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리포트 4월] 황하의 곡절, 돈의 흐름, AI의 평정](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504/20250410052741_155557.jpg)
▲ 2025년 벽두부터 돈의 흐름이 어지럽게 꺾이고 있는 중이다. 사진은 미국의 뉴욕증권거래소.<연합뉴스>
“중국은 싫지만 샤오미 주식은 좋아할 수밖에 없네요”란 개인투자자 말에 한 번 웃었고, “중국에 대한 반감 때문에 관련 상품을 거의 제안하지 않았는데……”란 프라이빗 뱅커의 말에 두 번 웃었다. 미국의 ‘매그니피슨트 7(M7)’이 지고, 중국의 ‘테리픽 10’이 뜨는 상황을 스케치하는 기사였다.
미국 증시를 견인하는 빅테크 7개 기업을 한데 묶어 M7이다. 전설의 서부 영화 ‘황야의 7인’의 제목을 본떴다. 한국에선 ‘황야의 7인’이지만, 미국에선 ‘매그니피슨트 7(The Magnificent Seven)’이었다.
거친 서부를 질주하던 M7의 주역은 율 브린너, 스티브 맥퀸, 찰스 브론슨이었고, 첨단 빅테크 M7의 주축은 엔비디아, 테슬라, 알파벳이다. 주가 상승률이 엄청나다는(terrific, 테리픽) 의미로 중화권의 어느 언론이 급조했을 ‘테리픽 10’은 샤오미, 알리바바, 비야디, 텐센트가 이끈다.
올해도 돈의 흐름은 황하의 곡절(曲折)을 방불케 한다. 미국에서 중국으로의 방향 전환은 기습적이었다. 연초까지만 해도 끝없이 타오를 것 같던 뉴욕 증시에 뒤늦게 합류한 이들은 새벽에 시세 들여다보기 겁난다.
뉴욕이 폭락하는 사이, 한동안 가라앉았던 유럽 증시가 들썩이고, 중국 쪽 증시는 계속 ‘테리픽’할 분위기는 아니지만 간만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기세다. 경제 지면에서 꽤나 오래 보이지 않던 브라질 증시 얘기도 얼마 전 확인했다.
한국 증시는 피해 가지 못할 충격들로 인해 여전히 오락가락하지만 그래도 오랜 침체를 벗어던지려 애쓴다. 지난해 가을 이후 추세적 하강을 의심하게 했던 삼성전자 주가가 메모리 반도체 수요에 기대 기사회생했다. “그래도 역시 삼전이었나?” 조심스러운 진단들이 들린다.
중국 서쪽 내륙에서 발원한 황하는 바다에 도착할 때까지 아홉 번 방향을 꺾는다. 돈의 흐름을 얘기하면서 ‘황하의 곡절’을 얘기한 건 그 때문이다. 연말부터 지금까지 뉴욕과 유럽과 중국과 남미와 아시아를 종횡무진 또는 우왕좌왕해 온 돈의 흐름은 올해 또 몇 번이나 방향을 틀까.
지구 전역의 투자자들과 분석가들이 변곡(變曲)의 지점과 변곡 전후 주요 포인트의 미분 수치에 촉각을 세운다. 유난한 그 흐름은 아홉 번 꺾이는 황하보다 두 배, 세 배는 복잡하게 방향을 틀며 수많은 예측과 분석을 교란할 것이다.
최근 몇 달, 돈 흐름의 곡절이 다른 해에 비해 격정적인 이유는 명확하다. AI(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이 빅테크의 행보를 드라마틱하게 만들었다.
중국에 초점을 맞춘 건지 아닌지 헷갈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확전은 무분별하고 전방위적이어서 그의 광기가 연기인지 본성인지도 헷갈리게 한다.
