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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마음] 봄은 원래 그런 계절, 조금 슬퍼도 괜찮아

반유화 yoowha.bhan@gmail.com 2024-03-04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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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마음] 봄은 원래 그런 계절, 조금 슬퍼도 괜찮아
▲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인 봄은 그러나 우울증으로 진료실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계절이자,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계절이다. < Unsplash >
[비즈니스포스트] 3월이다. 봄이 왔다. 물론 4월 5일 식목일에 내복을 넣고 10월 3일 개천절에 내복을 꺼내면 된다는 ‘꿀팁’이 존재할 정도로 3월의 날씨는 꽤나 쌀쌀하지만, 그래도 3월이 겨울일 수는 없을 것이다. 

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피어나는 봄꽃들, 길을 걷는 이들의 화사한 옷차림, 설레는 표정의 신입생들... 기관지를 괴롭히는 미세먼지 정도를 빼면 대체로 밝고 활기찬 이미지가 연상되기 마련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인 봄은 그러나 우울증으로 진료실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계절이자,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계절이다. 

봄철의 높은 자살률은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3월에서 5월까지의 자살률은 1년 중 가장 높으며, 이를 일컫는 스프링 피크(spring peak)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3년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7년에서 2021년까지 5년 중 2020년을 제외하고는 3월과 5월에 가장 자살률이 높았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결정적으로 증명된 이론은 없으나, 연구를 거친 몇 가지 가설은 존재한다.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일조량의 급격한 변화를 꼽는다.

원래 적은 일조량은 정신건강에 해롭다. 그래서 햇볕을 충분히 쬐기 어려운 겨울은 무기력해지기 쉬운 계절이지만, 충동성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러다 봄이 되어 갑작스럽게 일조량이 증가하면 호르몬 불균형이 생기면서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고 충동성이 증가하여 스스로를 해치는 행동을 더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봄은 낯선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계절이다. 입학을 하고, 학년과 반이 바뀌고, 입사를 하고, 승진이나 부서이동을 한다.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에 둘러싸이면서 스트레스를 받기 쉽다.

동전의 한쪽 면에 설렘이 있다면 반대쪽 면에는 두려움이 있다. 변화에 대한 기대감은 종종 ‘새로운 친구를 잘 사귈 수 있을까?’, ‘바뀐 직책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같은 걱정에 묻히곤 한다. 
 
마지막으로, 봄은 상대적 박탈감의 계절이다. 나는 그대로인데 세상은 밝고 시끌벅적해진 나머지, 상대적으로 초라한 느낌을 받게 만든다. 겨울에는 추위와 어두움을 핑계로 이불 밖은 위험하다며 마음껏 웅크리고 지내는 스스로에게 비교적 관대해질 수 있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다 다들 그렇게 지낸다.

그런데 봄이 오니 이제는 핑계가 없다. 아직 몸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나는 밝고 활기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렇게 지내지 못하면 뒤처지는 것만 같다. SNS에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들이 적어놓은 다짐의 글과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인증샷이 넘친다. 그래서 평소에 우울증이 있던 사람들의 증상이 더 악화되기도 쉽다. 

이처럼 가장 밝아 보이지만 사실 가장 슬픈 계절인 봄을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면 이 시기를 수월하게 지날 수 있을까? 

‘봄은 원래 슬픈 계절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봄에 보통 ‘다들 밝은데 나만 이상하게 썩 즐겁지가 않고 힘드네’ 라고 생각하곤 한다. 봄의 이미지가 주는 관성으로 인해 마음과는 달리 활기 있는 것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그런 서로를 보며 자기 자신만 예외적으로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상황이 더 나빠지기 쉽다.

그렇기에 이 글을 통해 알게 된 봄의 실체를 떠올리면서 나는 그냥 나의 속도대로 하루하루를 살면 된다고, 지나친 호들갑에 똑같이 주파수를 맞추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겨울보다는 활동량을 증가시키되 서서히 늘리면서 의식주의 규칙성을 잘 유지하는 것 역시, 진부하지만 내복을 언제 넣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꿀팁’이다. 생체 리듬은 예측 가능할수록 제일 좋은 상태에 머물 수 있다.   
 
찬란한 슬픔의 계절이다. 슬퍼도 이상하지 않으며 좀 슬퍼도 된다. 다만 부디 적당히만 슬플 수 있도록 스스로를 잘 돌보기를!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를 수료했다. 광화문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이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의 상담실', '출근길 심리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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