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 주도의 석유화학업계 설비 통폐합 바람에서 한 발 비켜간 GS칼텍스가 단단해진 리더십을 기반으로 내년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일궈낼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린다.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는 올해 부회장에 오르며 입지가 강해졌는데 탄탄한 정유업 기반에 비교적 최신화된 석유화학 설비를 발판으로 신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GS칼텍스 석유화학 구조조정 무풍지대지만, 허세홍 신사업 확대 부담 커져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 부회장이 신사업 확대 부담을 안고 있다.


29일 석유화학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주요 기업들이 사업 재편초안의 정부 제출을 마무리하고 후속 조치 마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GS칼텍스는 상대적으로 여유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석화업계 구조 개편이 글로벌 공급과잉에 대응하기 위한 노후 나프타분해설비(NCC) 통폐합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GS칼텍스는 2022년 11월 준공돼 3년이 겨우 지난 최신 설비인 'MFC(Mixed Feed Cracker)'를 갖추고 있어서다.

MFC는 나프타뿐 아니라 액화석유가스나 석유정제가스 등 여러 유분을 동시에 투입할 수 있어 선택 폭이 넓고 효율이 높다는 특징을 가진다.
 
GS칼텍스가 정유업을 본업으로 삼고 있다는 점도 여유의 한 이유로 꼽힌다. 

석유화학 구조조정의 큰 틀로는 정유업과 석유화학업 사이 수직계열화가 거론된다. 구조조정 ‘1호’ 충남 대산 산단의 HD현대오일뱅크 자회사 HD현대케미칼과 롯데케미칼의 NCC 통폐합도 이같은 흐름의 일환으로 읽힌다.

GS칼텍스와 관련한 석유화학 구조조정 방안으로는 주로 파트너 LG화학의 NCC 설비 일부 폐쇄 및 GS칼텍스와 통합 운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GS칼텍스로서는 석유화학제품 생산규모가 작아 감축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정유업을 기반으로 원료 나프타를 자체 조달할 수 있어 LG화학보다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 부회장으로서는 국내에 불어닥친 석유화학 구조조정 직격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허 부회장은 긴장의 끈을 마냥 늦추기는 어려운 것으로도 여겨진다.

GS칼텍스 실적이 그동안 정유업종 특성상 유가 하락에 따른 재고평가손실 등 외부 변수에 크게 출렁이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GS칼텍스는 MFC를 토대로 석유화학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3분기 기준 매출의 78.1%는 정유업에서 나왔다.

GS칼텍스는 올해 상반기 연결 영업손실 1414억 원을 내며 지난해 상반기 대비 적자로 돌아섰다. 다만 3분기에는 영업이익 3720억 원을 내며 3분기 누적 기준으로도 흑자로 전환했다.

허세홍 부회장이 실적 안정을 위해 새 사업 기회를 서둘러 찾아야 할 필요성이 커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GS그룹에서도 최근 허세홍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연말 인사에서 허세홍 GS칼텍스 사장과 허용수 GS에너지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며 ‘에너지 산업 전반의 구조개편을 앞두고 적극적 사업기회 창출과 위기돌파 책임을 부여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GS칼텍스가 GS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도 매우 높다. GS그룹 지주사 ㈜GS는 완전자회사 GS에너지를 통해 지분율 50%로 GS칼텍스(미국 셰브론 나머지 50%)를 운영하고 있다.

GS칼텍스는 3분기 누적 연결 매출 32조8764억 원을 거뒀다. 이는 ㈜GS 연결 매출 18조6968억 원을 훌쩍 웃돈다. ㈜GS에 흘러들어오는 현금도 그 결과 GS칼텍스의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GS에너지의 ㈜GS 중간배당 총액은 올해 205억 원으로 2023년 도입 이후 3년 연속 감소했고 결산배당도 같은 흐름을 보였다. GS에너지 실적 대부분을 차지하는 GS칼텍스가 2022년부터 실적이 줄어든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GS칼텍스는 2022년 MFC 준공 뒤 대규모 설비투자 계획 부재로 주요 정유사 가운데 재무적으로 가장 여유롭다. 허세홍 부회장이 신사업 확장에 전략적 선택을 고려할 여유를 확보한 셈이다.

GS칼텍스의 연결 부채비율은 9월말 기준 66.2%로 최근 5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4대 정유사 가운데서는 유일한 두자릿수대다. 신용등급도 AA+로 수 년째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GS칼텍스는 보수적 재무정책과 우수한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창출력을 토대로 차입부담이 완화되고 있다”며 “MFC 투자 이후 대규모 투자 계획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잉여현금흐름으로 우수한 재무안정성을 유지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GS칼텍스 석유화학 구조조정 무풍지대지만, 허세홍 신사업 확대 부담 커져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 당시 사장(앞줄 왼쪽 네 번째)이 11월 인도네시아 발릭파판에서 열린 팜유 정제시설 준공식에서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GS칼텍스 > 

허 부회장이 GS칼텍스의 새 먹거리로 눈여겨보는 분야로는 지속가능항공유(SAF)와 바이오 선박유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이 꼽힌다.

지난 11월에는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합작 투자한 인도네시아 팜유 정제시설을 준공하며 친환경 에너지 사업 확대 기반을 마련했다.

허 부회장은 준공식에서 “이번 팜유 정제시설 준공은 GS칼텍스가 추진해온 ‘그린 전환’ 전략의 가시적 성과”라며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는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또한 데이터센터용 직접냉각유체 출시 등으로 인공지능(AI) 산업 발달에 따라 급증하는 데이터센터 수요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AI는 허태수 GS그룹 회장이 그룹 차원에서 대전환을 주문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허세홍 부회장은 허태수 회장이 2026년 새해 화두로 '본업 경쟁력 강화'를 제시한 만큼 신중하게 신사업 투자를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허태수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저유가 기조와 수요 둔화 가능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에너지와 화학 산업을 둘러싼 구조적 변화 역시 빠르게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존 사업 경쟁력을 지켜내지 못하면 어떤 미래도 담보할 수 없는 만큼 주도적으로 변화에 대응하고 수익성을 유지하고 위험에 대비한 치밀한 실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