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원무역의 자회사 스캇의 부진이 심화되며 향후 성래은 부회장으로 기울었던 후계구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프리미엄 자전거 브랜드 스캇은 유럽의 경기 침체와 수요 위축 여파로 좀처럼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스캇 인수가 성래은 영원무역홀딩스 부회장이 그룹의 글로벌 투자와 신사업을 총괄하던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당시 그의 역할을 감안했을 때 스캇 인수에 상당 부분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시선이 나온다.
스캇의 부진이 장기화될 경우 성래은 부회장의 투자 안목과 그룹 내 리더십 전반에 대한 평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4일 영원무역의 실적을 종합해보면 스캇의 손실을 본업인 OEM 사업에서 메우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영원무역은 업계 불황 속에서도 올해 본업인 OEM 부문에서 반등의 실마리를 잡으며 실적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2025년 1분기 OEM 사업부문은 매출 1조106억 원, 영업이익 106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17.5%, 영업이익은 31.2% 증가했다.
반면 스캇 사업부문은 글로벌 자전거 시장의 수요 위축과 재고 부담에 시달리며 실적이 뒷걸음질치고 있다. 팬데믹 기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반짝 반등을 이뤘으나 엔데믹 이후 다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 영원무역의 자회사 스캇의 부진이 심화되며 향후 후계구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사진은 성래은 한국패션산업협회장이 2024년 6월4일 서울 중구 영원무역 명동빌딩에서 열린 ‘패션IP센터’ 출범식에서 발언하는 모습. <한국패션산업협회>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1765억 원에서 587억 원으로 쪼그라들더니 2024년에는 영업손실 2123억 원을 내며 적자로 돌아섰다.
2025년 1분기에도 매출 2262억 원, 영업손실 281억 원을 내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5.3% 감소하고 손실 폭도 확대됐다.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OEM 상위 고객사 수주가 꾸준한 가운데 아크테릭스 등 신규 브랜드가 추가되며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며 “다만 스캇의 과잉재고와 수요 부진에 따른 적자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스캇 인수 과정에 성래은 부회장이 주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의 부진이 차기 그룹 경영자로서 경영능력의 재평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영원무역은 2013년 스캇 지분 20%를 취득한 데 이어 2015년 30.01%를 추가 인수하며 경영권을 확보했다. 올해는 2대주주와의 소송에서 승소한 뒤 콜옵션을 행사할 예정이며 이 경우 지분 97%를 손에 넣게 된다.
성 부회장은 2015년 스캇 추가 지분 인수 당시 그룹 내 글로벌 투자와 신사업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콜옵션 행사 시점에는 이미 영원무역그룹 지배구조의 최상위에 위치한 비상장 회사 YMSA의 최대주주(50.1%)로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올라서 있었다. 이러한 정황을 감안하면 스캇은 단순한 해외 투자처를 넘어, 성 부회장의 경영 철학이 반영된 포트폴리오로 해석될 여지도 충분하다.
스캇의 부진은 모회사인 영원무역의 실적에도 적잖은 타격을 주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문제는 재고 부담이다. 2025년 1분기 기준 영원무역의 재고자산은 1조3천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완제품 재고가 7999억 원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이 중 약 70%가 스캇에서 발생했다.
스캇의 판매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영원무역은 고강도 할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최대 40%까지 가격을 낮추며 재고 정리에 나선 것이다. 실제 2023년 7900억 원까지 치솟았던 재고는 2024년 5700억 원 수준까지 줄었다. 올해 1분기 역시 5천억 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 영원무역의 '효자 사업'으로 불리던 스캇이 최근 실적 부진이 이어지며 '애물단지'로 평가되고 있다. <스캇>
재고가 일부 줄었다고 해도 안심하기는 이르다. 재고자산은 판매를 통해 매출로 전환되기 전까지는 자금이 묶인 비유동 자산에 불과하다. 제품이 창고에 쌓여 있는 한, 그만큼의 현금은 기업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영원무역의 현금흐름도 이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2025년 1분기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990억 원으로 순유입에서 순유출로 돌아섰다.
겉으로 보기에는 실적이 나쁘지 않다. 1분기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다만 매출채권과 재고자산 등 기업 운영에 필요한 자산이 늘어나며, 장부상 수익은 났지만 실제로 회수된 돈은 줄었다.
그렇다고 성 부회장이 스캇을 당장 매각하기도 쉽지 않다. 엔데믹 이후 스캇은 긴 부진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적자 기업을 매각하려 해도 제값을 받긴 어렵다. 게다가 여전히 재고가 많이 남아 있어 인수 희망자들이 선뜻 나서기도 쉽지 않은 구조다.
이에 영원무역은 본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스캇 회복에 쏟아 붓고 있다.
지난해 3월 스캇은 HSBC 은행에서 1709억 원을 빌렸다. 석 달 뒤인 6월에는 기존 채무를 변제한 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서 1768억 원을 조달했다. 이 모든 대출에 대해 영원무역은 채무보증을 제공했다. 스캇이 갚지 못할 경우 영원무역이 대신 갚겠다는 계약이다.
같은 해 12월에도 비슷한 방식의 지원이 이어졌다. 신한은행으로부터 받은 901억 원의 대출에 또다시 보증을 서는 한편, 같은 달에는 스캇에 2419억 원을 직접 빌려줬다.
영원무역은 “유동성 확보와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한 자금”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상은 자회사의 자금난을 메우기 위한 ‘현금 수혈’에 가깝다.
스캇에 대한 지원이 본격화된 2023년부터 영원무역의 비유동 부채도 급증하고 있다. 2023년 5859억 원이던 비유동부채는 2024년 7662억 원으로 급등했고, 2025년 1분기에는 7996억 원까지 불어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스캇의 실적이 장기적으로 영원무역 전체에 부담을 준다면 최고 임원진 역시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OEM과 아웃도어 등 주력 사업이 여전히 안정적인 만큼 당장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