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그룹이 2차전지 소재 등 미래사업에 무게를 두고 있는 가운데 권영수 전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이 차기 회장 유력 후보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역대 포스코그룹 회장은 김만제 4대 회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부 인사가 맡아왔다.
하지만 이번 포스코홀딩스 차기 회장 선출 절차는 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 전원과 유력 내부 후보들이 '호화 이사회 논란'과 관련해 경찰 수사 선상에 오른 사상 초유의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외부 출신이 회장에 발탁될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권영수 전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
5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홀딩스 차기 회장 후보 파이널리스트 6인에 이름을 올린 권영수 전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 우유철 전 현대제철 부회장 등 외부 인사 3명 가운데에선 권 전 부회장이 가장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포스코그룹은 2022년 지주사 전환을 계기로 2차전지 소재, 수소, 인공지능(AI) 등 신사업을 키워 철강기업에서 '친환경소재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포스코그룹 사업의 무게 중심이 철강에서 2차전지 소재 등 미래사업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만큼 세계 2차전지 사업 경험이 있는 권 부회장에 시선 쏠린다.
권 전 부회장은 44년 동안 LG그룹에서 전자, 디스플레이, 화학, 통신, 배터리 등 주력 사업을 이끌어오다 작년 11월 LG에너지솔루션을 끝으로 'LG맨' 마침표를 찍었다.
권 부회장은 LG그룹에서 구광모 회장 체제를 안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전문 경영인으로 꼽힌다. 또 LG에너지솔루션 대표에 올라 북미시장 선점을 위한 기반을 닦으며 배터리 사업을 그룹의 확실한 성장동력으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 전 부회장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넘겨받기 전인 2015년 12월 부회장으로 승진해 LG유플러스 대표에 오르면서 그룹의 최고위급 전문 경영인으로 자리잡았다.
구광모 회장은 2018년 구본무 선대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로 LG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권 전 부회장을 자신과 함께 지주사 LG 각자 대표에 선임할만큼, 가장 신뢰하고 옆에서 조언해줄 수 있는 전문경영인으로 평가했다.
권 전 부회장은 LG화학 전지사업본부가 LG에너지솔루션으로 물적분할한 뒤 2021년 11월 LG에너지솔루션 2대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권 전 부회장이 수장을 맡은 뒤 북미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장하며 미시간주 단독공장 연산 20GWh(기가와트시), 오하이오주 GM과 합작공장 연산 40GWh 등 연간 60GWh 생산체제를 구축했다.
권 전 부회장이 추진했던 공격적 북미 증설효과는 작년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제도에 따라 6700여억 원의 세제혜택으로 돌아왔다.
권 부회장은 1957년 출생으로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에서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금성전자(현 LG전자) 기획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해외투자실 부장, 미주 법인 부장, M&A추진팀장과 금융담당을 거쳤다.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유플러스 등 그룹 내 주요 계열사 경영자를 두루 거쳤다
다만 중후장대 기업인 포스코그룹의 수장으로서 철강업 경력이 없다는 점은 권 전 부회장의 약점으로 지적된다.
1990년대 외부 인사로서는 처음으로 포스코그룹(당시 포항종합제철) 회장직을 맡아 회사를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김만제 전 회장의 뒤를 권 전 부회장이 이을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86년 경제부총리에 취임해 제5공화국 경제정책을 이끌었던 김 전 회장은 포스코가 세계로 뻗어나갈 채비를 하던 1995년 3월 포스코 회장에 취임했다. 사상 첫 외부출신 회장의 등장에 포스코 내부에선 우려가 일었다. 더욱이 김 전 회장은 1992~1993년 1년 남짓 삼성생명 회장으로 재직한 것을 제외하면 철강 기업에서 쌓은 경력이 전무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개혁을 통해 회사를 빠르게 장악하며 자신을 향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김 전 회장은 취임 직전 정명식 전임 회장과 조말수 사장이 경영권 갈등을 빚으면서 갈라섰던 인사들을 두루 중용하고, 명예회장과 부회장 직제를 폐지했다. 정명식 포스코 3대 회장은 권한을 조말수 사장에게 대부분 이양하고, 대외업무에 주력했다. 하지만 취임 1년이 지나 조 사장 독주 체제가 구축되자 조 사장의 측근인 장주웅 상무를 해외로 전보조치 하는 등 견제에 나서면서 갈등이 일었다.
김 전 회장은 또 중장기 발전 계획인 '포스코비전 2005'를 수립하고 기존 철강중심 사업 체제에서 벗어나 철강, 정보통신, 건설·엔지니어링을 3대 사업으로 정하고 2005년 매출 24조 원의 세계 100대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 서울 강남구 소재 포스코센터.
이를 위해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은 최대한 정리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1994년 43개에 달했던 출자회사를 1995년 29개, 1996년 15개로 크게 줄였다.
1996년 10월에는 국내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뉴욕 및 런던 증권시장에 상장시켰다.
포스코 후추위는 지난달 31일 "글로벌 차원의 탄소제로 시대 진입은 철강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사활적 사안이 됐고, 친환경 미래소재 시대의 도래는 새로운 사업 기회인 동시에 엄청난 도전과 경쟁을 극복해 나갈 새로운 전략, 투자와 기술적 준비를 요구하고 있다"며 "전문성과 리더십 역량이 특히 우수한 분들을 '파이널리스트'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심층 대면 면접을 통해 미래의 도전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과감하게 실행할 포스코 그룹 수장에 가장 적합한 한 명을 선정해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후추위가 이런 원칙을 공개한 가운데 대통령실은 소유분산기업의 현직에 있는 인사들을 소위 '카르텔'이라고 분류하며, 현직 인사를 차기 CEO로 앉히는 데 상당한 거부감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외부 출신인 권 전 부회장이 포스코 내부의 복잡한 인맥과 학맥 등에서 벗어나 김 전 회장처럼 내부 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더욱이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내부 인사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후추위가 2차전지 소재 등에서 풍부한 경험을 가진 외부 인사를 최종 후보로 결정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후추위는 6명의 파이널리스트 후보자를 대상으로 오는 7~8일 심층 면접을 실시한 뒤 8일 오후 후추위와 임시이사회 결의를 통해 최종 1인 후보를 확정해 공개한다. 회장 후보 선임안은 오는 3월21일 열리는 주주총회에 상정돼 결정된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