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한국에 '가성비 투자' 조짐, 콘텐츠 생태계 워너브라더스 인수 '나비효과'에 촉각

▲ 강동한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총괄 부사장(사진)이 21일 서울 영등포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넥스트 온 넷플릭스 2026 코리아’에서 한국 콘텐츠에 변함없는 투자를 약속했다. <넷플릭스>

[비즈니스포스트] 넷플릭스가 미국 최대 미디어 기업 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WBD) 인수로 100조 원대의 재무 부담을 안으면서 한국 콘텐츠 투자 기조에도 변화가 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콘텐츠 채널 'HBO' 등 드라마와 영화의 핵심 지식재산권(IP)을 대거 확보하게 된 만큼 한국에서는 시즌제 예능 중심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투자’로 선회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제작비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산업에 활력이 떨어진 국내 드라마·영화 업계 전반에도 긴장감이 더욱 번지고 있다.

23일 콘텐츠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줄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러한 우려를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으로는 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 인수가 꼽힌다. 대형 인수에 따른 재무 부담이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가 기존 한국 콘텐츠 투자 계획의 종료 시점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넷플릭스는 앞서 2023년부터 4년 동안 한국 콘텐츠에 약 25억 달러(3조3천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12월 WBD의 영화·TV 스튜디오 부문과 HBO 맥스 스트리밍 사업을 주당 27.75달러, 총 720억 달러 규모로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인수 방식은 당초 주식과 현금을 병행하는 구조에서 전액 현금 지급으로 변경됐다.
 
넷플릭스는 WBD 인수를 전액 현금 조건으로 결정하면서 재무적 부담을 안게 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회당 제작비가 수십억 원에 이르는 드라마 비중을 기존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에는 부담이 따를 수 있다.

물론 올해 공개 예정인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라인업을 들여다보면 아직까지 큰 변화는 포착되지 않는다.

넷플릭스가 올해 선보이는 오리지널 작품은 모두 29편이다. 드라마 16편·예능 9편·영화 4편으로 구성됐다.

최근 2개년과 비교하면 제작 편수의 차이는 거의 없다. 2025년에는 드라마 15편·영화 6편·예능 9편이 공개됐고, 2024년에는 드라마 15편·영화 5편·예능 10편이 편성됐다. 전체 편수뿐 아니라 작품 구성 비중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다만 예능 부문에서는 ‘데블스 플랜3’, ‘솔로지옥5’, ‘흑백요리사3’ 등 이미 흥행이 검증된 IP의 시즌제 예능이 전면에 배치됐다. 제작비 대비 화제성이 높은 예능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고 해석될 여지도 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최근 업계 안팎에서 넷플릭스가 제작비 절감을 위해 예능 프로그램 비중을 확대할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이는 사실과 다르며 장르 다양성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일뿐”이라며 투자 기조 변화라는 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제작비 절감 기조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넷플릭스가 자초한 국내 콘텐츠 전반의 제작비 급등 현상을 더 이상 무시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제작비를 사전에 지급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흥행 여부와 관련 없이 안정적인 자금 조달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어 넷플릭스와 활발하게 협업했다. 다만 넷플릭스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인지도 높은 ‘간판 배우’를 앞세운 캐스팅 경쟁이 심화됐다.

그 결과 배우들의 출연료는 가파르게 뛰었다. 실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경우 두 주연 배우의 회당 출연료는 각 수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 16부작 기준으로 계산하면 두 배우에게 지급되는 출연료만 100억 원을 넘어선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중장기적으로 K콘텐츠 산업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해왔다는 점이다.

배우들의 몸값이 뛰면서 스튜디오드래곤과 같은 국내 주요 드라마 제작사의 제작 편수도 동시에 줄었다. 예컨대 100억 원이 있다면 예전에는 드라마 3개를 제작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1개를 만드는 것도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역시 이런 제작비 급등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에 거리를 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콘텐츠에 투자하는 것이 여전히 미국 콘텐츠 투자보다 저렴하긴 하지만 다른 글로벌 콘텐츠 선택지가 풍부한 만큼 한국 콘텐츠에 꾸준히 높은 비용을 투입해야 할 유인이 제한적일 수 있다. 제작 노하우가 축적되면 투자 전략이 ‘가성비’ 중심으로 이동할 여지도 충분하다.

넷플릭스가 결국 한국 투자 비중을 점점 줄여나가면서 국내 콘텐츠업계에는 부풀려진 제작비 구조만 남는 것 아니냐는 염려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한국에 '가성비 투자' 조짐, 콘텐츠 생태계 워너브라더스 인수 '나비효과'에 촉각

▲ 넷플릭스가 공개한 2026년 라인업에서 예능 프로그램의 비중이 확대됐다. <넷플릭스>


여기에 K콘텐츠에 대한 중요도도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업계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 인수 덕분에 HBO의 영화·드라마 콘텐츠가 대거 넷플릭스에 편입되는 만큼 한국 드라마·영화에 대한 제작 지원의 전략적 중요도는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지적재산을 대거 확보한 만큼 서구권 중심의 투자가 강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실제 넷플릭스의 지난해 지역별 매출 비중을 보면 북미가 44.3%로 가장 크고, 유럽·중동·아프리카가 32.1%로 뒤를 이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라틴아메리카와 함께 각각 11.8% 수준에 그쳤다. 

광고 사업 비중 확대 흐름 역시 이러한 관측에 힘을 보태고 있다.

넷플릭스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자체 광고 기술 도입을 통해 광고 요금제의 수익성이 개선됐다고 밝혔다. 2025년 광고 매출은 2024년보다 2.5배 이상 증가해 15억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충성 시청층이 뚜렷한 시즌제 예능이 제작비 부담이 큰 드라마보다 효율적 광고 상품이 될 수 있다. 시즌형 콘텐츠는 체류 시간이 안정적이고 인공지능(AI) 기반 타깃팅을 통해 광고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도가 높다고 평가된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이제까지 새로운 콘텐츠 창작과 제작 인력에 대해 아낌없는 지원을 이어왔다”며 “넷플릭스가 한국 창작 생태계에서 성장해온 만큼 위험은 넷플릭스가 가져가고 성과는 업계 모든 파트너와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