펀드 협상 내용을 정말 정밀히 분석했다. 조현 장관이 이시바 총리를 만나서 추가적으로 듣기도 했다"며 "우리 나름대로 안전장치를 훨씬 많이 포함시켰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일본과 미국의 펀드 딜을 전례로 삼아 이를 심층 연구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김 실장은 "우리는 비망록에 펀드 3가지 요소가 포함된다는 사항을 적어뒀다"며 "그 안에 '에쿼티(자기자본)가 5% 미만이다' 라고는 안 했지만 이 펀드는 에쿼티, 론(대출), 개런티(보증)를 다 포함한다고 적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원래 우리가 투자를 얼마나 하고 얼마나 구매할 수 있다는 방식으로 최초엔 협의를 했지만 갑자기 일본식 펀드가 등장해 (미국 측에서) 일본과 비슷한 펀드를 하자고 했다"며 "하지만 우리 쪽에서 조선업이라는 구체적 특화 펀드를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조선업은 이번 한미 협상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통상 협상단도 이날 워싱턴D.C. 주미한국대사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1500억 달러 규모 조선 협력인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오늘 합의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마스가(MASGA) 프로젝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표적 정치 구호인 마가(MAGA)에 '조선업'을 뜻하는 'Shipbuilding'을 더한 이름으로, 한국 민간 조선사들의 대규모 미국 현지 투자와 이를 뒷받침할 대출·보증 등 금융 지원을 포괄하는 패키지로 구성됐다.
 
김 실장은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미국과의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 달러는 선박 건조, 유지·보수·운영(MRO),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설계·건조 경쟁력을 보유한 우리 조선 기업과 소프트웨어 분야의 강점을 보유한 미국 기업이 힘을 합한다면 자율 운행 선박 등 미래 선박 분야의 시너지 창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축산물 시장도 일본에 비해 성과를 낸 분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에 대한 미국 측의 강한 요구가 있었지만 식량 안보와 농업의 민감성을 감안해 협상에 임해 이같은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자평했다.

김 실장은 "(협상 과정에서) 당연히 고성이 오갔을 것이고 우리 정부 내에서 협상 전략을 논할 때도 고성이 오갔다"며 "농축산물이 가진 민감성, 우리 역사적 배경 등을 충분히 감안해 추가 개방을 막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 농축산 분야가 99.7%가 개방돼있다. 그걸 강조했다"며 "미국 소고기 제1수입국이 우리나라라는 점도 (미국 측에서) 공감했다. (덕분에) 특별히 문제되지 않을 협상을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참고로 미국은 미일 협상에서 쌀 구입 75% 확대, 대두 옥수수 등 농산물 80억 달러 구입 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본은 외국 쌀 최소 의무 수입량을 뜻하는 '미니멈 액세스'의 범위는 유지하되 이 가운데 미국으로부터의 수입 비중(75%)을 늘리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측 주장이 엇갈리는 대목이다.

다만 '자동차 관세율 15%'는 아쉽다는 평가가 대통령실 안팎에서 나왔다.

자동차 관세율은 미국 내 주요 경쟁국인 일본, EU와 같은 수준이다. 하지만 한국은 그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무관세를 적용받았고 일본·EU는 2.5%였다. 최종적으로 같은 15%로 동일해지면서 한국은 이전보다 2.5% 인상된 처지가 됐다.

김 실장은 "아쉬운 부분"이라며 "우리는 당연히 (기존 2.5% 관세율 차이를 감안해) 12.5%를 끝까지 주장했다. 최선을 다해 주장했지만 (미국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FTA라는 틀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31일 YTN '뉴스나우'에서 "특히 자동차는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다"며 "미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결국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소비가 둔화되고 수출이 줄어든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