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생산적 금융(Productive Finance)은 낯선 용어다.

지난해 이재명 정부 출범 전까지는 금융권에 사실상 없던 용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2026년 한국 금융산업을 관통하는 화두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데스크리포트 1월] 낯선 용어 '생산적금융'이 성공의 단어 되기 위해 필요한 것

▲ 이억원 금융위원장(앞줄 가운데)이 2025년 12월 22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쏟아진 국내 주요 금융사 대표들의 신년사만 봐도 알 수 있다. 4대 금융지주 회장과 5대 금융협회장, 각 업권별 주요 금융사 CEO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올해 핵심 과제로 생산적 금융을 꺼내들었다.

5일 열린 ‘범금융 신년인사회’에서 경제부총리와 금융위원장이 올해 제1과제로 내세운 것 역시 생산적 금융이다.

금융인들 사이에서만 회자되는 것으로는 부족했는지, 새해 초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신간코너도 김용기 전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의 신간 ‘생산적 금융’으로 채워졌다. 책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한국 경제를 다시 뛰게 할 새로운 금융 혁신 로드맵!’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적극 추천!’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 추천도서’

생산적 금융은 이재명 정부의 핵심 금융정책이다.

금융사 자금이 이자 장사에 그치기 쉬운 부동산 등 담보대출에 머물지 않고 첨단전략산업, 벤처창업시장 등 국가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는 생산적 방향으로 흘러가게끔 유도하는 ‘금융 대전환’을 향한다.

생산적 금융은 글로벌 주요국들이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을 벌이는 이때, 한국 경제에 무엇보다 필요한 정책일 수 있다.

금융 대전환을 통해 돈이 인공지능, 반도체, 2차전지, 바이오 등 미래 핵심산업에 적극 투자돼 성공을 거둔다면 한국 경제의 도약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위에 소개한 책 ‘생산적 금융’의 부제목도 이렇다. ‘3% 성장과 양극화 완화를 위한 금융 혁신 전략.’

이처럼 중요한 정책이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성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신뢰’라는 낡디낡은 단어가 계속 마음에 남았다.

아마 요즘 ‘신뢰 게임’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서일 테다.

신뢰 게임은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8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 그룹 경영전략회의에서 임원들과 함께 토론하기 위해 선정한 책이다.

책은 메모리반도체 시장 만년 2위였던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따라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을 다룬다.

SK하이닉스 전현직 임직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SK하이닉스 경쟁력의 비결을 신뢰에서 찾는다.

경영진을 향한 신뢰와 조직 구성원 사이 신뢰를 바탕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성공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책은 이렇게 말한다.

“결국 기업 경영의 본질은 신뢰 게임이다. 신뢰는 조직의 혁신과 협업, 몰입을 이끌어 내는 근원적 동력이다.”

대한민국을 하나의 큰 기업이라고 본다면 금융당국과 개별 금융사는 한팀, 이들이 모두 2026년 핵심 과제로 꼽은 생산적 금융을 성공시키려면 신뢰가 중요할 것이다.

특히 금융당국과 개별 금융사 사이 신뢰는 핵심 요인일 수 있다.

금융당국이 개별 금융사를 믿지 못한다면 정책 실행에 날개를 달아줄 민간금융사에 중책을 맡길 수 없다.

개별 금융사가 금융당국을 믿지 못한다면 과거 수많은 금융정책 실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생산적 금융 역시 정권 초기 생색내기식 지원에 그쳐 정책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생산적 금융은 장기 프로젝트다. 향후 정권이 바뀌어도 금융당국과 민간 금융사의 신뢰는 남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금융지주 지배구조 논란은 참으로 아쉽다.

지금의 금융지주 지배구조 역시 오랜 기간 금융당국이 지속해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조해 나온 결과일 테다.

다소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구체적 문제점이 드러나기 전에는 공개적 비판을 삼가고 민간 금융사를 믿어줄 필요도 있지 않을까.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면 바로 잡아야겠지만, 불특정 금융사를 상대로 ‘참호 구축’ ‘골동품’ 등을 운운하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불확실성을 키우는 것은 신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아빠로서, 누구보다 생산적 금융의 성공을 바라기에 하는 얘기다. 이한재 금융증권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