미국이 신(新) 고립주의를 가속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결이 파행으로 가면서 유럽은 2차 대전 후 거의 처음으로 군비 증강에 착수하는 분위기다. 큼직한 정치·경제 이슈가 부딪치면서 최근 돈의 흐름은 확실히 과거엔 보지 못한 폭과 강도의 격류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굵직한 사건들의 충돌이 갑작스럽고 충격적이긴 해도, 고금에 유례가 없을 정도는 아니다. 2025년이 아니어도 세계사는 늘 충격과 파격에 기대고 부딪치면서 흘러왔다.
세계사의 흐름에 밀착한 채 이리저리 물길을 트는 돈의 향배가 올해라고 유별난 고차원 방정식 속에 숨었을 것 같지도 않다. 돈의 흐름을 예측한다면서 뒷북 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일반 투자자들이나 전문적 분석가들이나 늘 엇비슷했다.
뒷북과 혼선의 이유가 하나 더 있긴 하다. 매그니피슨트 7에서 테리픽 10으로, 뭉칫돈의 흐름이 바뀌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웃었던 것도 사실 그래서다.
안 그래도 풀기 어려운 고차원의 방정식을 앞에 두고 “중국은 싫지만……”, “중국에 대한 반감 때문에……”라 말하는 건 절반은 말뿐이겠지만, 그래도 방정식 풀이에 필요한 냉정을 잃었다는 방증이다.
그런 혼돈의 시절에 다시 AI를 생각한다. 지난해부터 돈의 난류(亂流)를 촉발한 AI는 그 난류를 분석할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우리 시대의 AI는 생성형 단계에 진입한 후 적어도 ‘인식’에 있어서라면 메시아급의 위치에 섰다. 이런 메시아급 인식 도구를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활용하지 않을 리 없다.
‘로보어드바이저 투자’란 건 그래서 나왔다. 주식·채권 주문의 전 과정에서 인간의 개입을 아예 배제하는 투자 방법이다. 탐색과 의사결정의 전 과정이 AI에게 완전히 위임된다. 그런데 얼마 전 ‘사람이 사라진’ 이 기막힌 투자의 위력을 입증한 수치를 보며 놀랐다.
4월 초 기준으로, 최근 1년의 코스피 지수는 10%쯤 하락했는데, 같은 기간 AI 알고리즘에 전면적으로 결정을 맡긴 한 로보어드바이저 투자의 수익률이 35%를 넘었다는 것이다. 고대역폭 메모리로 중무장한 우리 시대의 AI는 어떤 난관도 이겨낸다.
AI는 어떤 문제를 만나든, 무한에 가까운 데이터를 무한에 가까운 성실성으로 학습해 가장 그럴듯한 해답을 낸다. 명철하다기보다 그냥 잡생각 없이 예습·복습의 무한 루프에 자신을 담그고 몰아(沒我)의 지경에 빠진다고 보는 게 낫겠다.
그러다 보니 관세 카드 하나 들고 좌충우돌하는 트럼프에 대한 분노도, 첨단 반도체로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자신(AI)에 대한 나르시시즘도, 전쟁으로 경제의 활로를 열어보려는 푸틴에 대한 증오도, 어느 강남 투자자의 샤오미에 대한 혐오도, 그에게 조언을 주는 컨설턴트의 중국에 대한 반감 같은 것도 모른다. 그냥 시키는 대로 열심히 탐색하고 분석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돈의 흐름을 좇는다. 돈을 중심에 두고 정치, 경제, 문화가 벌이는 한바탕 난장(亂場)이 요즘 우리가 사는 사회다.
그게 자본주의 또는 금융자본주의의 불가피한 진실이라면 돈의 흐름에서도,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에서도 깔끔한 수학 외에는 당분간 사라져 주면 좋긴 하겠다.
그게 안 되니 AI 아닌 사람이겠지만, 요즘처럼 혼란한 시절엔 AI의 평정심을 바라게도 된다. 시도 때도 없이 급커브를 시연하는 황하의 격류를 한 번쯤은 투명하게 바라보고 싶다는 몽상에 빠지기도 한다. 이지형 금융증권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