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스마트카, 자율주행으로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은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땅에서뿐 아니라 바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친환경 선박 기술, 자율운항 시스템 등이 조선업의 미래 경쟁력으로 떠오르면서 ‘바다 위의 테슬라’를 두고 여러 기업이 치열하게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 작년에 회사 이름을 바꾼 HD현대는 이 경쟁에서 한 발자국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기업이다. 

HD현대는 친환경 연료인 메탄올을 사용한 세계 최초의 컨테이너선을 건조했다. 현재까지 수주한 메탄올 추진선은 모두 43척에 이른다. 

자율운항 경쟁력도 상당하다. 자율운항 선박으로 세계최초 대양횡단에 성공하며 자율운항 시스템을 가장 먼저 상용화 한 기업이 바로 HD현대다.

HD현대의 혁신, 새로운 도약의 중심에는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있다.

정기선 사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자이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으로 지난해 3월 대표이사에 오른 뒤 그룹의 체질 개선을 이끌고 있다.

배만 잘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바다의 대전환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정기선 사장의 야심을 바탕으로 HD현대는 또 한번의 역사를 쓸 수 있을까?

◆ 학업에 재능 있던 정기선, HD현대글로벌서비스로 그룹에 활력을 불어넣다

정기선 사장은  현대그룹 오너일가 2세 가운데 공부를 제일 잘했다는 아버지 정몽준 이사장을 닮아 학업에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대학교를 거쳐 미국 스탠퍼드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병역도 학군단(ROTC)으로 마쳤다.

2013년 선박영업부 부장으로 입사한 정기선 사장은 2년 만에 만 32세의 나이로 상무에 오르면서 재계 최연소 임원이 됐다. 

상무가 된 정기선 사장의 경영능력 시험대는 2016년 정기선 회장이 설립을 주도한 계열사, HD현대글로벌서비스였다.

정 사장은 조선업은 소위 ‘사이클’산업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실적 침체기가 올수 있으니 이를 대비하기 위한 사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HD현대글로벌서비스 설립을 주도했다. 선박을 개조하고 유지보수하는 사업은 조선업보다 사이클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선박개조는 기존 사업과 성격이 다른데다가 이 분야는 이미 싱가포르, 유럽 회사들이 선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러 전문경영인들의 반대에도 정기선 사장은 HD현대글로벌서비스 설립을 밀고 나갔고 그 판단이 옳았다는 것은 머지않아 증명됐다.

선박 관련 국제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노후된 선박을 친환경 선박으로 전환하려는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출범 후 5년 만에 매출은 5.5배, 영업이익은 2.5배 성장하면서 그룹의 알짜 회사로 자리잡았다.

현재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스마트 선박 솔루션을 통해 운항 데이터를 수집해서 최적의 운항계획, 수리, 정비를 돕는 종합 관리 서비스를 제공중인데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HD현대글로벌서비스가 유일하다.

정기선 사장은 능력을 입증함과 동시에 그룹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도 발견한 것이다.

정기선표 HD현대의 관전 키워드 3가지, 중동과 친환경, 그리고 김동관의 한화
     
그렇다면 앞으로 정기선표 HD현대의 관전포인트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기회의 땅 중동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다.

최근 정기선 사장은 야시르 오스만 알루마이얀 아람코 회장 겸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총재를 만났는데, 두 사람의 만남 이후 HD현대는 잇따라 수주 소식을 전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에 투입될  678억 원 규모의 전력기기 공급을 따냈으며 HD현대인프라코어는 네옴시티 건설에 필요한 굴착기, 휠로더 846대를 올해 수주했다. 

정기선 사장은 사우디와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설립된 아람코와의 합작 조선소는 정 사장이 주도한 첫 해외사업으로 당시 정 사장은 TF팀을 직접 꾸리고 수 차례 사우디를 방문하면서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챙겼다. 

당시 아람코 CEO는 정 사장을 두고 “사업기회를 포착하는 예리함이 정주영 일가의 DNA답다”고 호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정기선 사장은 아람코와 선박 엔진 합작사를 설립해서 2025년 본격생산을 앞두고 있으며 수소, 암모니아 등 친환경 연료개발과 관련해서도 아람코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정기선 표 HD현대의 두번째 관전포인트는 그린오션 시장의 선점 여부다.

정기선 사장은 CES 2023에 참석해서 바다의 대전환을 통해 그린오션을 발굴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친환경 선박 건조역량을 높이고 해상 에너지 운송 밸류체인의 모든 단계를 HD현대가 이끌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자율운항 기술이다. 

정기선 사장은 지난 2017년 ‘아비커스’라는 사내 스타트업을 직접 선발해서 자율운항 전문 자회사로 키워왔다. 이 회사는 지난해 세계최초로 2단계 자율운항 솔루션을 상용화했으며 최근에는 레저보트용 자율운항시스템을 출시하면서 관련 시장에도 진출했다. 
  
세 번째 관전포인트는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과 정면 대결이다.

서로 나이도 비슷하고 두 사람의 아버지인 정몽준 이사장, 김승연 회장 사이의 친분도 깊어 정 사장과 김 부회장은 재계에서 유명한 ‘절친’ 사이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점은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고 조선업에 진출하면서 두 사람이 이번에는 라이벌 관계로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가장 치열한 대결을 펼치고 있는 분야는 친환경 선박 분야다.

이 맞대결에서 현재로서는 정기선 사장이 조금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HD현대는 친환경 연료로 각광받는 메탄올 추진선에서 경쟁사를 압도하는 수주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암모니아, 수소 연료를 적용한 선박 기술 개발에도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화오션도 6천억 원을 투자해 친환경 선박 경쟁력을 끌어올릴 계획이라는 것을 살피면 아직 HD현대가 안심할 때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양방산 분야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최근 한화오션은 해군 차기 호위함 건조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HD현대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한화그룹은 육상과 공중 분야에서 방산사업을 수행하며 다양한 경험과 기술력을 축적해왔기 때문에 해양 방산 분야에서도 HD현대보다 한화오션이 더 잠재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 맨주먹으로 성공한 정주영 DNA 받은 정기선, HD현대를 바다 위의 테슬라 만들까

HD현대중공업은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역사를 상징하는 회사다. 정주영 창업주가 맨손으로 시작해 10년 만에 세계 1등 조선 회사로 키워냈다는 전설같은 성공스토리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정기선 사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친환경 디지털 선박 시대에 또 한 번 글로벌 패권을 노리고 있다.  

여전히 조선업계의 심각한 인력난 문제, 노사협력, 조직문화 개선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아직 많다. 하지만 정 사장의 과감한 혁신 행보가 HD현대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정기선 사장의 HD현대가 ‘바다 위의 테슬라’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기획제작 : 성현모, 서지영, 강윤이 / 촬영 : 김원유, 김여진 / 진행 : 윤연아 / 출연 : 류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