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여권이 정유사와 주유소 사이 거래에 있어 사후정산제와 전속거래제 축소에 나서면서 국내 석유 유통 구조 전반에 변화가 예상된다. 

이는 국제유가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소매 단계 가격 형성 방식을 보다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취지로, 이르면 다음 주 자율협약 형태의 합의안이 발표될 전망이다.
 
당정 정유사-주유소 '사후정산제·전속거래제' 축소 추진, 정유사는 '공급 안정성' 고민 

▲ 더불어민주당 '중동 상황 경제 대응 특별위원회'가 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2차회의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여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당정과 정유·주유 업계는 정유사와 주유소 사이 거래에 있어 사후정산제와 전속거래제 축소에 뜻을 모은 가운데 막바지 세부 조율을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중동 상황 경제 대응 특별위원회’ 간사인 안도걸 의원은 6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회 뒤 취재진과 만나 사후정산제를 두고 “정산 주기를 1주 이내로 단축하는 데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아울러 특정 정유사 제품을 100% 구매해야 하는 현행 전속거래제와 관련해서도 구매 비중을 60% 까지 낮추기로 정유사와 주유소 간 합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안 의원은 “두 가지 내용에 대해 4월 둘째 주까지 합의안이 발표될 것”이라며 “자율협약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사후정산제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석유를 먼저 공급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 국제 가격 등을 반영해 정산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통상 한 달 단위로 정산되고 있다. 전속거래제는 주유소가 특정 정유사와 계약을 맺고 해당 정유사 제품만 공급받아 판매하는 것을 일컫는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두 제도가 가격 형성 과정의 불투명성과 경쟁 제한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강일 민주당 의원은 1일 국회에서 열린 사회적 대화기구 회의에서 “중동 전쟁으로 주유소는 그야말로 고사의 위기에 처해 있다”며 “불투명한 사후정산과 전량구매제라는 이중 족쇄를 채워두고 일방적으로 주유소에 고통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종민 무소속 의원은 사후정산제의 문제를 개선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김 의원이 3월16일 발의한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석유 공급가격을 사전에 고지하고 그 고지 가격대로 실거래·정산하도록 의무화하고, 석유 판매가격 최고액·최저액 설정 기준을 구체화해 거래가격의 투명성을 높이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실제로 사후정산제는 주유소가 실제 매입 단가를 사전에 확정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에서 문제로 지목된다. 정유사가 한 달 뒤 정산하는 공급가격을 미리 알 수 없는 만큼, 주유소 입장에서는 가격 인하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전속거래제 역시 가격 경쟁을 제한하는 구조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정 정유사 제품만 취급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주유소가 다른 정유사의 가격 조건을 비교해 구매하기 어렵고, 이는 소매 단계에서 경쟁 압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당정 정유사-주유소 '사후정산제·전속거래제' 축소 추진, 정유사는 '공급 안정성' 고민 

▲ 이란 전쟁으로 국내 주유소 기름값이 연일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가격이 리터(L)당 2천원 선을 넘어서기도 했다. 사진은 7일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이번 합의안은 이러한 구조를 완화해 주유소의 선택권을 넓히고 가격 경쟁을 유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란 전쟁의 여파로 변화한 유통 구조도 제도 개편 논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존에는 정유사-대리점-주유소로 이어지는 3단 공급망이 일정 부분 작동했지만, 최근에는 재고 부족 등으로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정유사가 주유소에 직접 공급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에는 대리점이 재고를 활용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주유소에 공급하는 기능도 있었지만, 현재는 이 같은 완충 역할이 약화돼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해당 제도들이 단순한 불공정 거래 관행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입장도 내놓고 있다.

사후정산제는 정유사의 원유 수입 계약 시점부터 실제 제품 납품까지 통상 4~8주가 소요되는 구조에서 국제유가와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완화하는 구실을 한다는 설명한다. 이 기간 동안 가격이 크게 변동할 수 있기 때문에 사후정산 방식이 일종의 완충 장치로 기능해 왔다는 것이다. 

아울러 적용 가격은 국제 지표 등 외부 기준에 연동돼 산정되는 만큼 정유사의 임의 조정이 어렵다는 점도 강조된다. 

전속거래제 역시 주유소의 선택에 기반한 계약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주유소는 정유사로부터 각종 혜택을 제공받는 대신 일정한 거래 조건을 수용하는 구조로, 이를 통해 정유사는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고 공급 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다.

법적 판단에서도 이러한 구조가 불공정 거래 행위가 아니라고 인정된 바 있다. 대법원은 2013년 S-오일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상고심 판결에서 사후정산제가 불공정 거래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