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업계 장수 최고경영자(CEO)로 경쟁 관계인 정홍근 티웨이항공 대표이사(오른쪽)와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이사(왼쪽)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항공업계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김 대표의 내실 위주 경영과 정 대표의 공격적 사업확대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 이후 재편될 저비용항공사(LCC) 구도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26일 항공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 양대 대형항공사(FSC) 기업결합에 관한 세계 경쟁당국의 승인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저비용항공사(LCC)들도 산업구도 개편에 대비해 생존·성장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본격화하면 대한항공 아래 저비용항공사 진에어를 중심으로 아시아나항공 아래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이 통합돼 기단과 외형에서 압도적 규모의 통합 저비용항공사가 탄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 경쟁당국(EC)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과 심사와 관련해 여객 부문의 경쟁제한 요소는 해결된 것으로 보고 있는 만큼 화물 부문 심사만 원활히 마무리되면 곧바로 최종 승인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항공업계에서는 EC의 승인이 이뤄지면 미국 경쟁당국인 법무부(DOJ) 심사도 곧 종결돼 두 항공사의 기업결합에 필요한 법적 제약이 모두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교통부 항공기술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등록된 항공기 수는 진에어 30대, 에어부산 21대, 에어서울 6대다. 이들이 단순 통합되면 기단규모 57대를 보유한 대형 저비용항공사가 탄생하게 된다. 규모 측면에서는 제주항공(41대)과 티웨이항공(38대)을 크게 앞선다.
저비용항공사의 대결구도가 1강(통합 진에어) 2중(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체제로 바뀌는 셈이다.
정홍근 티웨이항공 대표와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는 각각 몸담고 있는 회사가 업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는 점에서 라이벌이라 할 수 있다. 저비용항공시장 개편이 이뤄진 뒤에도 두 사람은 2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될 공산이 크다.
정 대표와 김 대표는 각각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출신으로 친정에 있을 때부터 경쟁관계이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이종산업의 대주주 지배 아래 항공사 최고경영자로 있으면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오랜 임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정 대표는 2015년 말 티웨이 대표이사로 선임된 뒤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항공업계 최장수 최고경영자다. 김 대표는 2020년 제주항공에 영입된 뒤 4년 넘게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업은 다른 사업과 비교해 전문성이 필요하고 정부부처를 상대로 해야 하는 일도 많아 항공업계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다년간 구축해온 전문경영인을 오래 중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두 최고경영자는 회사를 이끄는 경영전략과 방향성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 티웨이항공은 8월2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인천-프랑스 파리 신규 취항 기념식을 열었다고 밝혔다. 정홍근 티웨이항공 대표이사(왼쪽에서 다섯 번째), 신동익 인천국제공항공사 허브화전략처장(오른쪽에서 여섯 번째), 김형이 티웨이항공 경영본부장(왼쪽에서 네 번째), 박인섭 티웨이항공 객실본부장(오른쪽에서 네 번째), 황영조 티웨이항공 운송담당상무(왼쪽에서 두 번째), 조병태 티웨이항공 인천공항지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티웨이항공>
올해 들어 영업실적만 보면 정 대표보다 김 대표의 경영전략이 더 나은 효과를 발휘한 것처럼 보인다.
티웨이항공은 올해 1분기 별도기준 매출 4230억 원, 영업이익 753억 원을 거두며 분기 기준 최대 매출을 올렸지만 2분기와 3분기에 내리 영업손실을 냈다. 2분기는 계절적으로 항공사들의 비성수기라 다른 항공사들도 적자를 낸 사례가 많지만 여름 휴가와 추석 연휴가 겹쳤던 3분기 성수기에 적자를 낸 곳은 주요 항공사들 가운데는 드물다.
티웨이항공은 추가 기재 도입 등에 따른 원가 부담 상승으로 수익성이 하락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유럽 노선을 비롯한 중장거리 노선을 확대하는 데 따른 각종 비용 부담이 커지며 단기적 실적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당초 프랑스 파리올림픽 기간(7월26일~8월11일) 전에 파리 노선에 취항해 성수기와 올림픽 툭수를 함께 노릴 수 있다는 기대도 했지만 파리 취항이 성수기 끝 무렵인 8월28일 시작돼 신규 노선 취항 효과를 온전히 누리지 못한 측면도 있다.
티웨이항공은 최근 잦은 운항 지연이나 결항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는데 일각에서는 유럽 노선 확장으로 기재 운영이 더 빠듯해진 탓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티웨이항공이 빠른 시일 안에 유럽 노선 확장을 추진하다보니 준비가 덜 된 측면도 있어 보인다”며 “세계적으로 항공기 공급난이 중장거리 노선을 운항할 대형 항공기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중단거리 노선에 집중하고 있는 제주항공은 3분기 별도 기준 매출 4602억 원, 영업이익 395억 원을 거두며 직전 분기(별도 영업손실 95억 원) 적자에서 바로 흑자로 돌아섰다. 올해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051억 원이다.
현재 제주항공은 올해 들어 한국-일본 노선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등 중단거리 노선에서 시장 입지를 더욱 키우고 있다. 1-10월 제주항공이 한-일 노선에서 수송한 여객수는 315만3963명으로 시장점유율 15.3%를 기록했다. 국적선사는 물론 한-일 노선을 운항하는 모든 항공사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이다.
김 대표는 중단거리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핵심 경쟁력을 강화하며 저비용항공사의 사업모델을 고수해왔는데 어느 정도는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김 대표는 중단거리 노선에 집중하며 화물사업과 반려동물 동반 서비스 등 부대수입 창출을 통해 이익 확대를 꾀하고 있다. 보수적이지만 실리 위주의 영업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이사가 1월24일 서울 강서구 제주항공 서울지사에서 열린 창립 19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제주항공만의 핵심 경쟁력을 높여 더 큰 도약을 위한 기반을 구축해달라"고 임직원들에게 주문했다. <제주항공>
항공업계 안팎에서 추산하는 티웨이항공의 유럽노선 매출은 향후 연간 약 5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티웨이항공 연결 매출(1조3488억 원)의 약 37% 규모다.
반면 제주항공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뒤 위상 악화에 대비하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신용평가는 ‘미리보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영향 및 업체별 전망’ 보고서에서 티웨이항공과 관련해 “중단거리 위주 노선에 유럽 권역을 추가함으로써 노선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 점은 사업 안정성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제주항공과 관련해서는 “통합 절차를 마무리한 통합 대한항공, 통합 진에어와 중단거리 노선 경쟁이 심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저비용항공업계 내 위상이 과거보다 약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향후 타 항공사 인수합병 여부와 이에 따른 사업경쟁력 개선 여부가 주목된다”고 바라봤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