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어진 안국약품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번 인사는 이사회 결의나 지배구조 변경을 수반하지 않았고 법적으로도 특별한 제약은 없다. 

하지만 사법 리스크를 온전히 털어내지 못한 오너가 상장사의 상징적 최고위 직함에 오르는 장면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편치 않다.
 
[기자의눈] 한국약품 오너 어진 사법리스크에도 회장 올라, 책임경영보다 상속세가 먼저 읽혀

어진 안국약품 대표이사 부회장(사진)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기업에서 오너의 회장 승진은 통상 경영권 승계의 마침표이자 책임경영을 공식화하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어 회장 역시 창업주이자 아버지인 고(故) 어준선 명예회장 별세 이후 사실상 회사의 정점에 서 있었고 이번 승진은 그 지위를 직함으로 명문화한 성격이 짙다. 문제는 그 시점과 맥락이다.

어 회장은 과거 불법 임상시험과 관련해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전력이 있고, 현재도 불법리베이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법적으로 회장 직함에 제한은 없지만 합법이 곧 경영적 정당성이나 시장의 신뢰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제약산업은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분야로, 윤리성과 규제 준수가 핵심 경쟁력이다. 불법리베이트나 승인되지 않은 임상시험은 단순한 경영 판단의 오류를 넘어 제약사의 신뢰 기반을 흔드는 사안이다. 이런 전력을 안은 오너가 회사의 상징적 정점에 올랐다는 사실은 상장사의 공공성과 책임경영에 대한 기대와 괴리를 드러낸다.

이번 회장 승진이 책임경영의 출발점으로 읽히기보다 상속세 문제가 다시 거론되는 것도 일련의 인사 흐름이 짜인 시간표처럼 느껴지는 탓이다.

엄밀히 말하면 회장 직함 자체가 가업상속공제 요건과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핵심 조건은 상속인이 대표이사 등 등기임원으로 재직하며 가업에 종사하고 있는지 여부다. 어 회장은 회장 승진 이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하며 이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선이 쏠리는 대목은 인사의 속도다. 어 회장은 불법 임상시험 사건으로 실형을 살고 출소 직후 대표이사로 경영 전면에 복귀했다. 대표이사 재직 여부가 가업상속공제 사후관리 요건의 핵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처럼 빠른 복귀 시점은 상속세 문제와 맞물려 해석될 수밖에 없다.

출소 이후 1년 만에 회장으로 승진한 이 숨 가쁜 시간표를 놓고, 과연 충분한 검증과 성찰의 시간을 거친 실질적인 책임경영을 기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기자의눈] 한국약품 오너 어진 사법리스크에도 회장 올라, 책임경영보다 상속세가 먼저 읽혀

▲ 안국약품(사진)이 오너 2세 경영에 대한 기대보다는 오너 리스크가 이어지고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질문은 다시 제도로 향한다. 가업상속공제는 중소·중견기업의 지속성과 고용 안정을 돕기 위해 도입됐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건실한 기업이 흔들리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보다 오너일가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속세 부담을 관리하는 기능이 더 부각되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경영 성과나 책임의 무게와 무관하게 절세를 위한 재직 유지가 제도 충족의 핵심으로 인식될 경우 가업상속공제는 기업을 살리는 장치가 아니라 오너 일가의 관리 수단으로 퇴색될 수 있다.

안국약품의 이번 회장 승진 인사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 선택이다. 그러나 합법이 곧 정당성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인사가 ‘시간표’처럼 읽히는 구조 자체가 바로 이 제도의 맹점이다.

가업상속공제가 진정 기업의 건강한 생존과 성장을 위한 제도라면 오너일가의 승계를 돕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실질적 책임경영을 견인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