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준금리 인하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장밋빛 전망이 두려움으로 바뀌는 데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증시 얘기다. 7월 말까지만해도 증권업계에서는 하반기 코스피 3000을 외치는 낙관적 전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8월 들어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급격히 부각되더니 코스피는 빠르게 무너졌다. 8월2일과 5일 단 2거래일 만에 12% 넘게 빠지며 시가총액 271조 원이 증발했다. 8월5일 장중에는 24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증시 변동성이 커진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 일본 등 올해 들어 연일 신고가 행진을 기록하던 글로벌 증시도 8월 들어 곤두박질치며 국내 투자자들의 두려움을 자극했다.
시장과 경제는 기본적으로 예측가능성을 좋아하고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고금리시대의 끝을 알리는 기준금리 인하를 앞두고 불확실성이 커지며 글로벌 증시가 요동친 것인데 예측가능성이 흔들린 배경에는 경기침체 우려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애초 시장에는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가 내리면 자금 융통에 숨통이 트이며 경제 전반에 활력이 돌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하가 물가 안정에 따른 경제 활력의 수단이 아닌 경기침체를 방어하기 위한 선제적 수단으로 해석되며 오히려 시장의 공포감을 키웠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9월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 가능성, 8월 한국은행의 선제적 금리인하 가능성 등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미국과 한국의 중앙은행이 애초 예상보다 금리인하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시나리오다.
금융당국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예상보다 빠른 금리인하는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져 경기침체와는 또 다른 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는 과정에서 간신히 잡아놓은 물가 역시 또 다시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당국 수장들도 시장의 불안감을 차단하기 위해 이번 주 들어 연일 머리를 맞대고 시장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고민이 깊은 것은 민간 금융사도 마찬가지다.
민간 금융사는 기준금리 변화에 따른 시장 상황을 보며 자금을 보다 과감하게 끌어와 공격적 영업을 펼칠지, 안정성과 리스크관리에 무게를 두고 보수적 영업을 펼칠지 결정한다.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경쟁사에 시장을 빼앗겨 점유율을 잃거나 향후 과도한 조달비용이나 충당금으로 수익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위기 극복을 통한 성장을 이야기하는 ‘안티프래질(antifagile)’이 떠오른 이유다.
안티프래질은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한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 교수가 2012년 저서를 통해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깨지기 쉽다는 뜻의 영단어 프래질(fagile)의 반대 의미를 지닌다.
탈레브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는 경제적 충격과 불확실성을 견뎌내는 것을 넘어 오히려 그 과정에서 이익을 얻어 더욱 강한 체질로 변화하는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안티프래질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불확실성이 상수인 상황 속에서 위기를 극복하며 성장해야 한다는 것인데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이 지난해 11월 취임 직후 진행한 ‘KB인베스터인사이트’ 행사 주제를 안티프래질로 잡으면서 금융권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양 회장은 당시 CEO 메시지를 통해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에 필요한 것은 전통적 개념의 위기대응 능력이 아니라 ‘진화된 위기 대응 능력’이다”며 KB금융의 주요 고객들에게 안티프래질 역량을 강조했다.
돌아보면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한 2020년 이후 한 번도 위기가 아닌 적은 없었다.
그런 만큼 4년 만에 금리인하가 눈앞으로 다가온 피벗(통화정책 전환) 시기 역시 새로운 위기일 수 있다.
물가와 싸움에서 승리로 여겨지던 중앙은행의 금리인하가 한순간에 경기침체의 두려움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지금이라면 더욱 긴장감을 놓아선 안 될 것이다. 이한재 금융증권부 차장.