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백브리핑] P2P 720억 막장 먹튀 사건,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 <루멘페이먼츠 홈페이지 갈무리>

[비즈니스포스트]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플랫폼 업체와 거래하는 판매자(입점업체)의 매출채권을 담보로 은행권이 선정산 대출을 해 준 금액이 지난 5년 누적 4조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은행이 이커머스 선정산 대출을 취급하기 시작한 지난 2019년부터 올해 7월까지 판매자에게 나간 누적 대출액은 4조4500여억 원이다. 올해 집행된 금액만 1조1635억으로 집계됐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티몬, 위메프 뿐 아니라 G마켓, 쿠팡, 무신사, 에이블리 등 10개 이커머스 업체를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러한 보도를 접한 사람들 가운데는 은행권의 이커머스 매출채권 담보대출 누적치가 4조 원을 넘었으며 최근 2년은 해마다 1조 원이 넘었다는 통계(2022년 1조178억 원, 2023년 1조5198억 원)에 놀란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더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이른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으로 불리는 P2P(Peer-to-Peer lending)업계에서는 선두업체 한 곳의 소상공인 카드매출채권 담보대출 규모만 3조9000억 원(5년 누적)에 이른다는 것이다.

최근 이 업체에서 막장급 금융사고가 터졌다. 투자자에게 돌아가야 할 원리금 720억 원이 사라진 것이다.
 
사건의 개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크로스파이낸스는 P2P업계에서 소상공인 카드매출채권 선정산 투자상품 취급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업체다.
 
고객이 소상공인 A에게서 물건을 구매하고 카드결제를 했다해보자.

A는 카드사로부터 대금을 지급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현금화할 수 있다. A는 선정산업체라는 곳에 카드매출채권을 양도한다. A뿐 아니라 수많은 소상공인들이 선정산업무를 대행하는 업체들과 거래한다. 

선정산업체가 A에게 바로 돈을 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P2P업체에 다시 매출채권을 넘기고 대출을 신청한다. P2P업체는 카드매출채권 담보 대출상품을 만들어 투자자들을 끌어모은다.

이들의 투자금은 선정산업체에 대출금으로 나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고객이 카드결제를 한 지 이틀 정도면 소상공인에게 선정산금이 지급된다.
 
P2P업체는 매일매일 이러한 투자상품을 쏟아냈고 개인과 법인들이 여기에 투자해왔다.

P2P업체는 대출금을 회수해 투자자들에게 원리금을 지급해야 한다.

투자회수기간이 길어야 일주일 밖에 안되는데다 수익률이 연기준 12~13%에 달했기 때문에 개인 뿐 아니라 법인도 고수익을 노리고 투자에 뛰어들었다.
 
투자회수 과정을 보면 카드사가 바로 P2P업체에 결제대금을 입금해주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전자결제대행업체(PG사)가 끼어있다. 다시 말해 카드사에서 PG사로 돈이 가고, PG사가 P2P업체에 결제금을 넣어주는 구조다.

이같은 자금흐름을 보면 투자자의 원리금 회수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카드사가 정상적으로 결제금을 정산해 주기만 한다면 중간 통로에 불과한 PG사를 거쳐 P2P업체가 투자자에게 원리금을 제대로 돌려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일주일 새 투자자들은 크로스파이낸스로부터 무려 720억 원에 이르는 돈을 회수하지 못했다.

이 업체가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PG사 루멘페이먼츠(이하 루멘)으로부터 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루멘은 정산금을 먹튀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에는 한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크로스파이낸스로부터 대출을 받아 소상공인에게 선정산을 해 준 많은 업체들이 사실상 루멘과 한몸인 것으로 드러났다.

선정산업체 21곳가운데 15곳의 대표자 이름이 루멘 대표자(김인환)와 같다. PG사와 선정산업체가 한몸처럼 영업을 해온 것이다.

P2P로부터 대출받는 차주는 선정산업체다.

그러나 P2P에게 대출을 상환하는 것은 선정산업체가 아니다.

카드사에서 나온 대금이 PG사를 거쳐 선정산업체로 가고 선정산업체가 P2P업체에 상환하는 흐름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P2P업체는 카드매출채권을 담보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PG사에서 바로 P2P업체로 돈이 흘러간다.

선정산업체로 결제대금이 가면 유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원천차단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루멘과 같은 PG사가 선정산업체와 절연되어 있기는 커녕, 심지어 직접 수많은 선정산업체를 거느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크로스파이낸스는 이런 사실을 알고도 루멘과 거래해오다 ‘먹튀’를 당했다.

투자자들은 루멘그룹이 2023년 부동산과 건설업에 진출한다며 자본잠식 상태의 푸른주택종합건설을 인수하는 등 사업확장 과정에서 P2P 결제대금을 유용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크로스파이낸스에 따르면 루멘측은 최근 “악성 가맹점으로 인한 자금손실을 막기 위해 추가로 대출을 받았고 돌려막는 상황이 됐다”며 “결국엔 상환을 못하게 되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크로스파이낸스는 이에 대해 “스스로 횡령을 자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사고가 난 투자상품 가운데는 티몬확정매출 대출(23억원)도 포함돼 있다.

이 상품의 경우 티몬 판매자들이 선정산업체를 통해 매출채권을 조기 현금화하는 것까지는 일반 카드매출 상품과 구조가 같다.

다른 점은 티몬이 직접 크로스파이낸스에 결제대금을 넣어준다는 것이다.  

크로스파이낸스는 티몬으로부터 직접 자금을 회수하는 것을 큰 장점으로 내세워왔다. 그러나 알려진대로 티몬이 현금고갈로 미정산 사태가 일으키면서 이 상품 역시 투자자 원리금 상환이 중단된 상태다.
 
크로스파이낸스는 루멘과 산하 선정산업체 등을 횡령 및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사고가 터진 직후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720억 원 막장 먹튀 사건의 진실은 조만간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피해를 입은 투자자의 자금 회수 가능성은 미지수다. 김수헌 MTN 기업&경영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