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가격 상승세가 더 길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장기공급계약(LTA) 조건을 더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제미나이 나노 바나나 프로>
LTA는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한 이익을 보장하지만, 메모리 가격이 계속 오르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메모리 기업의 '이익 상단'을 제한하는 '족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LTA에 최대 선급금 30%, 최저 공급가 보장 등을 도입하는 등 계약 조건을 공급사 측에 유리하게 바꿔나가고 있다.
27일 반도체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유례없는 메모리 공급 부족 사태에 글로벌 빅테크의 LTA 요청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LTA 체결에 다소 소극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메모리 제조사는 칩 공급 부족이 2027~2028년까지 지속될 경우 LTA로 가격 상승 대비 이익폭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며 "메모리 기업의 하반기 이익 성장은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대신 범용 메모리에 더 의존할 것으로 예상되며, 새로운 LTA 기반의 장기 메모리 계약은 앞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LTA는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5년까지 장기적으로 물량과 가격 조건(고정거래가격)을 약정하는 계약 형태다.
최근 AI 반도체 열풍으로 인해 메모리 수급이 어려워지자, 글로벌 빅테크를 중심으로 LTA를 통해 메모리 물량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났다.
LTA는 장기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나쁘지 않은 계약이다. LTA를 체결하면 향후 경기침체로 반도체 수요가 위축되더라도, 고정적 판매처를 확보함으로써 안정적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우현 SK하이닉스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지난 23일 2026년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LTA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경우 투자 효율성이 개선될 것"이라며 "과거 LTA와는 다른 다양한 방식과 구조적 대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메모리 제조사는 현재 LTA 체결이 급하지 않은 상황이다.
메모리 가격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고객사들이 매분기 더 높은 메모리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맺은 LTA는 오히려 메모리 제조사의 이익 성장에 한계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반도체 장기공급계약(LTA)에 선급금 30%·최저가격 보장 등의 조건을 추가하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서버용 메모리반도체 홍보용 이미지. <삼성전자>
2021년 구글·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를 확장하며 메모리 물량 확보를 위해 앞다투어 LTA를 맺었다. 하지만 2022년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가능성이 대두되자, 실질적 구속력이 약했던 LTA를 파기함으로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남은 재고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이같은 과거 경험이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LTA를 HBM처럼 구속력 있는 조건으로 바꾸고 있다.
과거 LTA는 선급금이 거의 없거나 5% 미만이었다면, 최근에는 선급금을 최대 30%로 확대하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고객사가 이후 약속한 물량을 가져가지 않으면 선급금을 위약금으로 가져가는 방식으로 계약을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또 계약 기간 메모리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최저 공급가격을 보장해주는 형태의 조건까지 계약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민희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에도 장기 계약은 있었으나 공급 과잉으로 전환돼 수요자 중심 시장이 되면 가격 변동폭은 변함없이 컸다"며 "이번 LTA는 마치 HBM처럼 물량을 장기 계약하고 위반 시 패널티 규정을 설정하거나, 가격 밴드를 설정해 일정한 범위 이하로는 가격을 내릴 수 없게 장기 계약하는 방안들이 채택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공급 가격은 확정짓지 않고, 공급 물량만 LTA로 확정하는 방향으로 계약 협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LTA를 통해 고객사에 메모리 공급 물량만 보장해줄 뿐, 향후 시황에 맞춰 고정거래가격을 더 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크리에이티브스트래티지스의 최고경영자(CEO) 벤 바자린은 "메모리를 구매하는 여러 업체들에 따르면 LTA는 아직까지 물량에만 해당되고, 가격은 여전히 분기별로 협상하고 있다"며 "이는 메모리 업계 사람들이 가격이 계속 올라갈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