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체코 정상회담에 쏠리는 눈, 30조 체코 원전 역전승 모멘텀 될까

▲ 한국이 체코 원전 수주를 놓고 프랑스에 역전승을 거둘까?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30조 원 규모의 체코 원전 사업 입찰 결과 발표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 만난다.

원전 수출은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 국정 과제로 여겨진다. 윤 대통령이 정상외교를 통해 강력한 경쟁자인 프랑스를 꺾고 15년 만의 한국형 원전 해외 수주 성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9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번 달 중순 예정된 체코 신규 원전 건설 프로젝트의 우선협상대상자 발표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까지 막판 총력전에 나선다.

윤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고 있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2일 동안 머무른 뒤 10일(현지시각) 워싱턴DC로 이동해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한다. 정상회담에서 원전 수주 관련 논의가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고개를 든다.
 
한-체코 정상회담에 쏠리는 눈, 30조 체코 원전 역전승 모멘텀 될까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8일(현지시각)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 도착한 뒤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내리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로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내걸고 해외 사업 확대에 온 힘을 기울여 왔는데 이번 체코 원전 사업이 그 성과를 알아볼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 들어 미국 원자력 기업 '웨스팅하우스'에 발목이 잡히면서 2022년 폴란드 원전 수주에 실패한 사례가 있다. 다만 당시에는 정권 교체가 이뤄진 뒤 5개월 만에 수주전이 진행됐기 때문에 이번이 온전히 정부 역량을 평가받을 기회란 시선이 우세하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올해 4월 체코를 직접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은 예정된 기한과 예산안에서 원전 건설을 마무리 지을 능력과 기술력을 갖고 있다”며 한국의 원전 건설 기술력을 홍보했다. 

그는 5월 세종시 한 음식점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도 “예정된 기간 내에 (원전) 시공을 해낸 곳이 우리나라밖에 없다”라며 “프랑스는 같은 유럽 국가로서 체코에 '우리가 남이가'라는 식으로 밀어붙여 불리한 측면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경제적 측면에서만 따지면 ‘팀코리아’의 수주 경쟁력이 매우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체코 현지 매체 이코미키데니크(Ekonomicky Denik)은 5월 "한수원이 덤핑에 가까운 가격으로 거절할 수 없는 입찰을 제출했다"며 "한수원이 수주에 성공할 가능성을 조금 더 높게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한민국이 원전을 짓는 데 사용하는 1kWe(킬로와트)당 건설비는 3400달러(약 470만 원) 수준으로 경쟁국인 프랑스전력공사(EDF)의 신규원전(EPR) 예상 건설비(7500달러/kWe) 절반에도 못 미친다.

비용과 직결되는 문제인 납기일 준수와 관련해서도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미 탁월한 능력을 뽐낸 바 있다.
 
한-체코 정상회담에 쏠리는 눈, 30조 체코 원전 역전승 모멘텀 될까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13일(현지시각) 체코 프라하 조핀 궁전에서 열린 '한국·체코 원자력 및 문화교류의 날'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대한민국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고열과 모래폭풍 속에서도 공사 기한을 정확히 준수하며 사업을 마무리했다.

반면 경쟁상대인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영국 남서부 서머싯주에서 진행하고 있는 힝클리 포인트C 원전은 설계 변경에 완공 연기가 겹치면서 공사비가 애초 계획했던 180억 파운드(약 32조 원)보다 2배가 넘는 460억 파운드(약 81조 원)로 증가했다.

팀코리아의 일원인 두산에너빌리티가 체코 자회사 스코다파워를 통해 원자력 발전소에 사용하는 증기터빈 생산이 가능한 부분도 강점으로 꼽힌다. 현지에서 핵심 부품을 공급할 수 있어 운송비가 줄어드는 데다가 현지 기업 우대라는 측면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치 및 외교 측면에서는 프랑스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상급 외교 성과가 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3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에너지 포럼에 참가해 “유럽연합(EU) 중심의 가치 사슬(밸류체인) 구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원전 수주를 위해 체코를 찾은 것은 모두 합쳐서 3번이다.

