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범석 쿠팡Inc(쿠팡 모회사)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왼쪽에서 세번째)가 2021년 3월11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열린 오프닝벨 행사에서 세레머니를 펼치고 있다. < NYSE 화면 갈무리 >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추진하던 2021년 초,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가 했던 말이다. 한국에서 키운 사업을 발판으로 삼아 자본주의의 본류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5조 원가량의 자금을 조달한 결과를 놓고 ‘효자기업이 따로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쿠팡은 이렇게 확보한 돈을 한국에 대부분 재투자했다.
상장 이후 불과 1년 반 동안 한국 법인에 유상증자를 통해 납입한 돈만 2조6천억 원가량이다. 한국 법인은 이 가운데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만 1조8천억 원을 쏟아 부었고 여기에서 1만8천명 이상을 고용했다.
쿠팡이 지역 경제를 살린다며 잘한다고 추켜세우는 이가 많아지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실제로 쿠팡이 지역 곳곳에 물류센터를 세우면서 젊은이들이 대도시로 떠나는 현상이 잦아든다는 긍정적 통계도 이따금씩 보였다. 쿠팡 물류센터를 유치한 지방자치단체의 수장도 모두 쿠팡의 투자를 두 손을 들고 반겼다.
물론 쿠팡의 성장을 경계하는 시선들도 있었다.
언젠가 시장을 장악해 과실을 독점하려 들면 그 폐혜가 소비자들에게 온전히 전가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는 이들도 있었고, 쿠팡의 빠른 성장 뒤에 노동자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쿠팡이 최우선 가치를 고객이라고 끊임없이 강조한 나머지 내부 직원과 협력기업, 납품업체에게는 한없이 가혹한 대접을 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쿠팡은 이런 부정적 이슈에 종종 휩싸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면서도 외면했다. 쿠팡에서 오는 편익이 너무 달았기 때문이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고 깊어진다고 했다.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겪으면서 소비자들은 쿠팡의 성장 뒤에 숨겨진 그림자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아마 한국이 ‘쿠팡 공화국’이 된 뒤 처음일테다.
곳곳에서 ‘탈팡(쿠팡 탈퇴)’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한국 시장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는데 너무하다는 볼멘소리도 갈수록 커지기만 한다. 쿠팡 공화국의 소비자들은 이미 하나둘씩 짐을 싸고 네이버와 11번가, G마켓 등으로 떠나고 있다.
사람들이 제일 비난하는 지점은 국회에서 보여준 쿠팡의 태도다.
실질적 의사결정권자인 창업주 김범석 의장 대신 미국 국적의 대리인을 국회에 내보낸 모습에서부터 국민들은 난데없이 영어듣기평가를 당했다. 속시원한 답변이 없었다는 점은 소비자들의 화난 마음에 기름을 부었다.
국회의 태도나 질의가 적절했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국회가 쿠팡을 향한 반감을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국회의 태도는 부적절했다고 본다.
미국인 대표에게 윽박지르면 죄송하다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출신인 이 대표는 국회의원들이 보기에 아주 건방지게 따박따박 말대답만 했다.
재벌 총수들을 불러놓고 죄송하다는 말을 듣는 데 익숙한 국회가 이런 대우를 받으니 ‘국회 모욕죄로 고발하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몇몇 의원을 빼고는 대부분 하나마나한 얘기를 꺼내면서 굳이 핏대를 세우며 시간을 떼웠다.
물론 쿠팡이 새겨야 할 지점은 적지 않다.
소위 블랙리스트 의혹부터 노동자 사망 사고에 이르기까지 쿠팡을 향한 비난 여론이 생겨날 때마다 회사가 보여준 대응 방식은 늘 아쉬웠다.
혁신을 강조하는 기업이라면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대중의 공감을 얻는 성숙한 소통이 필요한 법이지만 쿠팡은 늘 ‘법적 정당성’만 내세웠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청문회에서 보인 태도가 쿠팡에게는 합리적일 수 있지만 소비자들이 보기에는 ‘한국 시장 경시’로 비친 것 역시 그동안 쌓여온 불통의 이미지가 투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쿠팡을 향한 여러 의혹에 대한 전방위적 국정조사가 추진되는 점은 어쩌면 쿠팡을 압박하는 국회의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자초한 일로 보는게 합당하다는 생각도 들 정도다.
태도 변화가 없다면 앞으로 어떤 위기가 더 닥칠지 모른다는 점에서 다가올 국정조사는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대응의 품격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얘기다.
▲ 쿠팡은 미국에서 조달한 자금을 한국에 투자한 회사이기도 하다. 상장 후 1년 반 동안 한국에 가져온 돈만 2조6천억 원인데 이 가운데 1조8천억 원을 물류 인프라 구축에 썼다. 사진은 쿠팡 대구풀필먼트센터. <쿠팡>
고속성장 속에서 다잡지 못했던 내부통제 시스템부터 시작해 조직문화와 사회적 책임 등 기업시민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뿌리부터 점검해야 한다. 억울한 점이 있다면 법을 운운하기보다는 더 논리적으로 소통해야 하고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뼈를 깎는 심정으로 도려내야 한다.
지금까지 '파괴적 혁신'으로 시장을 장악했다면 이제는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숨 쉬는 '포용적 혁신'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플랫폼으로 떠난 소비자들이 두 번 다시 쿠팡을 보지 않을 수도 있다. 김범석 의장이 한국에서 직접 의원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지양해야 할 지점도 있다. 쿠팡을 향한 비난이 곧 서비스를 고사시키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다.
쿠팡이 한국 유통업계에 몰고 온 바람은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것이 많았다. 산동네 촌구석까지 하루 만에 물건을 배송하는 것은 그 어떤 기업도 해내지 못했던 일이다. 진정한 물류복지의 선봉에 쿠팡이 서 있었다는 사실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소비자 삶의 질도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밤늦게 아이 준비물이 생각나 쩔쩔맬 때 쿠팡 덕분에 무사히 등교시켰다는 부모들의 얘기는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쿠팡이라는 거대한 플랫폼은 수많은 사람의 생계와도 직결돼 있다.
입점한 수십만 명의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땀흘리는 수만 명의 노동자까지.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놓고 쿠팡의 서비스를 후퇴시키는 쪽으로 압박한다면 단순히 소비자들의 편리함만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먹고사는 문제까지 건드는 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하면 쿠팡이 맘에 안 든다고 그들의 핵심 서비스인 빠른배송, 새벽배송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번지는 것은 막자는 얘기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쿠팡을 어떻게 한국 유통의 자산으로 키울지 고민해야 한다. 철퇴를 내려야 할 곳에는 단호하게 철퇴를 내리되 그 끝이 서비스의 후퇴나 파멸이 아닌 개선으로 향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유통의 미래는 혁신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신뢰를 잃지 않는 지점에서 완성된다. 남희헌 유통&4차산업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