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공급망 전쟁' 양상을 띠며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특히 주요 산업에서 상대 국가를 고립시키려는 두 국가의 전략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지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 반도체와 배터리 제조사들은 중국의 수출 통제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한편 미국 내 첨단 기술 공급망에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확대해야 하는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5일 로이터와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중국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선제대응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최근 리튬과 갈륨을 비롯한 배터리 핵심 소재의 수출 통제를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하반기 안티모니와 게르마늄 수출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데 이어진 조치다.
이러한 희귀광물 및 희토류는 전 세계 대부분의 물량이 중국에서 채굴 또는 가공된다.
수출 제한 조치가 이뤄지면 반도체와 군사무기 등 산업에도 큰 영향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직후 중국산 수입품에 일괄적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한다는 계획을 내놓자 중국이 핵심 소재 공급망을 협상카드로 앞세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로이터는 “트럼프 정부 출범을 앞두고 세계 최대 경제대국 사이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며 “중국의 수출 통제가 니켈과 코발트 등 더 많은 소재로 확대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무기화한 자원은 전기차 및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반도체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두 산업은 미국 정부가 최근 자국 내 생산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분야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와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은 미국의 정책에 화답해 적극적으로 현지 생산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 공장에서 중국산 필수 소재를 수입해 활용하기 어려워진다면 큰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부터 미국이 다양한 지원 정책으로 한국 기업들의 생산공장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해 온 배경도 중국과 공급망 단절을 추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중국이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 시장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키우며 글로벌 시장 진출을 노리자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 생산 설비를 확충해 중국 기업의 진출을 방어한 셈이다.
반도체 역시 한국과 대만 등 중국과 가까운 국가에서 필요한 물량을 수입하는 데 의존한다면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미국 정치권에서 힘을 얻었다.
▲ 포드와 SK온 합작법인 블루오벌SK의 전기차 배터리공장 예상도(왼쪽) 및 GM과 LG에너지솔루션의 오하이오주 배터리 합작공장.
지난 수 년째 이어진 이러한 전략이 결국 중국 정부의 강력한 대응 조치로 이어지며 배터리와 반도체 소재 확보에 변수로 떠오른 셈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임기에도 강경한 대중 정책을 앞세웠던 만큼 취임 이후에는 두 국가의 갈등이 더욱 첨예해지며 공급망 전쟁도 전면전 양상을 띨 공산이 크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 정부의 배터리 및 반도체 기술 규제와 수출입 제재가 한층 더 강화되는 동시에 중국 정부도 핵심 소재의 수출 통제를 본격화할 수 있다.
결국 한국 배터리와 반도체 기업들은 두 강대국 사이 갈등에 피해를 최소화하려 힘쓰는 한편 이를 오히려 성장 계기로 삼기 위한 기회를 찾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는 모두 캐나다와 호주, 인도네시아 등 중국 이외 국가에서 현지 협력사를 확보해 리튬과 코발트, 흑연과 니켈 등 주요 배터리 소재 수급처를 다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에서 CATL을 비롯한 중국 배터리 업체의 진출을 경계하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한국 공급사들은 미중 갈등에 갈수록 큰 기회를 맞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 희귀광물 및 희토류 소재, 배터리와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 갈등 심화는 한국 기업에 기회이자 위기로 꼽힌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로 중국 공장에 투자를 확대하기 어려워지고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비롯한 일부 제품을 사실상 수출할 수 없게 됐다.
두 기업 모두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현지에 반도체 생산 설비를 구축하고 있는 만큼 중국의 소재 수출 통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중국 정부가 미국의 규제에 맞서 CXMT를 비롯한 자국 메모리반도체 기업의 기술 개발과 생산 투자를 지원하며 육성하고 있는 점도 중장기 관점에서 위협 요소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반도체 생산 설비를 적기에 가동해 미국 정부의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 노력에 기여한다면 수혜를 기대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신규 고객사를 수주하기 유리해지고 보조금과 세제혜택 등 정부 차원의 다양한 지원 정책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트럼프 정부가 배터리와 반도체 정부 보조금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미중 갈등 상황을 고려한다면 한국 기업들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결국 한국 배터리와 반도체 기업들에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 갈등은 심각한 위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 기회로 탈바꿈할 여지도 충분하다고 볼 여지가 큰 셈이다.
다만 미중 갈등이 전반적인 소비 위축과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전방산업인 전기차 및 전자제품 수요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투자 및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은 여전한 불안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이 트럼프 당선인에 맞설 새 전략은 ‘공급망 전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며 “이는 수많은 기업에 상당한 여파를 남기며 사업 전반에 차질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