체코 대통령궁에 따르면 파벨 페트르 체코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담에 참여해 회원국 정상들과 양자회담을 다수 진행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파벨 대통령의 양자회담이 계획된 것을 고려하면 체코 원전 수주에 공을 들여온 마크롱 대통령 또한 파벨 대통령을 만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체코 정부가 원전 수주 과정에서 프랑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한 모습을 보인 것이 프랑스의 정치력, 외교력을 반증한다. 체코전력공사는 프랑스의 요청에 따라 4월15일로 예정됐던 입찰제안서 제출기한을 30일로 2주가량 미뤄준 바 있다.

이 외에도 EDF는 체코와 긴밀한 소통을 지속하고 있다. 2일(현지시각)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EDF는 체코 전력회사(CEZ) 등 잠재적 고객들과의 회담 결과 소형모듈형원자로(SMR) 설계 방침 자체를 혁신기술 위주에서 안정성 위주로 바꾸기도 했다. 

지형적 측면에서도 프랑스가 유리하다.

대한민국은 내륙 국가인 체코의 특성상 원자재 및 기자재 이송 등을 위한 항만 사용을 놓고 폴란드 등 유럽 다른 나라의 협조 요청 및 관련 비용 발생을 피할 수가 없다. 반면 프랑스는 도로를 활용해 간편하고 저렴한 운송이 가능하다.

이에 더해 유럽연합(EU) 원자력 발전 업계에서의 프랑스의 위상과 영향력을 고려하면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 대한민국이 유리하다는 것만으로 수주를 예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유럽연합 공식 통계 사이트 유로스탯(eurostat)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프랑스는 유럽연합 전체 원자력 발전량의 48.4%인 29만4731GWh(기가와트시)를 생산하고 있다. 프랑스에 생산하는 전력의 62.8%가 원자력 발전일 정도로 원전 비중도 높다.

프랑스가 사실상 맹주를 맡고 있는 유럽연합 원전협력동맹에도 체코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EU 11개국은 2023년 2월28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에너지 장관회의에서 △공동의 원전 안전 규정 마련 △소형 모듈원전 등 신기술 관련 협력 △신규 원전 건설 공동사업 추진 등 원자력 분야 협력 강화에 합의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원전 협력 동맹에 참석한 국가는 프랑스와 체코 외에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핀란드, 헝가리, 네덜란드,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이 있다. 스웨덴은 의장국으로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동맹에 참석하지 않았다.

EDF는 체코 원전 수주를 위해 ‘원자력 업계의 에어버스’를 당근으로 제시하며 체코 기업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어버스는 유럽 국가들이 미국 기업들에 대항하기 위해 연합 형식으로 1969년에 설립한 항공기 제작회사이자 방위산업체다.

이코미키데니크(Ekonomicky denik)에 따르면 EDF는 체코 원전 사업을 넘어 이후에 EDF가 주관하는 유럽 원자력 발전 사업장에서도 체코 기업을 참여시키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매체는 2050년까지 체코 기업이 최대 400억 유로의 일감을 확보할 수 있다며 "매우 유혹적인 제안"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EDF는 원래부터 체코 현지 기업을 원전 사업에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홍보 전략을 짰기 때문에 이번 방식이 완전 새로운 것은 아니다”라며 “한국수력원자력이 준비한 최적화된 현지 홍보 전략에 따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체코 정부는 중부지방 도시 두코바니·테믈린에 1천~1200MW급 원전 4기를 짓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29년 착공을 시작해 2036년에 상업운전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4월 말 입찰을 마감해 6월 중순 체코전력공사가 입찰제안 평가보고서를 체코 정부에 제출했다. 7월 중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뒤 연말에 최종 사업자를 선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가에서는 조심스레 팀코리아의 수주 가능성을 점치고 있지만 여전히 신중한 시선도 존재한다.

허민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9일 내놓은 '글로벌 원전 패권전쟁 Phase1: K-원전, 신흥강자로 도약' 보고서에서 체코 원전과 관련해 "체코 정부 요구에 가장 부합할 수 있는 수출국은 한국이라고 생각한다"며 팀코리아가 수주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6월27일 "7월 체코 원전 사업에서 한국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게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김승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6월18일 "한국 컨소시엄 입찰 가격이 EDF보다 유리하다는 말이 나오지만 프랑스가 같은 유럽연합인 점을 무시할 수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5월31일 "수주금액 등을 고려하면 실제 수출 가능성에 의문이 든다"고 바라봤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